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한국은 희망을 열어주는 새벽이었다

외국인 노동자 모피스씨가 말하는 작고 소박한 행복이야기

등록 2003.04.25 01:04수정 2003.04.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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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비가 올 것 같습니다. 구름을 짊어진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구요. 아마도 스산한 바람에 날궂이하는 어머니가 허리를 두드리며 파스를 찾고 계시겠지요. 매일 보고 있어도 항상 그리운 사람 '어머니' 가 빨리 보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무려 6년씩이나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모피스(25)씨는 인천의 한 공단에서 금속 도금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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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전화를 자주 하고 싶은데 전화비가 비싸서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못해요. 편지라도 자주 써야 하는데 일하고 나면 피곤해서 그것도 쉽지가 않네요."

가족 생각이 나는지 연신 웃으면서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모피스씨는 한 달에 150만원 내외의 월급을 받는 가운데 130만원을 고스란히 가족에게 보냅니다.

"고향의 평균 임금은 고작 20-30만원 밖에 안돼요. 제가 보내준 돈으로 고향에서는 3층 건물을 짓고 자가용도 굴리고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어요. 비록 제가 고생한다 할 지라도 고향의 가족들이 행복하면 그것처럼 좋은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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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분주히 일하는 동료들이 모피스씨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했습니다. 신문에 나온다며 동료들이 그에게 장난스레 빗질을 권합니다. 동료들의 애정 어린 관심에 쑥스러운지 그가 새색시처럼 수줍어합니다. 굳이 빗질을 하지 않아도 그의 머리는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합니다. 곱게 빗질을 하는 그의 모습에 동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작은 여유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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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꿈 많은 나이 열 아홉. '의과 대학생' 이었던 그가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온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에 왔다"며 그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어합니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어요?" 하는 질문에 그는 머뭇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어갑니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에요. 현실이 아니잖아요.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또 이뤄질 것 같지만 꿈은 꿈이죠….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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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모피스씨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번 이라크 전쟁을 지켜보며 그는 몹시 가슴이 아렸다고 합니다.


그의 취미는 축구입니다. 쉬는 날이면 동료들과 축구를 합니다. 박지성과 안정환 선수를 좋아하는 그가 2002한일 월드컵을 회상하며 뿌듯해 합니다. 같은 아시아 인으로서 그는 한국의 4강 진출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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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전 정말 좋은 한국 사람만 만났어요. 그동안 단 한번도 나쁜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 방글라데시에도 나쁜 사람은 있어요.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항상 같이 있는 거잖아요. 결국은 제가 먼저 타인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저에게 '부'를 안겨준 한국이 좋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전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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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어디를 가도 다 마찬가지죠. 모든지 열심히 하는게 중요한 거죠!"

어수룩한 한국 말이지만 그 속엔 모피스씨의 삶의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그는 단 한번도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 그는 행복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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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매몰차게 움직이는 육중한 기계가 시간을 재촉하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쏟아냅니다. 지친 하루를 달래며 온 가족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시간. 그는 가족 대신 동료들과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차가운 금속에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그가 마술을 부립니다. 고단함에 지친 표정으로 일을 하던 동료들이 그의 미소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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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고향에 꼭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모피스씨의 꿈은 소박합니다. 가족을 꼭 한번 만나고 앞으로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계속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어 합니다. 행여 소중한 꿈이 깨져버릴까 조심스레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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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의 '코리안 드림' 이 천천히 여물고 있습니다. 그에게 한국은 '희망'과 같은 '새벽'입니다. 모피스씨는 당당히 그의 능력과 노력으로 '새벽'을 열었습니다. 다음에 언젠가 그를 만나면 "단지 꿈은 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죠!" 하는 말을 그에게 꼭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자를 한 순간 너무도 부끄럽게 만들었던 그의 진심어린 인사를 전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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