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이유로 무자격자 채용 담합"
심사위원간 '자격-표절' 놓고 논란

[쟁점 취재] 전북대 농대 교수임용 놓고 8개월 진통

등록 2003.05.07 13:04수정 2003.07.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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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교수 임용인가, 제자를 채용하기 위한 무리수인가.

국립 전북대학교가 농과대학 교수임용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내부심사위원 중 1명이 유력한 후보자의 자격, 표절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8개월째 교수임용이 늦어지고 있는 것. 사진은 전북대 농과대학 건물.
국립 전북대학교가 농과대학 교수임용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내부심사위원 중 1명이 유력한 후보자의 자격, 표절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8개월째 교수임용이 늦어지고 있는 것. 사진은 전북대 농과대학 건물.전북대학교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 위치한 국립 전북대학교(총장 두재균)가 신규 교수 임용을 놓고 8개월째 내부 진통을 겪고 있다.

신규 교수 임용에 나선 내부 채용심사위원 3명이 '전공 과목의 일치' 여부 등 지원자의 자격을 놓고 서로 대립하면서 시작된 문제는 급기야 '논문 표절' 시비로 더 커졌고, 아직까지 뾰족한 해법을 못 찾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채용심사위원 중 1명인 전모(55, 농과대학 응용생물공학부) 교수는 신규 임용 지원자가 전공과 무관하고 논문 표절까지 한 무자격자임에도 같은 학과 교수의 제자라는 이유로 무리한 채용을 추진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다른 심사위원들은 해당 지원자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전북대는 지난해 이 학교 농과대학 응용생물공학부 생물환경전공 교수(농업환경토양학)를 신규 채용한다는 공고를 내 지원자를 모집했고, 같은 해 8월 교수 임용 지원자 중 최종 후보자로 몇 명을 선택했다.

그러나 심사과정 중 내부 채용심사위원회 소속 전 교수가 이들 후보자 중 유력하게 떠오른 C씨의 전공이 신규 채용하려는 교수의 전공(토양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됐다.

전 모 교수, "비료학 논문 학위자가 토양학을 가르치나"
한 모 교수, "무자격자였다면 원서 받지도 않았을 것"


전 교수의 주장은 후보자인 C씨의 지도교수인 한모(응용생물공학부 생물환경전공) 교수의 전공이 식품분석에 관한 것이고, C씨의 학위논문도 '비료학, 수리학'에 관한 것이어서 토양학 전공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 교수는 신규 교수 채용에 참여한 외부 심사위원들의 전공도 '허위'로 기재됐음을 지적했다. 토양학 전공자들도 아닌 다른 대학 교수들이 외부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그들의 전공을 '토양학' 관련 학문으로 기록했고, 이들로 하여금 C씨를 '토양학' 전공자로 허위 추천하도록 했다는게 전 교수의 주장이다.

전 교수는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지난해 8월, 대학본부 교무처에 "심사위원의 숫적 우위만으로 교수가 채용돼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교수채용심사 중단요청서를 제출했다.


이 같은 전 교수의 주장에 대해 다른 채용심사위원들과 지원자 C씨, C씨의 지도교수인 한 교수는 "채용과 관련, 후보자의 전공에는 문제가 없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특히 C씨의 지도교수였던 한 교수는 "전 교수가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한 교수는 "전 교수의 주장대로 C씨가 무자격자라면 애초에 학교에서 원서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또 "전 교수의 주장은 농화학 분야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비료학은 '토양 오염' 문제를 다루므로, 토양학을 가르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제가 커지자 한 교수 등은 전북대 교수회에 요구해, 교수 공채 중단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 사태 해결에 나섰으나 양측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대학본부에서는 외부 심사위원이 아닌 전문가 5명에게 '전공 일치' 여부를 문의한 후 그 판단에 맡기자는 제안을 했고, 채용심사위원들은 이를 수용했다. 대학본부가 발표한 바로는 5명의 전문가들이 모두 C씨의 전공이 '토양학'으로 일치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대학본부측은 일단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라 C씨의 전공 일치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전 교수는 이들 전문가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지원자들과도 비교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이 같은 결과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수 채용 후보자의 '전공 적합 여부'에서 비롯된 전북대 내부의 갈등에 대해 외부인사들은 대체로 "적합여부를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한국농화학회지 김수언(서울대 교수) 편집장은 전북대 갈등을 두고 "지금 시점에서 전공의 적합 여부를 말하는 것은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고 파장이 크기 때문에 밝히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김 편집장은 "농화학이라는 일반적인 범주에서 보자면, 비료학과 토양학을 칼로 나누듯이 나눌 수는 없다"며 "학회들도 '토양비료학회'라는 명칭을 쓰는 곳도 많다"고 밝혔다.

한편, 신규 임용을 둘러싼 전북대의 갈등은 전 교수가 다시 C씨의 학위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더욱 첨예해졌다.

97년 실험 수치를 99년 논문에 적용, 데이터 조작인가?

전 교수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논문 두 편의 도표. 전북 진안에서 97-98년에 실험한 수치(위 표)와 전북 남원에서 99-2000년에 실험한 수치(아래 표)가 똑같다.
전 교수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논문 두 편의 도표. 전북 진안에서 97-98년에 실험한 수치(위 표)와 전북 남원에서 99-2000년에 실험한 수치(아래 표)가 똑같다.
전 교수가 문제를 제기한 C씨의 표절 논문은 C씨와 지도교수인 한 교수 등이 공저한 논문 5편이다. 전 교수는 이들이 이 논문을 작성하면서 다른 논문의 도표와 그림을 베끼거나 연구 결과 수치를 다른 논문에도 그대로 적용해 조작이나 변조를 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교수에 따르면 C씨가 한 교수, 최모 교수와 함께 공동 발표한 논문 <한국 중부지방의 논토양에서 질소와 인산의 균형>(일본, Soil Science and Plant Nutrition 46권 2호, 2000) 속에 나오는 그림은 일본인 쿠니마츠 다카오(國松孝南)씨가 논문 <농지로부터의 N, P 부하>(환경기술 14권, 1985)에서 고안, 발표한 그림을 개조하여 발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전 교수는 C씨가 박사학위 논문에 사용한 1997년 실험 수치를 미국 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에도 똑같이 적용하면서, 마치 1999년에 새로 실험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주장을 폈다(사진 참조).

이 외에도 다른 3편의 논문에서, C씨는 지도교수인 한 교수 등과 함께 데이터를 조작, 변조, 복제하는 방법으로 논문을 표절했다고 전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전 교수는 "이들 논문의 '결과 및 고찰' 부분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데도 서로 참고문헌으로 인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아무리 자신의 논문이라도 다른 논문에 인용할 때에는 출처를 밝히는 것이 올바른 학자의 양심"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의도적인 논문 편수 부풀리기"라는 것이다.

반면 C씨의 지도교수인 한 교수는 전 교수의 표절 주장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전 교수가 '표절'이라고 지적한 C씨의 논문은 대부분 한 교수와 C씨가 공동으로 쓴 것이다.

한 교수는 "전 교수가 '표절'이라고 지적한 논문은 국내에 수도 없이 많다"며 해당 논문과 같은 형태가 학계의 관행으로 용인된다고 해명했다.

한 교수는 또 "전 교수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 역시 전체 논문의 1%도 되지 않는 극히 미미한 내용"이라며 "타인의 논문을 베낀 것도 아닌데 자신의 논문을 또 다른 자기 논문에서 재인용한 것이 표절이냐"고 전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 교수는 데이터 수치를 조작, 변조했다는 전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농화학 분야는 학문의 특성상 3∼4년 정도 실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토양이 매년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같은 토양에서 실험할 경우 같은 수치를 적용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 교수와 함께 채용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교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김 편집장 역시 표절 문제에 대해서는 "사적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보도에 나가는 것이라면 얘기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전북대, "외부 학회 문의 결과가 오는 대로 판단할 것"

전 교수는 현재 이처럼 자격 미달 지원자인 C씨를 한 교수와 다른 채용심사위원들이 신규 채용하려는 이유를 "C씨가 한 교수의 제자이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전 교수가 판단하기에 다른 지원자들 중에는 C씨보다 전공이 일치하고 연구 실적도 높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는 대학에서 이처럼 자격 미달인 특정 지원자를 두고 지도교수와 심사위원들이 함께 나서 채용하려는 부정 부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제자들이 올바른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관행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대측은 이번 사태를 외부의 객관적인 판단을 참고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북대 김진기 교무처장은 "(전공 일치 여부, 표절 등 문제를) 관계된 학회 여러 곳에 문의해 놓은 상태"라며 "학회에서 객관적인 의견을 주면, 그 의견을 참고해 대학본부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교무처장은 또 C씨의 표절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의 논문을 베꼈다면 곧바로 문제가 되겠지만, 전 교수가 지적한 표절 논문은 같은 저자의 논문이라 임의로 결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북대 두재균 총장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표절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의 확인을 거치느라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공정하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두 총장은 또 "전공 일치 여부는 지난번 전문가들 판단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안다"며 "학회에 전문적인 부분을 문의했으며, 양측 답변을 교차해 듣고 충분히 해명할 기회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C 지원자로부터 그간 전 교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에 걸쳐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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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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