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벌써 39일째

천안 넘어서...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12km

등록 2003.05.06 12:42수정 2003.05.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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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최초로 '독자 편지'를 받았다. 새만금 삼보일배 기사를 계속 올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예순 가까운 성직자들은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새만금 너른 갯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눈물겨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는 계속 기사 비중이 작아지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네요"라고. 그 편지를 읽고 누군가 내 기사를 신경써서 읽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고, 기사를 꾸준히 쓰지 않은 것 때문에 죄송하기도 했다.

a 38일째 삼보일배 풍경

38일째 삼보일배 풍경 ⓒ 선희

이번 연휴에 동아리에서 본초(약재 개념의 풀) 공부를 하러 산에 가는 일정이 있었지만, 대신 삼보일배에 참여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없어서 항상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꾸어서 기사에 넣었는데, 이번에는 같은 동아리의 언니를 나의 '사진기자'로 임명하여 함께 내려갔다.

삼보일배 38일째인 5월 4일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그냥 천천히 걸어가는데도 땀이 나왔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김경일 교무님, 주말에 삼보일배에 참여하시는 김숙원 교무님,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오셔서 도보로 참여하시는 이희운 목사님은 '묵언'이라고 쓴 이름표를 다셨다. 이날부터 삼보일배 수행자들은 묵언기도를 시작하셨다. 원래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이번 삼보일배의 원칙 중 하나였지만, 아예 말씀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어린이날 놀이동산 대신... 조개는 없고 갯벌만 있었어요

울산환경운동연합 회원인 이숙씨 가족은 새만금 살리기 행사가 있을 때부터 종종 참여했다. 이숙씨는 학원 강사를 하고 있어서 그간 시험기간이라 바빴는데 이번 연휴에 딱 이틀 시간이 나서 달려왔다고 한다. 천주교 여성 생태계 모임 '레헴' 회원이기도 한 이씨는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던 해창갯벌이 망가지고 석산이 무너질 때는 가슴까지 무너졌다고 한다.

a 어린이날 놀이공원 대신 새만금에 갈 거예요

어린이날 놀이공원 대신 새만금에 갈 거예요 ⓒ 선희

"그때부터 환경운동연합에 가입하고 행사가 있으면 참여하려고 노력했어요. 성직자들께서 삼보일배로 죽음의 길을 가시는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큰애는 새만금 문제 이야기해줘서 이해하고, 작은애는 자세히 이해는 못하지만 힘든 일 하시는 것은 알아서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씨의 딸 이조은(초등학교 2학년)군은 어린이날에 놀이동산 대신 마냥 걷기를 하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 새만금에 갔을 때 게, 조개 등을 잡았고 갯벌은 찐득찐득해서 재미있다고. 이 숙씨 가족은 내일 울산으로 내려가며 새만금에 들러 갯벌 상황을 확인해볼 것이라 한다.


경기도 이천에서 온 초등학교 3학년 장한빛군은, 쏙쏙 뜯기는 쇠뜨기를 보여주며 '조립식 풀'이라고 하자 "어? 어떻게 만든 거예요?"라며 놀라는 귀여운 아이였다. 한빛이는 내일 할아버지 댁에 가서 사촌동생들과 놀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삼보일배를 따라 걷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재미있고, 새만금을 살리러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년에 새만금에 갔었어요. 갯벌에 조개 잡으러 갔었어요. 그런데 조개는 없고 갯벌만 있었어요. 아 참, 조개 딱 하나 있었다. 아주 조그만 거였는데 땅속으로 도망가 버렸어요. 삽 같은 걸로 갯벌 파는 게 재밌었어요."


a 붕어빵처럼 아빠를 닮은 한빛 가족. 엄마는 왜 안 보일까?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이 한빛.

붕어빵처럼 아빠를 닮은 한빛 가족. 엄마는 왜 안 보일까?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이 한빛. ⓒ 선희

2시 10분에 성환읍에 도착했다. 녹색평론 편집장인 변홍철씨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새만금 방조제를 그대로 두고 매립은 하지 않은 채로 바다도시를 만들자는 '김석철 안'에 대해 백낙청 교수가 지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평론은 '김석철 안'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밝혔다. 백 교수가 토론의 장은 열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녹색평론에 기고를 부탁해서 이번 호 녹색평론에는 백 교수의 글이 실린다고 한다.

"이왕 만들어진 방조제를 그대로 둔다는 소위 '대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녹색평론의 입장입니다. 생명 앞에서 대안을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갯벌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백 교수님의 진정성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다 생명을 생각하는 단순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식인들은 큰 기획, 큰 그림에 익숙한 생각의 습관 때문에 단순한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바다도시안'으로 '죽어있던 황해를 되살린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실 황해는 죽었던 적이 없었죠. 인간의 이익을 위한 잣대로 보면 죽어있었지만, 실은 황해는 언제나 살아있었는데, 요새 들어서야 갯벌 매립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a 휴식 시간. 성직자들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휴식 시간. 성직자들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 선희

쉬는 시간에 뜻밖에 학교 동아리 선배를 만났다. 경희대 한의대 품(FOOM) 97학번인 류상욱씨는 아는 분을 따라서 삼보일배에 왔다고 한다. 삼보일배 수행자들에게 뜸도 떠드리고 안마도 해드리려고 왔는데, 어쩌다 뜸 도구를 안 가지고 왔다고 아쉬워했다.

절할 때 어떤 근육을 쓰게 되는지 직접 알기 위해 오기 전 날 100배를 해보았다는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나도 직접 100배 정도 해 보면 쉬는 시간에 안마를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료 지식 없이 정성만 가지고 안마를 하면 자칫 수행자들의 근육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 걱정된다는 류씨는 품 사람들에게 삼보일배 현장으로 의료활동을 오자고 제안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바다가 없으면 산도 없다

2년 전에 지리산 살리기 도보 순례를 했던 인연으로 새만금 삼보일배에 참가한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지리산 댐을 막기 위한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지금은 '지리산생명연대')에서 낙동강 도보순례, 지리산 도보순례를 했는데 그 때 단장이 수경 스님이었다고 한다. 어제가 바로 도보 순례 2주년이었고 그 기념행사를 천안에서 했다고 한다.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인 김경일씨는 지리산과 새만금의 관계를 묻자 '불교적인 관점에서, 바다가 없으면 산도 없다'고 말했다. 추상적인 면에서나 구체적인 면에서나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간척사업의 방조제를 쌓기 위해 바로 옆의 국립공원 해창산에서 토석채취를 해서 산을 밀어버리지 않았는가. 바다를 메우기 위해 산을 깎는다.

신옥씨는 도대체 쌀농사를 짓지 않고 농지를 놀리면 나라에서 보상금을 주는 상황에서 왜 바다를 막아 농지를 만든다는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50년대의 간척 정서를 왜 아직까지 가지고 있나 몰라요. 새만금 매립을 막는다면 우리 죽기 전에 간척 안 하길 잘했다, 다행이다, 라고 할 날이 분명히 올 거라구요." 신 옥씨 옆에서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분은 삼보일배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이 나 구석에 가서 한참 울었다고 한다.

a 번잡한 길을 지나가는 행렬. 교통정리를 하는 박인영씨의 모습이 보인다.

번잡한 길을 지나가는 행렬. 교통정리를 하는 박인영씨의 모습이 보인다. ⓒ 선희

교통정리와 일정 진행, 각종 실무로 바쁜 녹색연합의 박인영씨는 묵언 수행이 혼란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서울권에 접어들면 길은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말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수행은 생명을 살리자는 뜻을 마음으로 하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

서울에서 온 인정숙씨는 한겨레 문화센터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기 강좌'의 기수 모임에서 4명이 같이 왔다고 한다. 이 강좌에서는 먹을거리, 교육, 에너지, 생태공동체, 생태건축, 평화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배웠다. 관심은 많았는데 이번에 처음 삼보일배에 와보았다고 한다. "와서 보니 자극, 감동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말로만 아니라 마음에 와 닿게 되네요. 이번을 계기로 새만금 관련해서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알고 보니 인씨는 교사였다.

a 깃발을 든 사람이 부안 주민 신 권 바오로 씨

깃발을 든 사람이 부안 주민 신 권 바오로 씨 ⓒ 선희

전북을 넘어가기 전에도 만났던 노래아저씨(기자가 혼자 붙인 별명) 신권 바오로 씨에게 그 때 "신부님은 예수님 믿고 저는 신부님 믿고 서울까지 갑니다. 신부님은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죽어가는 생명에 안타까워하시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분노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가진 것 모두 내어놓고 목숨 걸고 서울까지 가시겠다고 합니다. 저는 신부님을 업고라도 갈 겁니다"라고 말했던 생각에 변화가 있냐고 물었다.

"결심이 더 굳어졌습니다. 서울까지 가서 국회, 청와대 앞을 다 갈 겁니다. 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가서 싸움을 시작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싸움의 기술을 주셨으니 야무진 농성으로 꼭 성과물을 얻겠습니다. 맨손으로는 못 돌아갑니다." 신 권씨는 내내 깃발을 들고 가는 기수였다. "내가 기수인데 깃발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매일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 날 아침은 원불교 천안교당, 점심은 민주노총 충남본부, 저녁은 천안 충무병원에서 각각 준비했다. 점심은 민주노총 충남본부가 거래하는 장산곶이란 업체에서 싸게 공급하고 민주노총에서 비용을 대었다. 생수와 박카스 등의 후원도 들어왔고 부안 성당에서 찾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피로회복에 좋다는 오가피환과 성금을 두고 가셨다.

5월 5일에는 날씨가 무척 더운 상황에서 며칠째 무리하게 일정을 진행하여 피로가 쌓였고, 연휴 마지막날이라 찻길이 복잡할 것을 염려하여 하루 일정을 쉬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서울에 가까워갈수록 매연은 심해질 것이다. 앞으로 삼분의 일 정도 남은 일정 동안 성직자들이 건강하기를, 모든 참가자들과 후원자들의 정성이 세상을 감응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a 점심을 먹고 천막에서 길로 돌아가는 모습을 육교에서 찍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에 비해 한없이 느린 행렬이지만...

점심을 먹고 천막에서 길로 돌아가는 모습을 육교에서 찍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에 비해 한없이 느린 행렬이지만... ⓒ 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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