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64

등록 2003.04.14 18:08수정 2003.04.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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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들 하시오! 태자책봉은 벌써부터 논의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오."

주몽은 한 마디로 이 문제를 덮어두고선 다음 얘기로 넘어가 버렸다. 월군녀는 이 소식을 해위로부터 전해 듣고선 한탄해 마지않았다.


"이게 다 내가 자식을 낳지 못해서 생긴 일이 아닌가. 더 이상 다른 신하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네."

해위는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엎드려 있었다. 월군녀의 천거로 자위의 직책에 이른 오간이 신중히 한마디를 던졌다.

"비류와 온조왕자께선 폐하의 혈육이 아니시기에 더욱 일은 어렵사옵니다. 아직 왕비마마의 춘추도 젊으시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월군녀는 넋두리를 늘어놓듯 두 신하에게 얘기했다.

"비류와 온조는 언니가 돌아가신 후 핏덩이 때부터 제가 돌본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입니다. 나중에 제 자식이 태어난다고 해도 그 아이를 태자로 책봉시킬 마음은 없습니다. 더구나 비류와 온조가 어디가 못났습니까?"


월군녀의 말대로 비류와 온조는 문무에 모두 뛰어났으며 행동 가짐 또한 일국의 왕자로서 손색이 없는 소년들이었다. 오간 또한 이들과 무관하지 않은 일가붙이였기에 월군녀를 도울 심정으로 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었다.

"정 그러시다면 방법이 있사옵니다. 비류와 온조를 폐하의 양아들로 인정해 달라고 청하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페하께서는 비류와 온조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신 다오."

"그렇지만 폐하께서 공식적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왕자님들을 아들이라고 인정하신 적은 없습니다. 먼저 그렇게 모양새를 갖춰놓은 후 천천히 시일을 두고 태자 책봉 문제를 꺼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월군녀는 오간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은 단순히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국가의 일인만큼 절차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군녀는 이런 일은 아랫사람들이 나서기에는 벅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일이라면 내가 직접 얘기해 해결하리다. 국정에서 이 문제를 꺼내면 태자책봉 문제처럼 또 소란스러워질 우려도 있고 신하들의 견제도 심할 것이오."

묵거가 죽은 이후 견제하는 이가 없어지자 주몽에 대한 월군녀의 입김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있었다. 주몽은 월군녀의 요청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비류와 온조를 양아들로 삼고 이를 공포했다. 뒤늦게 재사와 오이가 주몽에게로 달려가 신중치 못함을 탓했다.

"폐하께서는 바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런 일을 신하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하신다는 것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닙니다."

"비류와 온조가 어질고 성실하여 양아들로 삼았을 뿐이며 이전부터 그들을 자식과도 같이 대하였소.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이오?"

주몽이 완강히 반발하자 재사와 오이는 잠시 당혹스러워 했다. 오이가 조심스럽게 화제를 바꾸며 주몽에게 고했다.

"폐하, 동부여에 예부인이 계시지 않습니까? 성곽과 왕궁을 지은 이 때 이분을 모셔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이의 말은 언뜻 흘려보면 뜬금 없는 얘기 같았지만 그 이면에는 월군녀의 전횡을 막아보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만큼 고구려를 건국한 첫 원동력으로서 월군녀의 자부심과 권세는 막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몽은 이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를 감성적으로 듣고서는 가슴이 아려왔다. 주몽은 이렇다 저렇다 따질 것 없이 즉흥적으로 말했다.

"공이 부여의 왕과 안면이 있으니 부여에 사신으로 가 부탁해보면 안 되겠소?"

오이로서는 오히려 바라는 바였기에 주몽의 명을 받고 부지런히 부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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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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