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잘못하면 그들에게 박살난다"
진지한, 너무도 진지한 <조선일보>

[기자의 눈] 조선닷컴에 없는 '국민의 힘' 이야기

등록 2003.04.12 21:45수정 2003.08.1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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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네요. 이런 농담을 하면 조선일보가 어떻게 보도하는지 보려고 한 건데…."

11일 '국민의 힘' 기자회견을 잠입취재한 <조선닷컴> 기사. 제목은 <조선> 기자 취재를 거부하며 사회자가 내뱉었던 농담이었다.
11일 '국민의 힘' 기자회견을 잠입취재한 <조선닷컴> 기사. 제목은 <조선> 기자 취재를 거부하며 사회자가 내뱉었던 농담이었다.
오는 19일 창립을 앞두고 있는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 정청래 공보팀장은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긴 한숨을 토해냈다.

<조선>이 이날 오후 2시5분에 웹사이트에 올린 톱기사 제목은 "朝鮮기자 사내결혼 해야될 것". 톱기사는 같은날 오전 10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있었던 '<조선> 왜곡보도'에 대한 국민의 힘(www.cybercorea.org) 기자회견'을 다뤘다.

사실 이 제목을 읽고 기자도 놀란 게 사실이다. 이 말은 발언 당사자가 "이 같은 농담이 기사화된다면 언론의 양식을 의심하겠다"는 뜻으로 작심을 하고 내뱉은 말이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 안에 있던 다른 기자들은 웃어넘겼지만, 놀림감이 된 <조선> 기자의 심경은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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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이제는 <동아> 기사 베끼나?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정 팀장은 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 "건물 밖에 <조선> 로고가 붙은 차량이 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 앞서 말해두겠다. <조선> 및 <조선> 오더를 받고 온 사람들은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한 동료기자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회견장 안에 <조선> 사진부 기자가 있다"고 귀띔하며 '국민의 힘' 요청에 아랑곳없이 촬영에 여념이 없는 한 여기자를 가리켰다.

잠입 취재가 됐건, 탐사 취재가 됐건 기자가 취재현장에 접근하려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국민의 힘'의 문제의식은 안티조선 진영을 취재하는 <조선>이 상습적인 왜곡보도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정 팀장이 기자회견 중 재차 <조선> 기자에 경고한 것도 이 같은 불안감을 반영했다.

"<조선> 기자나 프락치, 스파이가 있다면 나가주십시오. (아무 반응이 없자) 그럼, 이 자리에 <조선> 기자가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조선> 총각, 처녀 기자들은 사내결혼을 해야될 겁니다. 점점 <조선> 기자들이 결혼하기 힘들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기자들 '어처구니없다'는 웃음) 이렇게 농담을 했는데도 이게 만약 <조선>에 기사화되면 이 자리에 <조선> 기자가 있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국민의 힘'이 <조선> 기자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사태발생 1주일이나 지나서야 '국민의 힘'이 부득불 기자회견을 한 원인이기도 했다. <조선>은 지난 3일자 8면에 "조선일보 보는 사람과는 결혼 안하기 운동 벌이자"는 제목으로 '국민의 힘' 전국모임을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이 말은 참석자들 사이에 오간 농담이었다는 것.

29일 열린 전국모임 언론개혁 분과 토론회에는 25명 안팎의 사람만이 참여했는데, 모임 중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가 "조선일보 보는 사람과는 결혼 안하기 운동을 벌이자"고 말했다. 이에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이 "사랑에는 국경도 없는데…"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김 교수는 "그럼 연애만 하고…"라고 웃어넘겼다고.


11일 '국민의 힘' 기자회견의 도화선이 된 <조선> 3일자 기사.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의 농담을 통단 제목으로 뽑았다.
11일 '국민의 힘' 기자회견의 도화선이 된 <조선> 3일자 기사.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의 농담을 통단 제목으로 뽑았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뽑아낸 <조선>의 제목은 발언자 김 교수를 <조선>에 대한 과대망상증 환자로 몰아간 느낌이다. <조선>은 11일 기사에서도 재차 "김삼웅씨는 지난달 '국민의 힘'의 내부회의에서 '조선일보에 글쓰는 사람과는 사돈 안 맺기 운동'이나 '조선일보 보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기 운동'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고 보도했지만,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됐는지에 대한 전후상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이 제시한 '기자회견 내용 전문' 역시 <조선>에 대해 민감한 부분은 쏙 빼놓았다는 점에서 전문이라고 할 수 없다. 취재기자가 기억하는 기자회견 내용중 <조선> 기사에서 빠진 부분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김삼웅 교수가 거론한 <조선>의 왜곡보도 사례

"내가 한 농담을 제목으로 뽑은 것은 내가 독립기념관 이사회에서 <조선>윤전기 철거를 주도한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아세(www.joase.org)에서 먼저 문제 제기를 했지만, 독립기념관 이사들도 공감해 거의 동시에 독립기념관 윤전기 철거를 얘기하게 됐다."

"89년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DJ가 유럽방문을 할 때 좌우 정당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는데 <조선>에는 '우에도 기웃, 좌에도 기웃'이라고 기사가 나서 크게 항의했다. 내가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보다 앞서 <조선> 왜곡보도와 싸운 셈이다. 그런데 3일자 <조선> 기사는 나를 '전 평민당보 주간'이라고 소개해 마치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문성근씨도 이 자리에 있지만, 고 문익환 목사가 89년 방북 후 중국과 일본을 거쳐 귀국하면서 '감옥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선>에는 마치 '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왜곡됐다. 문 목사가 거기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문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는 얘기를 묵묵히 경청)

방북을 마친 문익환 목사의 베이징 기자회견을 다룬 89년 4월5일자 <조선> 1면 기사.
방북을 마친 문익환 목사의 베이징 기자회견을 다룬 89년 4월5일자 <조선> 1면 기사.
2. 기자회견 중 나온 <조선>의 약점들- 안티조선과의 토론 거부, 한나라당과의 유착 의혹

정청래 팀장
"2월17일(사이트 개설일) 이후 '국민의 힘'에 대해 <조선>과 한나라당의 짜고치기식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조선>에서 기사를 쓰면 한나라당에서 그 기사를 보고 대책회의를 하고 브리핑, 성명을 내는 상황이다."

임현구 '국민의 힘' 추진위원
"<조선>이 독립기념관 윤전기 철거 이후 연일 엄청난 지면의 사설과 기사를 할애해서 조아세 등 시민단체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상훈 사장에게 공개적인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어제(10일)까지 답을 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3. <오마이뉴스> 기자도 <조선>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조선> 기사와 같이 <오마이뉴스> 기자는 최 총장과 임현구 조아세 대표에게 웹사이트를 강화한 <조선>의 온라인 전략에 대한 대응방향을 물었다. 그런데 참석자들은 <조선>의 변화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문성근씨가 의아스런 표정으로 "인터넷에만 실리고 신문에 안 실리는 <조선> 기사가 있냐?"고 되물어서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일이 있었냐면 <조선> 웹사이트에 최근 <오마이뉴스>를 공격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가 동아일보를 베낀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지적한 기사를 쓰니까 다음날 신문에는 안 실리더군요." (최 총장이 "<오마이뉴스>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 아니냐?(<오마이뉴스>가 그러한 시도를 먼저 했다는 뜻) <조선>이 왜곡하는지 일단 지켜보겠다"고 대답.)


'기자회견 전문'이라면 토씨 몇 자가 틀릴지언정 기자회견 중 자사에 민감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감없이 수록하는 게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왜 자사 입맛대로 쓴 기사를 '전문'이라고 소개해 마치 <조선> 기사가 기자회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양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는가? <조선> 기자라면 인터뷰는 물론, 보도자료 제공도 거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고민이 이런 데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임현구 '국민의 힘' 추진위원이 방상훈 <조선> 사장 앞으로 보낸 '방송토론 제안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임현구 '국민의 힘' 추진위원이 방상훈 <조선> 사장 앞으로 보낸 '방송토론 제안서'를 들어보이고 있다.오마이뉴스 손병관
다시 <조선> 기사제목으로 돌아가자. <오마이뉴스>도 상업언론인 이상 일정한 선정성을 추구하게 된다.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당길 기사 제목을 고민하는 것은 모든 언론사의 숙명과 같다.

그러나 자신들이 대서특필한 농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 중에 나온 농담을 다시 제목으로 뽑아 공격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선>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신문을 찍어내는 언론사이다. 굴절과 오욕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수십 년간의 자본 축적과 요소요소에 깊숙이 뿌리내린 보수성향의 탄탄한 독자층은 하루아침에 스러지지 않는다.

이런 <조선>이, 안티조선 진영에 대해 '왕무시'로 일관하던 <조선>이 도대체 무엇이 불안해서 아직 조직체계와 정관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왕초보 시민단체'를 몰아세우기에 급급한 지 이해가 안 간다. 혹시 <조선>이 기대했던 것은 제목만 보고 흥분한 독자들이 100자평에 뱉어내는, 다음과 같은 반응들이 아닐까?

"한마디로 유치함의 극치이다. 결혼 안 하기운동? 무슨 왕따대회하는 것인가?"

"나도 조선일보를 싫어하고 x같은 신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내결혼시켜야 한다는 캠페인은 좀 심한 거 같다. 이런식의 방법은 호응을 얻기 힘들다. 조선일보를 싫어하면서 조선과 같은 방법을 쓰면 어떻게 하나?"

"정말 가관이다. 조선일보 보는 사람하고 사돈안한다고? 우리가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면 니놈들 하고 사돈하겠냐?"

"우하하하..웃기는 짜장면들...결혼도 너희놈들 허가를 받아야하나?"

"조선일보 기자와 사돈맺지 말란다. 당신들이 뭔데 남의 자유의사를 침범하나"


"정말 <조선>은 기사거리가 없는가 보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오죽하면 쪽바리신문사 직원들과 결혼안하기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부터 뒤돌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걸 보니 <조선>은 '국민의 힘'을 시시껄렁한 말이나 하고 극성을 떠는 단체로 이미지 조작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본 것 같다.

"조선일보 기자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물론 좋은 사람 있으면 사내결혼해도 되구요"라는 의견을 보고 기자는 피식 웃었다. 기상천외한 100자평 의견들을 보고 사기가 충천해 더욱 열심히 일할 <조선>의 처녀총각 사원들을 생각하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1일 오전10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국민의 힘' 기자회견.
11일 오전10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국민의 힘' 기자회견.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대목은 "<조선>과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의 말이었다. 그는 "민언련에 안티조선 운동에 항의하는 전화들이 많이 오는데, 요즘에는 '<조선>이 정말로 뭐가 그렇게 나쁜 지 알고싶다'는 물음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대안으로 "<조선>의 수구적 논조와 우리들의 진보적 생각이 사실을 기초로 토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은 거듭 제기되는 안티조선 진영의 토론 제의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이제는 색안경을 끼고 쓴 기사를 자신들이 전유한 지면을 통해 일방적으로 내지르기보다 '토론의 광장'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지극히 의도적으로 해석될 제목을 단 '문제의 기사'가 올라간 직후 저녁 9시까지 <조선> 웹사이트를 뒤덮은 6백건 이상의 독자의견들을 읽어보며 <조선>이 최근 부르짖는 이른바 '클린 인터넷'이 왠지 공허하게 들렸다.

조선일보 웹사이트에 올려진 기사 원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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