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관 "눈요기 전시는 이제 그만"

[업그레이드 사이언스 2부-과학대중화]④ 과학반 학생 연구원 방문 동행

등록 2003.04.23 10:44수정 2003.04.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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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2시 대덕연구단지의 H 연구원. 전시관 앞으로 20년 된 연못의 분수대가 물을 내뿜고 있어 봄의 싱그러움을 더해 주고 있는 오후다.

대전과학교육연구원이라고 쓰여져 있는 버스가 전시관 주차장에 멈춰섰다.

버스문이 열리자 짧은 스포츠 머리에 체크 무늬 교복을 입은 일단의 학생들이 내린다. 대전동산고 과학반 학생들이다. 이들은 곧바로 전시관이 있는 연구원 본관으로 직행했다.

취재 목적으로 H연구원을 자주 방문했으나 기자 역시 전시관 방문은 처음이다. 그동안 별로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연연 홍보 전시관의 전반적인 운영실태를 학생들의 눈높이로 보기 위해 합류했다.

학생들은 처음 들어오는 연구원에 신기한 듯 두리번 거렸다.
일행은 본부동 안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으로 안내됐다. 강당에 들어서자 먼저 온 홍보실 담당자가 맞이한다.

인사에 이어 슬라이드 상영이 시작됐다.연구원을 소개하는 영상물.

밋밋한 영상물에 흥미 반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밋밋한 화면은 학생들을 따분하게 만들었다.

옆에 앉은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학생, 팔짱을 끼고 있는 학생들 각양각색의 포즈가 눈에 띄었다.


영상물 상영이 끝나자 본격적인 전시관 탐방에 나섰다. 일행은 줄을 서서 강당 입구를 빠져 나오면서 연구원 소개 책자를 하나씩 빼어들고 2층 전시관으로 향했다. 주희식(동산고 1년)군에게 '대덕연구단지 연구기관에 한번이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학생은 "아니오. 이번이 처음인데요"라고 간단히 답한다. 재미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20여 평 남짓한 공간에 제법 세련된 조명 불빛이 맞는다.

전시관도 보게만 돼있어 '따분'

전시된 연구 성과물들은 투명한 유리속에 '나를 건들지 마!'하듯 얌전히 놓여있다.홍보 관계자가 옆에서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그 누구도 집중하지 않았다.

선생님을 만나봤다. 동산고에서 과학을 담당하고 있는 이금영 교사. 그는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는 학생들 모습을 찍고 있다. 보고에 필요하다는 것.

이 교사에게 연구소를 방문한 동기와 학습효과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대전지역 과학반 학생들이 1년에 한번 연구원 탐방 기회를 갖는다"며 "대전과학교육연구원 소개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관을 둘러보니 어떠냐'하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게 없네요. 흥미있는 분야라 좀 더 재미있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뭘 봤는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이민석(동산고 1년)학생에게 전시관을 둘러본 느낌을 묻자 "전시관이 너무 재미가 없다. 어려운 말로 적혀있다. 또 성과물 뿐 아니라 연구원에서 하는 일도 간단하게 관찰하고 실험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코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옆의 김동현 학생은 "전시품들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약국에 진열해 놓은 약들을 본 것 같다. 연구 성과물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고 우리에게 어떻게 유용한지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어 그냥 봤다"고 덧붙인다.

일행이 전시관을 둘러본 시간은 정확히 5분. 홍보영상물을 본 것까지 합쳐 20분이 채 안 걸렸다. 학생들은 연구원 관계자에게 인사를 한 뒤 전시관을 서둘러 빠져 나갔다.

이것이 대덕연구단지 출연연 전시관들의 현실이다.

사실 H 연구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나마 자체 홍보관을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3개 정부출연연구기관에는 거의 홍보전시관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다. 현관에 패널을 부착한 것이 고작이다. 일부는 방치된 곳도 있다.

연구원과 대중과의 연결점 단절

또 대부분 전시관들이 이른바 '보여주기식','구색맞추기식' 전시에 익숙하다. 연구개발에는 많은 투자를 하지만 정작 과학대중화를 통한 일반인과의 통로라 할 수 있는 홍보와 전시에 대한 투자는 인색한 것이다.

전시관 운영을 위해 별도의 예산을 책정한 연구기관은 1-2곳이다. 당연히 연구원을 찾는 관람객들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은 억지로 배정된 초중고교 단체가 전부다.

일반인들은 연구기관을 찾을 수조차 없다. 개인 방문은 허용하지 않는 연구원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인들이 느끼는 과학기술의 체감지수는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 대중화의 첨병이 되어야 할 출연연 전시관이 오히려 과학기술에 대해 흥미를 잃게 내몰고 있는 현장이다.

지질박물관, 대표적 성공 사례

이런 상황에서 전시관 성공 사례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지질자원연구원을 보자. 지질박물관은 지질자원연이 운영하는 지상 2층 규모의 지질자원 관련 홍보 전시관. 지난 2001년 11월 개관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박물관 개관 이전 연 2만 명의 방문객을 받았으나 개관이후 지난 연말 까지 10만 6천여 명이 다녀갔다. 개관이전보다 5배 가까이 늘어났다. 가히 폭발적이다. 대덕연구단지의 새로운 명소로 단숨에 떠올랐다.

지질자원연구원에서 만난 김성민(대전백운초4)군은 "오늘 처음 와 보는 데 공룡의 뼈와 알 등이 너무 신기했다"면서 "신기한 게 너무 많아 앞으로도 자주 와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과학재단 정현희 박사는 "출연연의 가장 큰 본분은 연구를 잘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제는 정부의 일방적인 출연연 예산 배정이 어려워진 만큼 일반인들에게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릴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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