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학교 소풍 온 딸아이

등록 2003.05.15 08:53수정 2003.05.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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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한 딸아이가 고교 시절의 첫 소풍을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 지난 13일의 일이다. 고향 태안 땅의 한 곳인 안면도로 학교 소풍을 온 딸아이를 보는 것도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전화로 처음 그 소식을 전할 때 딸아이는 섭섭하면서도 기쁜 기색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을 찾는 것으로 고교 시절의 첫 소풍을 장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한편으로는 집에서 가까운 안면도로 소풍을 가게 되어 도시락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가족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전날 저녁에 도시락 공사 준비를 다 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한차례 김밥 공사를 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된 후로는 처음 벌인 김밥 공사인데, 딸아이를 외지 학교로 보내 놓고도 김밥 공사를 하는 것이 우습다는 말을 아내는 했다.

자신은 학교 출근을 해야 해서 집 근처로 소풍을 온 딸아이를 볼 수 없지만 남편에게 김밥 도시락을 주어 보내게 된 것이 아내는 그저 기쁘고 즐거운 모양이었다. 기쁘고 즐거운 것은 김밥 공사를 도와 주시는 팔순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딸아이가 소풍지에서 먹을 도시락과 자취 집에 가지고 가서 저녁과 아침에 먹을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선생님들께 드릴 도시락도 몇 개 쌌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점심을 준비해 오실 테지만, 우리 집에서 마련한 김밥을 드려보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아내의 김밥 솜씨는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니까…. 우리 집 김밥을 먹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에서 최고 맛있는 김밥이라는 평을 할 정도니까….

딸아이가 집 근처로 소풍을 온다는데, 도시락 하나 달랑 들고 가서 딸아이에게만 주고 온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우리 동네로 오시는 선생님들을 이 기회에 찾아뵙고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일 터였다.


선생님들께 드릴 김밥 외에 나는 생선회를 마련했다. 아침에 횟집으로 걸음을 해서 광어 회 2킬로를 미리 주문했다. 그리고 11시쯤 횟집에 다시 가서 스티로폼 상자에다 담아놓은 광어 회와 양념 등속을 찾아 가지고 차에 싣고 출발을 했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딸아이로부터 소풍 차량 행렬이 천수만 제방 길로 들어섰다는 연락을 받고 천수만 길에서 나와 안면도로 향하는 길목 어귀쯤에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잠시 후 일곱 대의 관광버스 뒤를 따라갈 수 있었다.


차들은 애초의 목적지인 안면도 휴양림으로 갔으나, 휴양림의 버스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차들은 휴양림을 포기하고 근처 꽃지로 방향을 돌렸다. 꽃지는 지난해 봄 세계꽃박람회가 열렸던 곳이고, 올해에도 며칠 전까지 꽃잔치 행사가 열렸던 곳이었다. 꽃잔치 행사도 끝난 후고 또 평일이라 꽃지의 광장 옆 주차장은 많이 비어 있었다.

나는 손쉽게 딸아이와 만나 김밥 도시락과 집에서 가져온 몇 가지 물품을 건네 줄 수 있었고, 또 쉽게 선생님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여덟 분 선생님들을 내 차에 태우고, 학생들의 점심 식사 장소인 소나무 숲이 바라보이는 광장 건너 맞은편 소나무 숲으로 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 차에 늘 싣고 다니는 두 개의 돗자리를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두 개의 종이상자를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는 김밥 도시락과 물병들만 있었다. 나는 소주 두 병과 여러 개의 소주잔까지 챙겨 주신 내 어머니께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팔순 노친네는 소주잔도 유리잔은 깨질 염려가 있다며 굳이 사기로 만든 잔을 넣어주신 것이었다.

두 개의 큰 접시에 담겨진 광어 회와 양념들을 펴놓고 나는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내 딸아이에 대한 얘기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딸아이는 천안에서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에게서 갖게 되는 실망과 안타까움도 큰 것 같았다. 아이들 중에는 의외로 의사를 지망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내 딸아이는 아이들의 의사 지망 이유가 궁금했다고 했다. 비록 여학생들이지만, 현재 지망생 기근 상태를 보이고 있는 외과 쪽으로 마음을 두는 아이들이 있기를 기대했고, 그 아이들의 입에서 '인술(仁術)'과 '소명' 따위 단어들이 나오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 지망 이유를 '돈'과 연결짓더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라고, 오로지 돈과만 연결짓는 그 태도들에서 딸아이는 너무도 실망이 컸노라고 했다.

지난달 '4·19의거 기념일'을 지낼 때는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4·19'를 너무도 모르고 있는 사실에서 절망감도 컸다고 했다. 의외로 '4·19'를 아예 모르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알긴 하더라도 전후 관련 사항까지 총체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는 거의 없었고 그저 기념일 정도로만 알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이 '5·18'은 어찌 제대로 알겠느냐는 말도 딸아이는 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딸아이는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다.

중학교 시절 김종필씨의 자민련에 의한 충청도 지역의 '황색바람' 현상 속에서 그것에 오도되어 있는 아이들과 일대 논쟁을 벌인 적이 있고, 숫자 '4'를 기피하는 아이들과도 언쟁(급기야는 "그렇게 4가 싫으면 네 사지 중에서 팔 하나를 떼어버리고 살아라"라는 과격한 말까지 했다던가)을 벌였던 경험을 지니고 있는 딸아이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에는 아이들의 '생각 기피' 현상이 몹시 안타깝다고 했다.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습성을 지니지 못하고, 아예 생각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국어시간에는 선생님이 이육사의 시 '절정'을 소개해 주고 그 시에 대한 느낌을 발표하라고 하면서 내 딸아이를 지목했다고 했다. 그때 딸아이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러자 여러 아이가 "그까짓 생각의 정리가 뭐 필요하냐. 그냥 되는 대로 말하면 되지"라고 해서 딸아이는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생각'을 경시하는 아이들의 태도, 생각하는 습성을 스스로 기르지 못하는 그 분위기 속에서 딸아이는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 모양이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옳고 그름을 적극적으로 판별하려는 자세, 다시 말해 진정한 가치를 찾고 지향하려는 태도일 터였다. 그것에는 깊은 생각과 통찰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자연 '고뇌'를 동반하는 것이기 쉽다. 그리고 세상 사물에 대해 고뇌를 한다는 것은 세상을 고달프게 살아 갈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까지도 내 딸아이는 생각하고 각오하고 있다.

그러니, 매사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내 딸아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 가능성도 많이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생각하는 힘에 의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테고, 극복할 수 있는 방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테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런 말까지 하게 된 것은, 선생님 한 분이 "규애는 늘 생각을 깊이 하는 것 같아요. 그 아이에게서 생각의 폭이 넓고 깊다는 것을 자주 느껴요"라는 말을 하신 탓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다.
"규애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큰 것 같아요. 간혹 우리나라의 사회문제라든가, 정치문제와 관련하는 얘기를 해주면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규애는 눈빛이 더욱 초롱해지고 고개를 끄덕이고 해요. 그래서 자연 규애를 상대로 얘기를 하게 돼요."

그때 내가 한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저도 걱정이 큽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또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세상을 고달프게 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으니까요."

선생님들은 대체로 내 말에 동의했다. 생각과 고달픈 삶의 연관성을, 그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 선생님들도 걱정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얼마 전 휴일을 맞아 집에 온 딸아이가 그 무렵에 치른 '수능 모의고사'에 관한 얘기를 했다. 아이는 280명중에서 101등을 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중학생 시절 각 반에서 5등 안에 든 아이들만 모인다는 도시 학교에서 시골 출신으로서 느끼는 경쟁 체감을 설명하면서 아이는 자신이 101등을 한 것도 잘한 것이라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다음 말이 더 재미있었다. 같은 '유학생' 처지인 한 아이가 "그렇게 세 자리 등위를 기록하는 실력을 가지고 어떻게 이 학교에 올 수 있었니?"라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더란다. 그 말에 딸아이는 "너는 시험 점수가 전부라고 생각하니? 나는 시험 점수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응수했다나.

그리고 딸아이는 그 친구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그 친구의 그 업시름을 스스로 좋은 자극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여 곧이어 치른 '중간고사'에서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했다. 부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객지에서 외롭게 자취 생활을 하는 그 어려운 처지에서도….

등위는 발표를 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평균 97점 정도를 했으니 앞으로 더 잘할 가능성도 확보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어른처럼 말하며 딸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딸아이의 그런 여유 있는 태도와 환한 웃음이 대견하고 기특하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아이에게서 생각의 그림자랄까, 생각과 고뇌의 고달픔이 아이의 삶에 필경은 동반하리라는 생각을 나는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또 말했다.
"전 성적이 많이 올라간다 해도 결코 자만하거나 우월감을 갖지 않을 거예요. 나보다 공부를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질 거예요. 또 성적이 많이 떨어진다 해도 절대로 열등감이나 좌절감을 갖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딸아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나는 그 고마운 마음 옆으로 미안한 마음도 컸다. 딸아이에게 생각하는 버릇, 이런저런 손해를 감수하며 세상을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을 조성해 준 아빠를 딸아이가 혹 원망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까, 괜한 두려움마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 무렵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시내를 통과할 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아무 생각 없이 길에다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때 문득 딸아이를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 쓰레기 하나 제대로 버릴 줄 모르는 아이들 속에서 딸아이의 고뇌가 얼마나 컸던가.

나는 딸아이를 생각하면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 옆으로 늘 미안한 마음이 서린다. 세상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고달픈 짐을 아이에게 너무 일찍부터 지워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평생의 짐이 지레 안쓰럽기도 해서….

그 생각의 짐이 아이의 삶에 더 큰 슬기와 보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 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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