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풍정도 숙소.김남희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질병이 여행자들을 몰아내고, 하늘길마저 끊어놓은 지금, 그래도 다리는 수선 떠는 일도 없이 무심한 눈길로 낯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성 안 서울식당의 하룻밤 15원(2200원)짜리 방에 짐을 풀면 자유의지로 다리에 들어왔으나 떠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상추가 자라는 햇볕 잘 드는 마당에서 '마의 산'을 읽으며 내가 소요해버린 시간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마음 다치지 않고, 그저 소진한 그 시간들. 아프던 몸과 마음을 천천히 회복시켰던 그 시간들 속으로 돌아가면 아직도 마당에는 부겐빌리아가 붉은 혀를 날름거리고, 바람은 가끔씩 불어오고, 햇볕은 뜨겁게 목덜미에 다가와 안기는 풍경이 고즈넉히 남아있다.
다리에서의 휴식에 지칠 무렵이면 한 권의 책과 약간의 음식을 챙겨 차에 오른다. 봄 햇살을 받은 풀들은 바람의 희롱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몸을 푼 여인처럼 드러누운 얼하이 호수는 잠들어있다. 그 호수의 한 켠에 떠있는 아주 작은 섬, 남조풍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