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저씨, 에바다 해결해주세요"

에바다 학생 박미애양의 편지

등록 2003.04.14 09:11수정 2003.04.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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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0일 이메일로 에바다학교에 있는 한 학생이 노무현 대통령께 쓴 편지를 이메일로 전달받았다.

인권운동가로 에바다복지회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본인에게 노무현 대통령께 편지를 전달해달라며 보내온 것이다. 나라고 직접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궁리 끝에 편지를 우편으로 직접 청와대로 보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청와대에 부쳐지는 많은 편지에 묻혀 대통령한테 이 학생의 간절한 편지가 직접 전달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대통령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국민참여마당 자유게시판에도 올렸다.

그런데 그 많은 게시판의 글들처럼 조회수도 늘지 않고, 또 묻혀져 버리고 마는 것 같아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 편지를 소개하고 에바다 사태의 현재를 알리고자 한다. 먼저 학생의 편지부터 소개한다.

a 지난해 3월 19일 에바다 사태를 해결하고자 에바다농아원을 방문한 박래군 이사(오른쪽)와 박경석 이사가 농아원측 관계자들로부터 똥물세례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는 모습.

지난해 3월 19일 에바다 사태를 해결하고자 에바다농아원을 방문한 박래군 이사(오른쪽)와 박경석 이사가 농아원측 관계자들로부터 똥물세례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는 모습. ⓒ 박종필

노무현 대통령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에바다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3 학생 박미애입니다. 대통령께 편지를 쓴다는 게 너무 두렵고 어렵지만 오랜동안 고민하다 이렇게 용기를 가지고 편지를 씁니다.

대통령 아저씨, 제 소원 좀 들어주세요. 저와 저희 에바다학교 학생 모두가 학교에 모여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폭력이 없는 좋은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도 못하는 저희들이지만 친구들과 서로 사랑하며 즐겁게 공부하며 살고 싶어요. 그래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저희들이지만 보통 사람들과 같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고 싶어요.


저희 에바다학교 이야기를 대통령께서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밤마다 아침마다 무릎꿇고 기도한 내용이 있어요.

'이번에는 정말 우리 에바다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말 못하는 저희들의 고통과 아픔까지도 이해해주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분이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저와 친구들과 후배들과 졸업한 선배들까지도 날마다 그렇게 기도했어요. 저희들은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믿고 있어요.

지난 7년 동안 저희들은 지옥과도 같은 고통과 억울함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용서하며 저희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해 오히려 마음 아파하며 하루빨리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바르게 살기를 기도하며 참고 살아 왔거든요.

저희들은 7년 전, 저희들을 짐승과도 같이 취급하며 무시하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거부하며 우리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외쳤어요.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저희들은 비리재단이 물러가기를 원하는 것 외에는 남을 괴롭히거나 나쁜 짓을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때로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함을 당하고 말할 수 없는 폭행을 당할 때면, 저들에게도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저희들을 위로해주시고 함께 울어주시면서 "너희들이 저들과 똑같은 폭행을 가한다면, 너희들이 외치는 정의는 물거품이 되고 너희들도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는 말씀을 해 주시곤 했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까지 정말 바르게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너무 긴 시간을 오직 정의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견디어 왔는데, 그러면서 선배들이 모두 졸업하고 저도 벌써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는데 아직도 저희들은 학교에 들어가지조차 못하고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편한 수업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들께서는 모든 것이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되어 비리를 저지르던 구재단 사람들은 다 물러갔고, 그 사람들은 학교나 우리 친구들이 생활하는 농아원에 출입조차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판결이 났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갈 데가 없어서 농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희 친구들과 선배들을 깡패처럼 만들어 저희들과 선생님들에게 폭행을 하도록 만든 구재단 사람들이 아직도 학교와 농아원에서 살면서 저희들이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고 있어요.

농아원에 있는 저희 친구들은 정말 불쌍해요. 그 친구들은 폭행을 하기 싫은데 구재단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벌을 받을지 몰라서 어쩔 수 없이 폭행을 해야만 하거든요. 여러 명의 친구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담뱃불에 지지는 일까지 당했어요.

대통령 아저씨, 그런 저희들의 친구들을 구재단 나쁜 사람들에게서 구해주시고, 저희들도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친구들이 저희들을 괴롭히고 욕하고 때렸지만 저희들은 그 친구들의 진심을 알기에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어요. 그 친구들과 하루빨리 만나서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감싸주며 웃으며 함께 공부하고 싶어요.

대통령 아저씨, 제발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모든 것이 법적으로 해결이 되었다고 하니, 대통령께서 관심만 가져주셔도 저희들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정의가 이기게 해 주세요. 바르게 살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지만 끝내 기쁨의 날이 온다는 걸 믿고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폭행을 휘두르던 농아원 친구들이나 구재단 사람들도 그렇게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해 주세요.

대통령 아저씨.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2003년 4월 10일 에바다 학교 고3 박미애 올림


고등학교 3학년인 박미애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에바다 사태를 겪었다. 한 학교에서 초등, 중등, 고등 과정이 모두 있는 특수학교의 교과과정에서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동안 사태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린 청각장애아가 보고 겪어야 했던 것은 상식 밖의 일들 뿐이었다.

1996년 11월말부터 농성이 시작되었고, 몇 몇 농성장을 떠돌다가 교사들과 농성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학교 근처 경기도 평택시 진위천변에 위치한 '청각장애자들의 보금자리 해아래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좁은 공간에서 20명 가까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가서 이 학생이 겪은 것은 무엇인가? 학생들은 "춥고 배고파서" 농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오히려 학생들이 다칠까봐 몇 번이고 농성을 만류했다. 그렇지만, 이미 에바다 법인을 최씨 일가 친인척들이 장악하고, 각종 비리와 폭력으로 에바다학교도, 농아원도 모두 비상식적인 상태로 만들어 버린 상황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눈에도 최씨 일가들이 저지르는 횡포를 더 이상 당하고만 볼 수는 없었다. 사태 해결이 안 되면 철로변에서 죽어 버리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농성이었다(그때의 농성 상황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자. 다만, 홈페이지 http://ept.jinbo.net에 들어가면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당시 최씨 일가는 에바다에서 각종 수법을 동원한 국고지원금과 후원금의 착복, 아이들에 대한 강제노역, 농아원 직원과 졸업생들을 동원한 폭력의 체계화, 청각 장애아들에 대한 인신매매와 미군에 대한 성노리개 제공, 몇 몇 사건의 의문사 등으로 얼룩진 온갖 비리의 집합체였다. 그 속에 아이들이 농아원에서 두들겨 맞으며 생활하고 있었고, 그들은 배고파 시설 인근의 주택가 쓰레기통을 뒤져야 할 정도였다. 주민들은 '(한국전쟁 시기 때의) 고아원'인 줄 알았다고 한다.

어렵게 농성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그러나 돌아온 것은 경찰과 공무원들의 일방적인 최씨 편들기 때문에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세상의 냉담함이었다. 까불어보았자 소용없다는 그런 식의 태도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몇 몇 교사들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아이들은 농성을 지속적으로 시작했고, 해아래집으로 옮겨서 새로운 공동체를 일궜다. 그 공동체는 교사들과 직장을 잡은 졸업생들이 월급을 갹출하여 기본 운영비를 마련하고, 주위의 후원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해아래집에서 농아원의 폭력에 주눅들었던 아이들은 아이다운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환경은 열악해서 방 한 칸에 5-6명씩 생활하였지만, 문제는 그곳에는 자신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선생님이 있었고, 선배나 동료들도 더 이상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농아원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나 이사들이 폭행을 당하면, 교사들이 참으라고 했다. 용서해야 한다고, 저 아이들도 함께 공부해야 할 친구들이라고, 다만 뒤에서 조종하는 옛날 비리재단의 최씨 일가들 때문이라고. 해아래집 선생님에게 폭행을 가한 농아원생에게 도저히 화를 못 참아 혼내줬던 아이들은 도리어 해아래집 선생님들에게 혼이 나야 했다.

농아원의 아이들과 몇 차례 대화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곳 아이들은 누가 얘기를 해도 천편일률적이었다. 아이들이 법인의 운영에 대해, 교장,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을 욕하는 것도 무슨 대사를 외우듯했다. 그렇지만, 해아래집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기 식대로 표현했다. 아이들의 수화 속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표정 속에서 보여지는 그 차이는 사랑을 받고 큰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차이였다.

에바다 사태는 7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4차례씩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해결 약속을 했지만, 아직도 농아원과 학교는 굳게 닫혀서 교사들과 이사들이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해에는 법원에서 폭력을 교사하고 행사한 최씨 친인척과 졸업생, 농아원생에 대한 출입금지가처분이 결정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폭력을 휘두른다. 이전의 것은 모두 제외하고라도 지난해에만 해아래집에 대한 한밤중 습격, 권오일 교사와 법인 사무국장에 대한 폭행, 심지어는 가처분 결정문을 고시하려던 법원 직원까지 폭행을 당했고, 교장 선생님을 폭행하고 학교 직인마저 빼앗아 갔다.

오마이뉴스에도 쓴 적이 있지만, 폭력을 중단하라고 호소하러 갔던 본인과 박경석 이사(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는 농아원생들이 뿌린 오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곳은 폭력이 판을 치는 불법천지, 무법지대가 된 지 오래고, 아직도 그곳의 아이들은 폭력에 시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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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지난해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 수업을 학교와 해아래집으로 나눠서 해야 했다. 교사들이 두 곳으로 나뉘어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였다. 그런데도 올해 신입생이 12명이나 들어왔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는 수업이 안 되니 해아래집에서 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해아래집에서 아이들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한 학부모들의 선택이었다. 이런 학부모들의 바람과는 달리 경기도교육청은 법 규정에도 없는 신입생 배정 보류 결정을 개학 몇 일을 앞둔 지난 2월말에 학교에 통보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배정이 승인되지 않는 한 개학을 할 수 없다면서 조기방학으로 응수했다. 학부모와 이사회의 항의 끝에 결국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3월 21일 배정 보류를 취소하고, 신입생 배정을 승인했다.

지난 3월 24일 에바다학교는 신입생과 함께 개학식을 가졌다. 학교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무봉산 수련원에서 2박3일간의 수련회를 가졌다. 그리고 에바다복지회 산하 시설인 장애인종합복지관에 임시 수업 장소를 마련해 지난달 31일부터 수업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실로 1년 6개월만에 한 장소에서 수업을 갖는 것이었다. 교사들도 모두 모였고, 해아래집과 통학하는 학생들이 모두 종합복지관으로 수업을 받으러 왔다. 그 동안 농아원에서 폭력에 동원되던 아이들 4명이 3월과 4월에 종합복지관으로 나와 수업을 받았다.

물론 그들은 더 이상 농아원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이 농아원을 떠나게 된 것은 농아원에서 아직도 폭력이 난무하기 때문이었고, 해아래집 아이들의 밝은 모습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체 학생 45명. 그중 종합복지관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27명, 1명이 장기결석생이고, 17명이 아직도 농아원에 갇혀서 종합복지관으로 수업을 받을 나올 수 없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어른들은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왜 학교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하고, 왜 농아원에 선생님을 파견하지 않냐며 야단이다.

농아원에서는 학교에 갈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못 타게 막으면서 학부모들에게 농아원에 선생님들이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사기친다. 평택시는 복지관 규정을 어기고 수업 장소를 마련했으니 당장 시정하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한다.

에바다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대해 늘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걸고 들어온다. 7년째 사태를 지켜 보아왔던 그들은 늘 최씨 일가의 말들은 잘 들어주면서 합법적인 이사회와 학교 시설장들의 요구는 묵살하고는 했다.

그들은 범죄 집단이 옛날의 비리 재단과 현 이사회가 동등하게 구성되어야 한다면서 무슨 대단한 해결책인 양 버틴다. 경찰마저 시설보호를 요청해도, 불법점거 세력을 퇴거해달라도 이사들과 시설장들이 시설에 들어가는 것만 막는다.

본인을 비롯한 이사들은 사태가 빨리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물론 거기에는 해아래집의 교사들과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으로 옛날 비리재단의 이사들을 압도하고, 이사회 다수를 장악했다.

시설 운영에는 이사회가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사회를 민주적으로 재편하면 모든 문제는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합법적인 이사회를 따돌리고 관청이 옛날 비리재단 세력과 손잡아 버리는 통에 이사회는 정상화 프로그램을 적용조차 할 수 없었다. 최근에 다행스럽게 복지관이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하고 있어서 이번에 학교 임시 수업 장소를 그곳에 마련할 수 있었다.

아직 할 말은 많지만,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자. 지금도 학생들의 수업을 가로막고 있는 농아원의 최씨일가들과 졸업생들, 농아원 직원들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으러 갈 수 있도록 아이들이 통학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관청들은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협조해야 한다.

더 이상 청각장애아들이 절망 속에서 세상을 비관하지 말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것을 에바다학교 학생들은 대통령에게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이 아이들의 소원 하나 우리 사회가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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