"가신 님들 꿈,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인혁당 재건단체 희생자 추모제 열려

등록 2003.04.10 11:44수정 2003.04.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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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 사이로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묘지 산길을 굽이굽이 올랐다. 9일 오전11시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 희생자 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씨 등 네사람이 안장된 묘역. 유가족 친지 등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4.9 통일열사 28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a 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에서 인혁당사건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에서 인혁당사건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 김광재

"여기, 혹독한 분단 세원 압제의 사슬을 깨뜨리고 자주통일과 민주 새날의 새벽을 열다 먼저가신 민주통일열사 ○○○선생 잠들다. 동지의 뜨거운 입김은 첩첩 어두운 동토를 녹였으며, 숭고한 외침은 동지가 지극히 사랑한 이 산하 민중의 가슴을 일깨웠다. 오늘, 그 크나큰 사랑의 빛과 의로움을 기리어, 열사 가신지 스므돌에 비를 세우고, 내일을 위한 다짐으로 삼으려 한다."

안장 직후 세운 묘비 마저 경찰에 빼앗긴 채 20년을 지낸 뒤, 지난 95년 다시 세운 비에 새겨진 시인 배창환씨가 지은 비문이다. 고문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시신으로 돌아와 이 곳에 누운 이들은 땅 속에서조차 오랫동안 위로 받지 못했다.

"6월 항쟁의 음덕으로 추모제를 올린 것도 이제 10여회 됐습니다. 고인들의 옥중동지의 한명으로 이 자리에 서니, 동지들이 가신지 28년이 지나도록 그분들이 그토록 원하던 겨레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데 대해 면목이 없습니다. 부디 지하에서 편히 계십시오. 고인들의 꿈을 우리 후배들이 반드시 이뤄 낼 것입니다."

이들과 함께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여 옥고를 치른 강창덕씨(75)가 추모의 말을 했다. 전국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영남지구회 조동재 회장은 "자식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아비로서 여러분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다"며 유가족들을 위로한 뒤, "하루빨리 이 분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희생자들은 아직 신원(伸寃)이 되지 않고 있고, 당시 중앙정보부 간부·대법원 판사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박정희 기념관은 세워지려 한다. 희생자들의 무덤가에는 대구주변에 많이 자라는 '애기자운'이란 풀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속죄를 뜻하는 보라색의 작은 꽃들이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역인사 49인 선언 등 관련행사 열려
경북대, 영남대서도 추모행사

▲ 경북대에서 열린 4.9 추모제
ⓒ김광재
'4.9 통일열사 재심신청 관련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지역인사 49인 선언 및 기자회견'이 9일 오전 9시 대구시청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독재권력에 의한 민주세력에 대한 대탄압이었으며 전대미문의 인권유린"이라 규정하고, "재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함으로써 온갖 수난 속에 힘든 삶을 살아 온 분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안기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선언에는 류연창 목사, 정학 환경운동연합 대표, 김민남 경북대교수 등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교육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 49인이 참가했다.


한편, 경북대와 영남대에서도 추모행사가 열렸다. 경북대 총학생회는 9일 오후 '역사의 반전(反轉), 평화의 반전(反戰)'이란 이름으로 4.9열사 추모제 및 반전 문화제를 열었다. 영남대 총학생회도 영상물 상영과 분향 헌화 등 학내 추모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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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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