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서울에서 온 이상한 소포

농사 지으려면 제대로 지어라

등록 2003.04.13 10:27수정 2003.04.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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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심은 시금치와 상추를 솎아주고, 장날에 사온 고추,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습니다.


제주는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아서 삼다도라고도 합니다만 여자가 많은 이유야 역사적으로 불행한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리 된 것 같고, 요즘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그 비율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람과 돌입니다.

바람이 많다보니 작은 모종들이 바람에 시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주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하나하나 지주를 세워주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이는 지주를 하나만 세워주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더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도 우리 식구들과 지인들이 무농약으로 키운 야채들을 먹을 것을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그렇게 밭일을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소포가 왔습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소포입니다. 소포를 구경시켜 드릴까요?

a 싹을 틔운 토란씨. 싹이 늦게 나오므로 틔워서 심으면 좀더 빨리 나옵니다.

싹을 틔운 토란씨. 싹이 늦게 나오므로 틔워서 심으면 좀더 빨리 나옵니다. ⓒ 김민수

a 까만 것은 금낭화 씨앗입니다.

까만 것은 금낭화 씨앗입니다. ⓒ 김민수

a 붉은 괭이밥 뿌리

붉은 괭이밥 뿌리 ⓒ 김민수

서울에서 온 것치고는 참 이상하죠? 아이들 옷가지나 장난감, 또는 시골에서 구경하기 힘든 것이 온 것이 아니라 토란 싹 틔운 것에 각종 씨앗들, 꽃씨와 화초, 화초뿌리 등이 바리바리 싸여 도착을 했습니다.

요즘 아들이 꽃에 관심이 있다하니 보내주신 붉은 괭이밥 뿌리, 금낭화 씨앗, 돌단풍, 접시꽃 등을 챙기셨습니다. 그리고 텃밭에 심은 토란을 싹 틔워서 보내주셨고, 호박씨도 종류대로, 부추씨까지 바리바리 보내 주셨습니다.


아예 아들을 농사꾼으로 만드실 작정이신가 봅니다.

참, 이 씨앗들의 고향이 어디냐구요? 물론 서울입니다. 저희 부모님들은 아파트촌에 둘러 쌓인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만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화단도 가꾸시고, 채소도 직접 길러 드신답니다. 그 규모는 실로 놀라워서 년 전에는 K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거기서 나온 씨앗들입니다.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 온 씨앗. 어쩌면 그들에게는 살맛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그 씨앗을 받아든 나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잘못 키워서 보내주신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죠.

그나저나 텃밭이 좁아서 이 씨앗들을 다 어떻게 심을지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텃밭을 늘리면 본업에서 벗어나게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농사지으려면 제대로 지어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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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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