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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시아는 열대성 관목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의 이름은 아까시인데 북아메리카 원산 가짜아카시아입니다. ⓒ 김규환
박화목 님의 동요 '과수원길'을 한 번 불러보자.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이제나저제나 하며 아카시아 꽃을 눈 여겨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우포늪’이 있는 경남 창녕에 밤샘 여행을 하자는 전갈이 왔다. 흔쾌히 승낙하고 짐을 쌌다. 여행사 직원 포함 다섯 명이 밤 12시 반에 광명을 출발하여 막히지 않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밤 공기를 가르며 내달렸다.
한 시간 반 여를 달려 출출하기도 하고 볼일도 볼 겸 휴게소에 들렀다. 속도를 줄여 휴게소에 진입하자 바깥 공기를 쐬려고 미리 창문을 열자마자 확 몰려오는 꿀 냄새. 부러 코를 “실룩샐룩” “흠! 흠!”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같이 간 사람들도 그 향이 얼마나 진했던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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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치는 사람들의 일손이 바빠질 시기입니다. 제주에서 이젠 경기도로 곧 올라오겠군요. 벌도 날이 건조하면 통째로 나와 고속도로를 제 세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여튼 벌들은 아까시꽃 필 때 비가 많이 안와서 먹을 것 많아 좋겠다. ⓒ 김규환
“정말 대단하네요. 얼마나 많이 피었으면 이렇게 밀려올까요?”
”서울에서는 전혀 안 나던데 확실히 다르군요.”
”근처에 아카시아를 많이 심었는가 봅니다.”
" 생전 이런 강렬한 향은 처음입니다.”
”달큼한 맛이 입안에까지 퍼졌습니다. 꿀 한 숟갈 떠먹은 느낌입니다.”
내리자마자 꿀 차 한 잔씩을 마시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아카시아’라 잘못 알려진 '가짜 아카시아'인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 향의 정체를 찾기 위해서였다.
노래 ‘과수원 길’에서 노래한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향긋한 꽃냄새’가 천지를 뒤흔드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혼자서라도 ‘그 향기 가득 머금고 있는 밤의 여인’을 확인하기로 마음먹고 몇 걸음 옮기는데,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나무 밑으로 모였다.
아까시나무일 성싶은 나무 밑으로 가봐도 그 나무가 아니었다. 느티나무였고, 소나무였다. 간혹 버드나무가 있었다. 근처 나무를 죄다 새벽 2시가 넘은 캄캄한 곳을 쏘다니며 10여 분 조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고서도 결국 우리는 아까시나무를 찾지 못하였다.
“없는데요. 못 찾았습니다.” 하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정 상 더 지체할 수 없어 아쉬움을 안고 남쪽으로 향했다.
근처 산자락에 얼마나 많은 꽃이 피었으면 남정네 다섯의 혼(魂)을 이리도 앗아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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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시 꽃 따 먹으려면 조금 덜 피었을 때가 맛있습니다. 학교 갔다오면서 아카시아 꽃 무척 많이 따 먹었습니다. 맛이 밤꽃 보다는 낫습니다. ⓒ 김규환
이른봄에 피는 꽃은 제주에서 시작하여 남부 해안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차령산맥이남 평야지대, 남부 구릉, 충청, 강원도 순서로 피는데 초여름에 피는 꽃은 제주만 조금 빠를 뿐 꽃들도 일일 생활권을 감지한 때문인지 전국에서 동시에 피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새벽에 도착한 경남창녕, 오후에 방문한 전주, 하룻밤 자고 들른 포천 ‘산정호수’에도 꽃망울이 조금 덜 터져 하루 이틀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동시에 피어 사람을 붙들어매고 벌떼를 유혹하고 있다.
해진 뒤 가까운 야산(野山)으로 꿀을 마시러 아이 손잡고 나서보자. 향긋함, 달콤함, 달큼함, 달작지근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해 *‘향콤하다’고도 말할 수 없음에 한계를 느낀다. 나는 다만 찐한 꿀맛이라고 밖에 전하지 못하겠다.
곧 콩이 바람에 사각사각 소리지를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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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시도 콩과 식물이라 콩이 열립니다. 그러니 번식력도 좋지요. 남벌을 하고나서 미국에서 들여다 심어 사방공사나 척박한 땅에 심어놓고 지금와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시지요. ⓒ 김규환
*‘향콤하다’; ‘향긋하다’와 ‘달콤하다’를 글쓴이가 합쳐 본 것입니다. 사전에 나와있지도 않으며 표준말도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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