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한겨레> 생일상 뒤엎다

진중권의 '낯설어진 한겨레'에 대한 반론

등록 2003.05.15 10:53수정 2003.05.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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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주언론을 표방하며 창간한 <한겨레>가 벌써 창간 15년이 되었다. 기꺼이 축하할 일이다. 조선ㆍ동아 족벌 신문이 신문 시장을 대부분 점령한 환경에서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논조의 <한겨레>는 분명 의미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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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 ⓒ 오마이뉴스 노순택

소수자에 대한 관심, 남북 관계를 합리적으로 보는 관점, 정치적 공정성 등은 <한겨레>의 존재를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왔다. 생일날 잔치가 빠질 수 없는 법이어서 생일을 맞은 <한겨레>는 72면 특대호에 각계 인사들의 축하 메시지와 특집 기사를 실어 자축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에 아쉬운 점을 토로하는 공간으로 '이런 한겨레로' 꼭지가 마련되었다. <독립신문> 대표와 복거일 등 극우 논객들의 의견에서부터 강준만, 변희재 등 중도파 논객들의 기고문이 각각 실렸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충고의 선에 머무르는 남의 생일날이라는 것을 충분히 고려한 수위의 글이다. 그런데 이 생일 잔칫상을 발로 차고 뒤엎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조갑제도 김동길도 아닌 진보 논객 진중권이다.

아니 축하 메시지를 날려도 모자랄 판에 어째서 '깽판'을 쳤을까? 그가 기고한 글 '낯설어진 한겨레'를 보면 의문이 풀릴 듯하다.

진중권의 글은 15년 전 "창간호가 집으로 배달되었던 그 아침"을 추억하며 애틋하게 문을 연다. 그러나 곧 "이 신문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지금"이라는 표현을 통해 십자포화가 시작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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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집착은… (한겨레) 신문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 대한 추억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말하자면 일종의 미련인 셈이다. 어느새 내게 <한겨레>는 그런 신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는 나 혼자만의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공유하는 어떤 객관적 판단이다. <한겨레>는 낯설어졌다.

진중권이 <한겨레>의 과거를 추억하건 미래를 기약하건 그건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 몹쓸 미련 같은 것이 혼자만의 느낌이 아닌 객관적 판단이란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민주당 기관지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내지는 "<한겨레>가 빨갱이 신문임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따위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생떼'에 속한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할 수 없는 주장을 가지고,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수법 말이다. 글의 초반부터 이 모양이니 이후의 전개가 '막가자는 얘기'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계속 진중권의 생떼를 지켜보자.

요즘 <한겨레>가 자처하는 진보성의 본질(?)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한다. 선거와 관련이 없는 한에서 <한겨레>의 지면은 온갖 종류의 진보적 담론으로 풍성하다. 하지만 그 담론들이 정치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순간에 이 신문의 진보성은 철저하게 민주당이라는 새장에 갇혀 버리고 만다.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 차례 본 것 같다 … 앞으로 '민주당 기관지' 소리 안 듣게 하겠다고는 하나 솔직히 그 다짐이 내게 그리 미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단락을 짧은 글로 줄이면 "선거 때 <한겨레>는 민주당 기관지였다. 정녕 진보적 신문이라면 선거 때 민노당 편을 들어라!"가 되겠다. 이렇게 명쾌하게 요구하면 될 것을 뭘 저렇게 빙글빙글 돌려가며 뜸을 들이실까? 아무튼 남의 생일날 최대의 욕설인 '민주당 기관지 한겨레'를 퍼붓는 진중권의 심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지면 좌측에 <독립신문> 대표, 복거일이 이미 써갈긴 욕설을 '진보'라는 진중권에게 또 들어야 하다니. 그 놈의 생일잔치 분위기 한번 고약하다. 설마 <한겨레> 고정 칼럼 필자에서 '잘렸다'고 분풀이하는 것은 아닐테고(어린애들도 그런 유치한 몽니는 부리지 않는다!), 선거 때 민노당 안 밀어줬다고 이런 욕설을 퍼붓다니. <한겨레>의 생일상이 들썩들썩 요동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들어보자. 진중권은 지방선거 당시 <한겨레>가 이문옥 후보를 밀지 않은 것에 또 다시 불만을 제기한 뒤, 북한 관련 보도에 대한 비난으로 전선을 이동한다. 연평총각 얘기 안 하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다.

언젠가 '연평총각'이라는 네티즌이 인터넷에 서해교전에 관한 소설 한 편을 올린 적 있다.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작성된 그 글은 누가 봐도 작문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한겨레에는 그 글이 버젓이 링크되어 있었다. 언론에서 이런 짓 하면 안 된다.

연평총각 문제로 그렇게 혼나고도 또 우겨댄다. 물론 연평총각의 글에 몇몇 오류가 발견되긴 했으나 그 글의 상당 부분은 사실에 기반해 있었다. 또 언론이 온갖 소설을 써대는 가운데 사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차원에서도 연평총각의 글은 충분히 의미를 가졌다 할 수 있다. 이럴 땐 혹시 진중권이 <한국논단>에서 파견된 첩자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노당에서도 이 사건 때문에 탈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에 품고 있다니 섬뜩할 뿐이다. <한겨레> 생일상 위에 서리가 내리는 듯하다.

이어지는 진중권의 옛 일 들춰내기. 그 유명한 홍세화 징계 사건이 안 나올 도리가 없다.

<한겨레>에는 노골적으로 민주당 편향을 보이는 기자들이 많으나 적어도 홍씨는 지면에서 자기의 소속 당을 홍보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한겨레>는 그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항의가 빗발치자 징계는 철회했지만 기자의 당적 보유 문제는 기어이 투표에 부쳐졌다. 이런 문제는 다수결에 부쳐지는 것 자체가 이미 다수의 폭력이다. 화가 나서 징계가 철회될 때까지 <한겨레> 기고를 거부한다고 했더니 징계를 철회한 뒤에도 연락이 없다.

<한겨레>에 노골적 민주당 편향 기자들이 많은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다(실은 <한겨레>가 진중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홍세화씨가 지면에서 자기의 소속 당을 홍보한 경우는 없는지 몰라도 방송에서 당원 신분으로 홍보한 적은 있다. 진중권은 방송 부분은 쏙 빼고 지면 얘기만 들이민다.(어느 신문이 많이 써먹는 수법 아닌가?) 그래서 마치 홍세화씨가 민노당 당원이라서 징계를 당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한다.

분명히 하자. <한겨레>뿐만 아니라 국내 대부분 언론은 기자의 당적 보유를 사규에 의거해 금지하고 있다. 논란이 있지만 당적을 허용해도 나름대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홍세화씨 경우엔 그 사규를 어겼기 때문에 규율에 의거해 징계를 내린 것이다.(필자 개인적으로는 기자의 당적 보유가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하나 아직 언론계와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진중권은 <한겨레>에 무리한 요구를 한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다수결 투표를 할 것도 없이 무조건 기자의 당적 보유를 허용해야 한단다. 외부 필자 신분으로 사규에 의거한 징계에 대해 철회를 요구했단다. 진중권 선생께는 미안한 얘기지만 진 선생 칼럼이 없는 덕분에 <한겨레> 볼 맛이 난다는 것은 '본인의 의견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객관적 판단'이다.(이것은 진 선생 특유의 나홀로 여론조사 수법임). 어쨌든 이쯤 되니 생일상은 뒤집어지기 직전이고 생일잔치 손님들 미간에는 조금씩 주름이 지는 듯하다. 자, 이제 생일상을 뒤엎을 차례다.

계속되는 진중권의 궤변.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에는 비슷한 내용의 만평이 실렸다. 한마디로 권영길 후보의 선전 때문에 이회창 후보가 즐거워하고, 노무현 후보는 피해를 보고 있다는 영상 메시지다. 민주노동당이 그렇게도 못마땅한가? 그럼 정면으로 비판할 일이다. 가뜩이나 대세론과 사표심리 때문에 늘 소수로 남도록 강요받는 진보정당을 도와주기는커녕 옆에서 이렇게 비열한 공격을 퍼붓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

드디어 욕 나왔다.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단다. 졸지에 <한겨레>에는 금수들만 모여 만드는 동물 신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실이 어디 그런가? 필자는 오히려 권영길 후보와 민노당이 어째서 그렇게도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에 인색한지를 묻고 싶다. 대선 때 신나게 펼치던 양비론, 그것이 이 후보측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은 왜 못 했을까.

민주노동당을 정면으로 비판하라고? 민노당에 대한 불만과 비판할 거리가 수두룩하게 많은데도 그 자그마한 진보정당의 지분을 침해하고 싶지 않아 자제한다는 사실부터 깨달을 일이다. 민노당이 비판받을 일이 없어서 놔두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거악의 세력이 워낙 막강해서 방치하고 있단 얘기다. 이런 충정의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고 비난하는 것은 진중권 아닌 누가 할 수 있을까.

글의 말미로 이동하니,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의 <한겨레> 방문을 놓고 비난한 부분이 눈에 띈다.

노무현 당선자의 예방을 받은 기사가 자랑스레 신문의 1면에 오른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노 당선자는 현안에 관해 <한겨레>의 고견을 들으러 방문한 것이라 하나 그게 대선 기간 중의 <한겨레>의 공로를 치하하는 예방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다. 권영길이 당선돼서 <한겨레>를 방문했어도 이런 비난을 했을지. 아무리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졌어도 자사를 방문했는데 어찌 경사가 아닐까. 왜 이런 비난을 했을까. 결국 앞서 했던 '한겨레는 민주당 기관지이며, 대선 때 노무현 밀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다른 언론 다 제쳐두고 <한겨레>를 방문한 것은 그들이 대선 때 밀어줬기 때문이며 이걸 좋다고 덥석 1면에 실은 <한겨레>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주장 아닌가? 진중권이 그렇게 싫어하고 혐오하는 어떤 신문이 펼칠 법한 주장인 것 같다. 자신이 너무 미워하는 대상이라 동화되어 버린 것인가? "<한겨레>의 공로를 치하하는 예방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또 나홀로 설문조사 했나보다. 신뢰도 3%, 오차범위 97% 짜리 진중권표 설문조사 시스템이라도 구축 되었나 보다.

이런 이유에서 진중권은 "<한겨레>의 생일을 마냥 축하할 수가 없다"고 한다. 뭘 새삼스럽게. 이미 생일상 분위기는 깨졌고 손님들은 짜증내고 있어 끌어내야 할 판인데, 주인장은 그것도 애정어린 비판이라며 대문짝만하게 실어 주었다. 진중권 글 옆의 다른 필자들은 과거보다는 미래 지향적으로 비난보다는 대안 모색 위주로 기고한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복거일조차도 <한겨레>의 장점과 독특한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다.(사회주의적이라는 표현은 좀 거슬리지만)

그런데 글 초반부터 끝까지 줄곧 옛날 얘기와 개인적인 원한, 그리고 신문에 대한 음해와 악담으로 점철한 이런 짓거리는 '진보누리'나 진중권 개인 홈페이지에서 그것도 아니면 술자리에서나 할 일이다. 진중권의 생일날 누가 찾아와서, "자기 글 내에서도 하는 말이 계속 바뀌고, 남의 글을 자의적으로 가위질 해 인용하고, 성격 포악하고, 진보인 척 하지만 극우에 가까운 진중권"하고 비난한다면 진중권 표정이 어떨까. 또 고소니 뭐니 들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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