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 찾기

임석재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등록 2003.05.22 10:18수정 2003.05.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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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이 책은 원래 서양 건축사로 학위를 받은 저자가 우리 전통 건축에 대한 애정을 담고 쓴 것이다. 건축 전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토대로 하지만, 어렵지 않은 설명으로 우리 건축물들이 지닌 미적 가치를 탐구한다. 그 탐구 과정에는 서양 건축물과의 비교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서구적인 것만을 우위에 두고 전통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잊어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 전통 건축을 다룬 책들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학술적이다보니 지루함을 주거나, 아니면 비전문가가 대중들을 상대로 쓰다 보니 다소 그 깊이가 얕은 점이 아쉬웠다고 언급했다.


저자는 우리 전통 건축이 왜 좋은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타당한 설명 없이, 우리 것이기 때문에 좋다는 맹신적 사고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통 건축을 함부로 파괴했던 것도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1980년대 이후 형성된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식의 국수주의 또한 좋지 못한 경향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서문에서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을 비교하는 데 있어 어느 쪽이 더 우수한가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는 사고를 뛰어넘어 양쪽 모두를 균등하게 놓고 그 장단점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사회는 "완전히 전통 건축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완전히 서양식으로 살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 공존하는 건축 양식 속에서 무엇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가는 건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저자는 한국 건축물의 대표적인 멋으로 "지붕과 처마의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꼽는다. 팔작지붕을 예로 들면서 우리 건축을 대표하는 단어로 "곡선미"를 언급하고 있다. 이 곡선미는 비단 처마에만 그치지 않고, 나무 기둥들의 휘어진 모습에도 드러난다. 우리 전통 건축의 나무 기둥들은 인공적인 손질이 가해지지 않은 채, 휘어지고 구부러진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자는 처마, 기둥, 계단 등의 자유롭고 부드러운 미적 가치를 설명하면서, 자로 잰 듯이 규격화된 것만이 아름다운 대상은 아니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기둥뿐만 아니라 담과 기단의 돌들 또한 획일성에서 벗어나 있다. 각양각색의 크기와 모양, 색을 지닌 돌들이 모여서 담을 이루고, 집의 하단부인 기단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비정형성의 추구는 서양의 현대 모더니즘 건축 양식에서도 표현된다. 현대 모더니즘이 획일화된 것의 거부,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폐쇄성에서 벗어나 개방하기 등을 추구했기 때문에, 건축 양식도 이처럼 자유로워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건축이 비정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규격과 질서를 갖춘 서양에 비해 열등하다는 견해는 옳지 못한 것이다.

서양의 전통적인 건축물들은 주로 형식적인 요소와 질서를 강조하여 칼로 자른 듯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의 건축물들은 자연을 활용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형태를 취한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질서를 갖추면서 아기자기하고 조화롭게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무질서한 속에 질서를 갖춘 구조를 "비대칭적 대칭"이라고 명명한다. 즉 서양의 건축물처럼 반으로 접으면 포개지는 대칭 구조는 아니지만, "공간 전체로 보았을 때 편안한 조화를 이루어 내재적 질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전통 건축은 인공적 덧칠이 씌워지기 이전 상태를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 참 멋이 보여질 수 있고 참 맛이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건물에 맞추려 하는 게 아니라, 건물을 자연에 맞추려고 했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동양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들은 서양 건축 양식 중 "픽쳐레스크 운동"에도 나타난다. 이 운동은 서양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건축의 중요한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했다. 즉 자연 상태와 어우러진 건축이나 비정형, 미가공성, 원시성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물질 문명만을 중시하는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전통 건축이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공간을 갖는다는 점이 특징인 반면, 우리의 건축은 투명하고 개방적인 구조를 갖는다. 사생활 보호라는 점에서 폐쇄적인 구조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열림을 통한 의사 소통과 정감의 측면에서 우리 건축의 구조도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적인 사고가 발달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아파트가 이 시대의 보편적인 주거 방식이 된 현상을 설명하면서, 아파트의 보편화와 획일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이미 이 주거 구조가 사회 깊숙이 퍼져 나간 이 시점에서, 새로 짓는 공동 주택 양식들은 좀더 다양화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가면 좋을 것이다.

저자는 또 "건축은 이상도, 공상도, 사상도 아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떠나서 압도적 현실로 벌어지는 일을 어쨌든 일정 부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실토한다. 현실적 요소들을 무시할 수 없는 건축의 속성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결국, 현대 건축이 가야할 길은 현실과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중적 과제의 수행이 아닐까 싶다. 많은 건축학도들은 물론이고, 시민들 또한 미적 관점을 가지고 건축을 생각할 때에 이러한 발전이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 임석재 교수의 대중을 위한 건축 강의

임석재 지음,
컬처그라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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