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넝쿨이의 지석초등학교 졸업식 교정 앞.박철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오늘은 애리조나 김병현이 나와 6회까지 잘 던졌는데 그 다음 중간 계투가 나와 3실점을 해 또 패전을 기록할 모양이다. 우리 집 애들도 크린업 트리오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초등학교 1학년 은빈이는 1학년 전체 6명 중, 번호가 3번이다. 중학교 1학년 넝쿨이는 32명 중 4번이고, 중학교 3학년 아딧줄은 38명중 번호가 5번이란다. 3, 4, 5번 그러니까 자동으로 크린업 트리오다. 우연치고는 신기하게 들어맞는다.
이 녀석들이 정말 크린업 트리오가 되어서 안타를 날릴 것인지, 장쾌한 홈런을 칠 것인지 셋 다 죽을 쑬 것인지 두고 볼일이다. 나는 이 세 녀석들의 아비로서 내가 생각해도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권위를 앞세우는 구닥다리(?) 애비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좀 신세대 감각을 발휘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동생이 40살 중반이 되어 ‘아버지 학교’인가 하는 델 다니고 모든 과정을 수료했다고 하던데 나는 섬에 살아서 그런데도 다닐 수 없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긴 해야겠는데 내 나이 50이 다 되어가면서도 서툴기 짝이 없다.
우리 집 크린업 트리오를 지휘하는 건 내가 아니라 집사람이다. 애들이 내 말을 더 잘 듣지만 그건 아빠를 존경해서라기보다 아빠가 무서워서 일 게다. 엄마는 그래도 애들 마음속에 들어가 보려고 애쓴다.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높이를 낮춰 애들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엄마가 코치라면 나는 감독인데, 나는 전근대적인 감독이니 문제다. 나도 그걸 잘 안다. 애들이 지금은 내가 무서워 내 말에 고분고분 하지만 다 커서도 그럴 것인가? 장담 못한다. 큰 아들 아딧줄은 발 사이즈가 280mm로 나와 똑같다. 속옷은 같이 입는다. 몸무게도 5kg밖에 차이가 안 난다. 덩치는 다 커서 턱에 수염도 까칠까칠 났고, 목소리도 걸죽하고 어른이 되었는데 하는 짓을 보면 아직 어린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