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84

등록 2003.05.10 16:16수정 2003.05.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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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폐하의 전 부인이 이리로 왔다고!"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월군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소식을 전하려 온 시녀는 큰 죄라도 지은 양 몸둘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월군녀는 앞뒤 가리지도 않고 급히 주몽에게로 가기 시작했다. 주몽은 그때 예주와 함께 그간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이렇게 늦게나마 공사 다망한 폐하께 찾아오게 된 것은 아들의 일 때문입니다."

"아들! 아들이 태어났었구려!"

주몽은 기쁨과 함께 다시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긴 세월동안 태어난 자식이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런 주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주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그 애의 이름은 유리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애미가 미흡한 탓인지 아이가 자꾸 삐뚠 길로 나가기에 전에 약조했던 일을 생각해내고 '아버지의 흔적을 좇아 그 표식을 찾아 오라.'고 일렀습니다. 아직 사람이 될 희망이 있다면 분명 여기로 그 표식을 들고 오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식이지만 다신 얼굴을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구려......"


주몽은 씁쓸한 듯 말끝을 얼버무렸다. 주몽과 예주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 월군녀가 기별도 없이 문을 확 열어제치고 뛰어 들어왔다.

"먼 곳에서 오신 분을 저에게 인사조차 시키지 않으시고 너무 하십니다."


월군녀는 안면에 웃음을 띄고 있으나 말투에는 칼날이 숨어있는 듯 했다.

"아...... 오시었소."

"그래 긴 세월동안 어찌 지내다가 이 먼곳까지 웬일로 찾아오셨소? 천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얼씨구나 하며 한 몫 덕이나 볼까해서 찾아온 것이오?"

너무나 직설적인 물음에 예주는 당황할 만도 했지만 오히려 이를 부드러운 말투로 받아쳤다.

"예, 그런 셈이지요. 부인되는 이가 어찌 남편의 덕을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월군녀는 예주의 말투가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생각되어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해도 20년 만에 찾아왔다는 건 이미 부부로서의 정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오?"

"정이 없다니요. 그건 폐하께서 대답하실 겁니다."

주몽은 불쾌한 낯빛으로 월군녀에게 말했다.

"때가 되면 같이 식사나 하며 서로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했거늘 이리 불쑥 찾아온 것은 대체 무슨 연유요?"

월군녀는 자신에게 여전히 냉랭한 주몽의 태도에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월군녀가 나가자 예주는 조심스레 주몽에게 물어보았다.

"왕비마마와의 사이에 자식은 두고 계신 지요?"

주몽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찌된 일인지 자식이 없구려. 다만 왕비의 언니 소생이 둘 있는데 이들을 왕자로 두고 있다오."

예주는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폐하의 소생도 아닌 이를 왕자로 정했다는 것은 크게 실수하신 일입니다. 나중에 분란이 생길까 걱정됩니다."

주몽은 고개를 끄덕이며 예주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런 일은 걱정하실 거 없소. 유리가 돌아온다면 태자로 삼고 당연히 당신은 태후가 되는 것이오."

"어찌 그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지금의 왕비는 애초부터 왕비로 인정한바 없소. 당신이 왕비이외다."

애초에 주몽은 묵거의 말을 받아들여 월군녀와 혼인을 한 후 왕을 칭하면서 동부여에 있는 예주에게 왕비의 칭호를 내린 바가 있었고 다만 월군녀에게는 왕비의 대우를 한 것뿐이었다. 게다가 이는 왕실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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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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