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일기를 꺼내며

2년 전의 딸이야기를 꺼내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등록 2003.04.20 20:43수정 2003.04.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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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실내화가 정수 발에 끼었습니다. "정수야..너 평생 그걸 끼고 살아야 한다." 그랬더니 대성통곡을 합니다.

실내화가 정수 발에 끼었습니다. "정수야..너 평생 그걸 끼고 살아야 한다." 그랬더니 대성통곡을 합니다. ⓒ 이종원

예전에 썼던 육아일기를 책꽂이에서 꺼냈습니다.2년 전의 딸 이야기를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었네요.


5살난 제 딸 정수는 얼마나 나가 놀기를 좋아하냐면 아침 10시 나가면 밤 9시에 들어옵니다. 밥은 아무 집에서 먹고 오죽했으면 노는날 딸내미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니까요. 아마 아빠처럼 역마살이 끼어서 그런가 봅니다.

실컷 놀아도 좋지만 아파트 단지 밖에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노는 것을 허락했지요. 밖에는 무서운 차들이 씽씽 달리고, 또 얼마전 이곳에서 유괴사건도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제약을 둔 겁니다. 불쌍합니다. 서울아이들이.

어느 날이었지요. 하루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나 친구들하고 아파트 밖에서 놀아도 돼?"
"나가면 위험해서 않돼."
시무룩한 표정을 짓네요
"알았어."

그런데 베란다 창에서 밖을 쳐다보니 제 딸이 친구들과 단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한달음에 달려가서 잡았습니다. 정수가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상하지 않게 정중하게 말했지요.
"정수야 집에 가서 얘기 좀 해."
"아빠 여기서 해. 나 지금 바쁘거든."
'이런…. 많이 컸다.'

하여튼 간신히 설득해서 집으로 끌고 왔습니다.
잔뜩 인상을 구긴 엄마의 심문을 받습니다.


"정수야. 너 왜 약속을 안 지켜. 거기다가 거짓말까지 해. 너 오늘 3대 맞아."
그제서야 사태파악을 한 정수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엄마는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행에 옮긴답니다.

"어디 때릴거야?"
"뭘로 때릴거야?"
"아프게 때릴거야?"
"3대만 때릴거야?"
등등. 맞는 놈이 웬 질문이 그리 많은지. 그냥 3대 후닥닥 맞으면 될 것을. 아빠가 들어도 속이 터집니다.


기어코 10분이 지나서야 손바닥 3대를 맞고, 양 손을 들고 벌을 섭니다. 한참 지났나요? 힘들어서 그런지 손이 슬슬 내려옵니다.
"왜 자꾸만 손이 내려와?"
"자꾸만 코가 나올라고 그래." 하하하

어쨌든 엄마는 정수에게 하루동안 집을 나가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밖에서 놀고 먹는 정수에게는 그건 가장 힘겨운 형벌입니다. 창 밖 놀이터를 바라보며 얼마나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지.

대문 밖에서 정수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 정수야 놀~자."
" 친구들. 나 오늘 벌 받아야 돼. 못 나가."
그렇게 참는 정수가 참 대견합니다. 시장에 갈 때도 정수는 집을 봐야만 했습니다. 참고로 정수는 시장 가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 엄마, 시장 잘 다녀와. 나 집에 있을게."
참는 정수도 대견하지만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마누라가 더 무섭네요. 가끔 이걸 아빠에게도 적용하니까 저도 무척 피곤하답니다.
" 이제 풀어줘라. 불쌍하잖아."
" 그럼 당신이 대신 벌 설래?"
하루를 꼬박 채웠네요. 연금생활이 피곤한지 일찍 골아 떨어집니다.

다음날 아침 7시 정수는 눈뜨자마자 놀이터로 달려갔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친구들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혼자 놀 정수가 아니지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자고 있는 애들을 깨우고 다닙니다.
"현빈아 놀자."
"민욱아 놀자."

놀이터에서 윗집 아줌마가 빵을 먹고 있었답니다.
정수가 다가가서
"아줌마. 나 그거 먹을 줄 아는데…."
그래서 조금 떼어서 주었대요.
"아줌마. 나 그거 많이 먹을 줄 아는데…."
아줌마는 전부 뺏겼다고 엘리베이터에서 하소연했답니다.

장난꾸러기 정수처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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