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떠나는 70년대 추억여행

라이브 카페 <올드팝스>, 4인조 50대 '아저씨' 밴드

등록 2003.05.16 12:08수정 2003.05.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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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올드 팝스 연주장면

올드 팝스 연주장면 ⓒ 이상원

"We skipped the light fandango……Turned a whiter shade of pale"(A Whiter Shade of Pale-Procol Harum)

카페 문을 들어서니 귀에 익은 멜로디가 반갑다. 무대에서는 4인조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연주자들의 차림새며 생김새가 동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아저씨들 같다. 마음씨 좋은 문방구 아저씨 같기도 하고, 만화가게 털보아저씨도 닮았고, 사무실 책상이 잘 어울릴 듯한 아저씨도 있다.


a 정신욱씨(키보드)

정신욱씨(키보드) ⓒ 이상원

멋 부린 카페 건물이 하나 둘 들러서고 있는 대구 수성못 동편, 라이브 카페 <올드팝스>에는 이렇게 이웃 아저씨 같은 네 사람이 오래된 팝음악을 연주한다. 팀 이름도 올드팝스밴드(O.P. Band). 홀에는 40∼50대 손님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맥주를 들이킨다.

'해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Animals)'에 이어 씨씨알(CCR)의 '훌 스탑 더 레인(Who'll stop the rain)'의 경쾌한 리듬이 이어진다. 신청곡 쪽지가 전해지자 양희은의 '한사람', 영사운드의 '등불'을 부른다. 눈만 감으면 영락없는 70년대다. 연주자와 손님들의 주름살과 성긴 머리카락이 세월을 느끼게 해 준다.

그들이 장발이었을 시절, 2∼3백원하던 백판(해적판LP)으로 이런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그 시절 백판을 턴테이블에 올리면 휜 것은 울렁울렁 물결 춤을 추었고, 가끔씩 딸꾹질로 바늘을 뛰게도 했다. 자꾸 듣다보면 잡음도 음악처럼 익숙해졌다.

a 조인준씨(베이스)

조인준씨(베이스) ⓒ 이상원

그러다 나이가 들고 가정을 꾸리고 일상에 묻히면서 그때의 음악들은 시나브로 멀어져 갔다. 라디오에서 어쩌다 옛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시절이 환등기처럼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카페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추억을 듣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쉬는 시간에 연주자들을 만났다.


나이부터 물어 보았다. 한진수 씨(기타)와 조인준 씨(베이스)는 쉰둘이고, 정신욱 씨(키보드)와 배태규 씨(드럼)는 쉰살이라고 했다. 음악감상실이 젊은이들의 문화적 해방구이던 70년대, 그들은 동성로 '해바라기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연주를 했었다.

"예전엔 '해바라기'라고 하면 대구 다운타운에서는 유명한 밴드였습니다.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면서 각자 일을 찾아 흩어졌지요. 저는 계속 음악활동을 했고요. 제가 몇 달전 이 가게를 열면서 20년만에 다시 모이게 된 겁니다." 정신욱씨가 설명했다.


멤버들이 한마디씩 했다. "음악을 잊을 수는 없었죠. 아직 연습이 부족해 손가락은 옛날만큼 안 돌아가지만 정열은 더 합니다. 점점 더 좋아질 겁니다. 올 가을에는 작은 콘서트도 열 계획도 있습니다."

a 한진수씨(기타)

한진수씨(기타) ⓒ 이상원

"우리 밴드는 네 명 모두 보컬을 한다는게 장점이죠. 곡의 성격에 맞춰 누가 리드 싱어를 할지 정합니다. 그런데 화음은 좀더 다듬어야 겠어요."

"레퍼토리도 점점 늘려가야 하고요. 젊을 때는 딥 퍼플, 그랜드 펑크, 블랙 사바쓰 등등 하드 락도 많이 했죠. 요즘은 그런 음악은 피하고 이지 리스닝 계열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많이 합니다."

그들에겐 프로다운 진지함이 있었다. 특히 반가웠던 신청곡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 사람이 "블랙매직워먼"이라고 했다. 나머지 멤버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싼타나 하면 요즘 젊은이들에겐 '스무드(Smooth)'가 떠오르겠지만, 이들에겐 '블랙매직워먼(Black Magic woman)'이나 '이블 웨이즈(Evil Ways)'가 더 친숙하다

a 배태규씨(드럼)

배태규씨(드럼) ⓒ 이상원

그들은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바이 바이 러브(Bye Bye Love-Buddy Holly)', '핸디 맨(Handy Man-James Taylor)', '솔리터리 맨(Solitary Man-Neil Diamond)', '릴리즈 미(Release me-Engelbert humperdink)'가 이어졌다. 군데군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쉬는시간의 인터뷰가 생각나 '블랙매직우먼'을 신청했다. 젊은 시절 쌓은 내공이 느껴지는 매끄러운 연주였다. 싼타나의 연주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깡통음악(음반)에선 느끼기 어려운 라이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음 곡은 60년대 버블검 사운드의 대표주자 아치스(The Archies)의 '필링 쏘 굳(Feelin' So Good)'. 밝고 경쾌한 리듬에 쉽고 깜찍한 멜로디의 60년대식 10대 취향의 노래다. 한 테이블에서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이 났다. 머리가 희끗한 신사 한 사람이 흥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든다. 허리춤에 달린 휴대폰도 달랑달랑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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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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