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정문출입 막을 생각없었다"
경찰, "막을 걸 당연히 알고 있을 것"

[심층취재] 한총련의 '대통령 정문출입 저지', 왜 발생했나?

등록 2003.05.19 15:49수정 2003.05.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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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5·18민중항쟁 23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광주 망월동묘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묘역 정문에서 한총련 소속 학생과 경찰이 대치하는 바람에 길이 막혀 정문 대신 후문을 통해 출입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 치안당국이 국가원수의 행사참석을 방해한 한총련 학생들을 실정법 위반으로 사법처리 할 방침을 밝힌 가운데 한총련측은 "당초 대통령의 정문출입을 막을 생각이 없었으나 경찰이 과도하게 저지한 바람에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이라며 당국의 조치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오마이뉴스>는 당일 5.18묘역 입구에서 학생들과 경찰간의 대치상황을 취재한 기자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 사태발생의 경위를 되짚어보는 동시에 당초 한총련 지도부의 '항의시위' 배경, 수준 등을 심층 취재했다. <편집자 주>


한총련 소속 학생 등 1000여명이 국립5.18묘역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한총련 소속 학생 등 1000여명이 국립5.18묘역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강성관
한총련 소속 학생 1000여 명은 18일 오전 5.18민주항쟁 23주년 행사가 열린 망월동묘역 정문 앞에서 "굴욕적인 친미사대 외교 사과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정문 언덕 위에 올라 '굴욕적인 친미외교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방문을 반대한다', '반민족적 특검 중단' 등을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기 했다.

5.18묘역 경내로 들어가기 앞서 마련된 정문은 방명록 등이 비치된 '민주의 문'까지 약 2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상당히 이격된 거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날 한총련 소속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가 있었다.

이날 경찰과의 대치로 인해 서청원 한나라당 전 대표는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신기남·최병렬 의원 등 기념식 참석자들은 주변 담을 넘어 묘역을 빠져 나와야 했다.

이에 앞서 기념식이 열리 전 초청장이 없는 참배객, 시민들은 '민주의 문' 근처에 있는 주차장 주변에서 노 대통령 내외를 기다렸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주차장 근처에는 노사모, 후광사랑모임, 개혁국민정당, 안티조선 모임 등 단체 회원들도 자신의 주장을 담은 피켓 등을 들고 있었다.


이날 경찰과 학생들 사이의 대치 상황은 오전 10시 10분 경부터 예견됐다. 1000여 명으로 구성된 '한총련 5·18 순례단'은 오전 9시 30분 경부터 망월동 구묘역에서 참배 행사를 마치고, 국립5·18묘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이들 학생들이 소속을 알리는 깃발 등을 들고 오전 10시 10분경 국립5·18묘역으로 이동하려 하자 망월동 구묘역 입구를 경찰이 저지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학생과 경찰사이에 몸싸움이 시작한지 20여 분만에 경찰의 저지선이 무너지고 학생들은 국립5·18묘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은 학생들과 뒤섞여 같이 뛰면서 세 차례에 걸쳐 저지선을 만들었지만 이런 상황을 미처 대처하지 못한 탓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민주의 문' 근처에서 경비를 맡고 있던 사복차림의 경찰들이 묘역 정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묘역 정문 앞에 도착한 것은 10시 50분 경. 정문에 도착한 학생 중 50여 명은 정문 담장을 넘어 주변에 조성된 '5·18 꽃동산'을 통해 정문 안쪽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정문 안쪽으로 10여m 거리에서 사복 차림의 경찰의 제지를 받았고, 이후 투입된 전경이 합류하면서 해산됐다. 이 과정에서 몇 명의 학생들이 연행되고 한 학생이 실신해 경찰 순찰차로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경찰버스를 이용해 묘역 정문에서 대치하고 있던 학생들 뒤편 도로를 가로막고 전경들을 긴급 투입해 학생들을 앞뒤로 에워쌌다. 한편, 당시 학생들과 경찰이 대치하면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민주노동당 구로지구당 등 민노당 당원들도 묘역 진입이 제지당하기도 했다.

학생과 경찰의 묘역 정문 대치상황은 기념식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됐으며, 노 대통령 내외는 오전 11시 12분경 국립5·18묘역 후문을 통해 기념식에 참석했다. 들어가려는 학생들과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이 대치하면서 자연스럽게 묘역 정문이 봉쇄됐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오전 11시 20분 경부터 학생들은 연좌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으며, 기념식이 끝난 이후에도 경찰은 학생들이 전남대로 이동할 것을 염려해 30여분간 봉쇄했다. 경찰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 전공노 조합원, 민노당 당원 등을 제외한 일반 시민들은 '5·18꽃동산'을 통해 길을 터주기도 했다.

한총련, "애초에 대통령의 정문 출입은 막을 생각 없었다"

이날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항의 시위는 지난 17일 마친 노 대통령의 방미 발언이 '굴욕적인 외교'라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정문 안쪽으로 진입했던 50여명의 학생들과 경찰 사이 잠깐 동안의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정문 안쪽으로 진입했던 50여명의 학생들과 경찰 사이 잠깐 동안의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오마이뉴스 강성관
이들 학생들은 시위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 대통령이) 망월동 참배와 전남대 강연을 통해 사대성을 숨기고 개혁성으로 포장하려하고 있다"면서 "계획적이고 음모적인 이번 광주 방문은 광주에 대한 모독이며 5월 영령을 기만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한총련은 ▲한미 공동성명을 철회하고 오월 영령과 민족 앞에 사죄 할 것 ▲미국의 간섭무시하고 지속적인 6.15 공동선언을 이행 ▲ 한반도 전쟁을 조장하는 부시의 대북 적대정책을 반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윤영일(전남대총학생회장) 남총련 의장은 "80년 광주학살은 군부독재가 아니라 미국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노 대통령은 방미기간에 친미적 발언을 서슴치않았다"며 "오월영령 앞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들은 17일 이전부터 노 대통령의 광주 방문에 대한 항의시위의 '수위'를 놓고 논란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애초 노 대통령의 묘역 정문 출입을 봉쇄할 계획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행사 당일의 묘역 정문 연좌시위는 우발적이었다는 것이다.

한총련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총련 5·18순례단에 참여한 학생회장 등은 17일 회의를 갖고 국립5·18묘역 주차장 주변에서 피켓과 플래카드를 이용해 노 대통령의 굴욕외교에 대해 항의시위를 하고 전남대 강연회는 막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관계자는 "이전부터 항의시위 수위를 놓고 회의를 했다"면서 "17일 회의에서 플래카드와 피켓을 이용해 '민주의 문' 근처에서 항의시위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초에 묘역 정문 앞을 점거해 노 대통령의 출입을 막을 계획은 없었다"면서 "다만 피켓시위를 하다가 노 대통령이 '민주의 문'에 도착하면 피켓이나 플래카드를 든 학생 몇몇이 기습적으로 (노 대통령을)저지한 후 붙잡혀 가는 정도로 항의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노 대통령의)전남대 강연회는 막으려고 했다"면서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해 경찰측이 곳곳에서 막아 전남대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조선대학교 총학생회의 한 관계자 역시 "애초 피켓시위 정도를 하기로 했던 것으로 안다"며 "묘역 정문 앞 시위는 우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총련은 이날 기습적인 제지 행동을 보이는 선에서 항의를 하되 묘역 정문을 막아 대통령의 출입을 봉쇄할 계획은 없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전남대 강연회를 멀티비젼을 통해 경청하고 있는 도서관 앞에서 전남대 학생들이 피켓시위를 했다.
노 대통령의 전남대 강연회를 멀티비젼을 통해 경청하고 있는 도서관 앞에서 전남대 학생들이 피켓시위를 했다.오마이뉴스 강성관
한총련은 이날 항의시위를 두고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강금실 법무장관 등 참여정부 고위 인사들이 한총련의 합법화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피력했고, 또 대통령의 5·18 기념행사를 가로막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묘역 정문 현장에 만난 경찰관계자는 "한총련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깃발을 들고 오겠다는데 자기들도 뻔히 경찰이 제지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행사장에)들어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남지방경찰청은 광주 북부경찰서에 '수사본부'를 구성해 사진채증 등을 토대로 주모자들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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