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그 화려했던 날에 대한 회상

산수국의 마른 꽃과 새싹을 보면서

등록 2003.04.12 11:23수정 2003.04.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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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1일 한라산에서 ⓒ 김민수

어느덧 계절은 봄에서 여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인 봄의 향연은 겨우내 바싹 말라 누렇던 들판이나 숲에 푸른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때로는 화려한 빛으로 때로는 잔잔한 파스텔톤으로 산야를 물들여가고 있는 요즘이지만 아직도 지난해에 피어나 겨울을 나고, 새싹이 올라오는 지금까지도 화려했던 지난날을 잊지 못한 듯 마른 꽃으로 남아있는 산수국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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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만지면 부서질 듯 가녀린 꽃잎, 작은 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어린 시절 창호지에 꽃잎을 넣어 단장을 하면 아침 햇살에 고운 무늬가 살아나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몸으로 체득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서 산야를 돌아다니며 야생화를 찍는 재미에 빠져들면서 조금씩 '자연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작은 텃밭에 이것저것 심고 가꾸면서 손수 기른 것을 내 몸에 모신다는 것에서 이전보다는 조금 자연스러워졌다고 느낄 뿐입니다.

저는 사진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사진 찍히는 것은 싫어합니다.


사진기 앞에만 서면 자연스러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색한 모습으로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연덕스럽게 사진기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그런데 자연은 바람에 조금 흔들리는 몸짓 말고는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고, 그렇다고 치장하는 법도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 자연스러움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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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아마도 사람들이 떠나야 할 때를 모르고 끈덕지게 새싹이 나오는 데에도 망령처럼 그 새싹의 줄기에 남아있었다면 추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수국의 마른 꽃은 새순과도 잘 어울립니다.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자연인가 봅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들은 인공의 것에 너무나 많이 노출되고, 자연스러움보다는 인공적인 것, 즉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시에서 생활할 때에는 주말만 되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갔습니다.

일주일의 시간 중에서 유일하게 자연과 하나된다는 느낌을 받는 시간, 그래서 거의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콘크리트 빌딩 숲은 하나의 감옥처럼 느껴졌었습니다.

그렇게 불혹의 나이까지 지내고 탈출을 시도하여 자유의 몸이 된 지 일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직도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간동안 자연이 주는 삶의 소리를 듣고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질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그것이 부질없음을 깨달아가고, 명예와 권력같은 것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부질없이 보입니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내가 있음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힘을 얻고, 나 역시도 그로 인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 끝자리에도 저 마른 산수국의 마른 꽃처럼 남아있을 지라도 아름다운 느낌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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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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