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큼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습니다"

<만나고 싶은 우리 꽃과 나무 14> 가짜 아카시아, 아까시나무

등록 2003.05.18 23:25수정 2003.05.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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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카시아는 열대성 관목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의 이름은 아까시인데 북아메리카 원산 가짜아카시아입니다.

아카시아는 열대성 관목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의 이름은 아까시인데 북아메리카 원산 가짜아카시아입니다. ⓒ 김규환


박화목 님의 동요 '과수원길'을 한 번 불러보자.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이제나저제나 하며 아카시아 꽃을 눈 여겨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우포늪’이 있는 경남 창녕에 밤샘 여행을 하자는 전갈이 왔다. 흔쾌히 승낙하고 짐을 쌌다. 여행사 직원 포함 다섯 명이 밤 12시 반에 광명을 출발하여 막히지 않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밤 공기를 가르며 내달렸다.

한 시간 반 여를 달려 출출하기도 하고 볼일도 볼 겸 휴게소에 들렀다. 속도를 줄여 휴게소에 진입하자 바깥 공기를 쐬려고 미리 창문을 열자마자 확 몰려오는 꿀 냄새. 부러 코를 “실룩샐룩” “흠! 흠!”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같이 간 사람들도 그 향이 얼마나 진했던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a 벌치는 사람들의 일손이 바빠질 시기입니다. 제주에서 이젠 경기도로 곧 올라오겠군요. 벌도 날이 건조하면 통째로 나와 고속도로를 제 세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여튼 벌들은 아까시꽃 필 때 비가 많이 안와서 먹을 것 많아 좋겠다.

벌치는 사람들의 일손이 바빠질 시기입니다. 제주에서 이젠 경기도로 곧 올라오겠군요. 벌도 날이 건조하면 통째로 나와 고속도로를 제 세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여튼 벌들은 아까시꽃 필 때 비가 많이 안와서 먹을 것 많아 좋겠다. ⓒ 김규환


“정말 대단하네요. 얼마나 많이 피었으면 이렇게 밀려올까요?”
”서울에서는 전혀 안 나던데 확실히 다르군요.”
”근처에 아카시아를 많이 심었는가 봅니다.”
" 생전 이런 강렬한 향은 처음입니다.”
”달큼한 맛이 입안에까지 퍼졌습니다. 꿀 한 숟갈 떠먹은 느낌입니다.”

내리자마자 꿀 차 한 잔씩을 마시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아카시아’라 잘못 알려진 '가짜 아카시아'인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 향의 정체를 찾기 위해서였다.

노래 ‘과수원 길’에서 노래한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향긋한 꽃냄새’가 천지를 뒤흔드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혼자서라도 ‘그 향기 가득 머금고 있는 밤의 여인’을 확인하기로 마음먹고 몇 걸음 옮기는데,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나무 밑으로 모였다.


아까시나무일 성싶은 나무 밑으로 가봐도 그 나무가 아니었다. 느티나무였고, 소나무였다. 간혹 버드나무가 있었다. 근처 나무를 죄다 새벽 2시가 넘은 캄캄한 곳을 쏘다니며 10여 분 조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고서도 결국 우리는 아까시나무를 찾지 못하였다.

“없는데요. 못 찾았습니다.” 하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정 상 더 지체할 수 없어 아쉬움을 안고 남쪽으로 향했다.


근처 산자락에 얼마나 많은 꽃이 피었으면 남정네 다섯의 혼(魂)을 이리도 앗아간단 말인가?

a 아까시 꽃 따 먹으려면 조금 덜 피었을 때가 맛있습니다. 학교 갔다오면서 아카시아 꽃 무척 많이 따 먹었습니다. 맛이 밤꽃 보다는 낫습니다.

아까시 꽃 따 먹으려면 조금 덜 피었을 때가 맛있습니다. 학교 갔다오면서 아카시아 꽃 무척 많이 따 먹었습니다. 맛이 밤꽃 보다는 낫습니다. ⓒ 김규환


이른봄에 피는 꽃은 제주에서 시작하여 남부 해안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차령산맥이남 평야지대, 남부 구릉, 충청, 강원도 순서로 피는데 초여름에 피는 꽃은 제주만 조금 빠를 뿐 꽃들도 일일 생활권을 감지한 때문인지 전국에서 동시에 피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새벽에 도착한 경남창녕, 오후에 방문한 전주, 하룻밤 자고 들른 포천 ‘산정호수’에도 꽃망울이 조금 덜 터져 하루 이틀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동시에 피어 사람을 붙들어매고 벌떼를 유혹하고 있다.

해진 뒤 가까운 야산(野山)으로 꿀을 마시러 아이 손잡고 나서보자. 향긋함, 달콤함, 달큼함, 달작지근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해 *‘향콤하다’고도 말할 수 없음에 한계를 느낀다. 나는 다만 찐한 꿀맛이라고 밖에 전하지 못하겠다.

곧 콩이 바람에 사각사각 소리지를 게 분명하다.

a 아까시도 콩과 식물이라 콩이 열립니다. 그러니 번식력도 좋지요. 남벌을 하고나서 미국에서 들여다 심어 사방공사나 척박한 땅에 심어놓고 지금와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시지요.

아까시도 콩과 식물이라 콩이 열립니다. 그러니 번식력도 좋지요. 남벌을 하고나서 미국에서 들여다 심어 사방공사나 척박한 땅에 심어놓고 지금와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시지요. ⓒ 김규환




*‘향콤하다’; ‘향긋하다’와 ‘달콤하다’를 글쓴이가 합쳐 본 것입니다. 사전에 나와있지도 않으며 표준말도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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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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