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교회 옆 종을 걸어두었다는 나무와 김약연 선생 송덕비박도
생가로 가자면 교회 마당을 거쳐야 했다. 교회로 들어서자 두 젊은이가 불쑥 나타나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 다 조선족 청년으로 우리말이 유창했다.
한 젊은이는 비치파라솔을 펴놓고 그곳 특산물인 삼베, 약재 따위를 좌판에 잔뜩 늘어놓았다. 나는 예의상 좌판의 상품을 설핏 훑고는 교회 한 쪽에 있는 비석에 눈길을 돌리자, 다른 한 젊은이가 얼른 앞장서면서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 비석은 명동 교회를 세웠던 목사요, 독립운동가이며, 명동소학교 교장이었던 김약연 선생 송덕비였다. 유감스럽게도 비석 머리 부분은 떨어져 나갔다.
비석 바로 뒤편에는 100여 년을 더 지났을 고목이 녹음을 잃지 않은 채, 우람하게 서 있었다. 젊은 날 윤동주가 이 교회에서 봉사할 때는 교회 종을 이 나무에 매어두고 종을 울렸다고 했다.
교회는 단층 한옥 건물로 벽은 회칠을 한 기와지붕이었다. 안내하는 청년이 건네준 ‘명동교회당 건물 소개’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명동교회는 창립 당시인 1909년에 8간 집을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1916년에 김약연 목사의 주선 아래 지금의 명동교회당 건물을 세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