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군, 서해교전 성격 뒤집었다
'우발사고' 결론을 '계획도발'로 발표"

<한국일보> '합참 비밀문건' 특종 보도에 국방부 "사실무근"

등록 2003.05.27 19:56수정 2003.06.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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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비밀문건'을 보도한 28일자 한국일보 초판.
'합참 비밀문건'을 보도한 28일자 한국일보 초판.
우리 군 정보당국이 작년 6월 서해교전 발생 직후 '우발사고'라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국방부와 합참이 같은해 7월7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북한의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한 악의적인 선제기습이 있었다"고 뒤집은 사실이 한 현역군인의 제보로 약 11개월만에 드러났다.

국방부 관계자 "<한국>보도는 사실무근"

국방부가 <한국>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YTN은 27일 저녁뉴스에서 "서해교전과 관련한 한미 합동 조사는 작년 7월2일부터 4일까지 실시됐으며 조사결과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 공격이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국방부의 설명을 보도했다.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는 "서해교전 사태가 발생한지 이틀만에 정보 당국이 우연한 사고였다는 결론을 내린 사실이 없으며 따라서 그같은 결론을 뒤집은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국일보>는 28일자 초판에서 이 군인이 제공한 합참 비밀문건을 단독 보도하며 "청와대와 합참 수뇌부가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고 지휘관 문책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보당국의 분석을 뒤집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합참이 '북의 의도적 도발'로 규정한 이후 기무사가 관련 문건을 파기했다"고 전했다.

합참 비밀문건은 또한 한국 해군 2함대의 묵인하에 어로저지선 밖으로까지 진출해 꽃게잡이 조업을 한 우리 어선들의 움직임이 교전을 유발한 원인중 하나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국회청문회에서는 서동만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 "서해교전은 군사적으로는 계획된 선제공격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우발적인 북한의 실수"라고 답한 것이 문제가 돼 색깔론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서해교전 정황에 대한 재조사가 벌어질 경우 사건의 성격 재조명과 왜곡, 은폐 관련자 문책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확인한 당시 A4용지 3쪽짜리 2급 비밀문건에 따르면, 한국 및 한미연합사 정보 관계자는 교전 다음 날인 작년 6월30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17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갖고 서해교전을 "북한의 계획된, 의도적 공격이라기보다는 상호 근접해 기동하다 발생한 99년 연평해전과 유사하게 아군 고속정이 충돌공격을 감행하려 한 데 대해 위협을 느껴 선제공격을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이 문건은 "북한의 '계획적 도발 가능성'에 대한 분석결과, 북한 경비정과 황해도 사곶에 위치한 북한 해군 8전대사령부간, 또 정박중인 북한 대기함과 북한 지휘부의 통신내용 등 중요 첩보(SI)자료 등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의 의도적 도발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정보당국은 이 당시만해도 서해교전을 '우발사고로 인한 한국전 종전후 해군의 최대 작전실패 사례'라고 분석했지만, 당시 청와대와 합참 수뇌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국내 비판여론을 무마하고, 작전 지휘관 문책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의 의도적 도발'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교전이란?

2002년 6월29일 오전 서해상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선제 포격으로 남북 해군간 벌어진 교전.

이날 오전 10시25분부터 56분까지 31분간의 교전 결과 한국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하고, 이 고속정을 지휘하던 윤영하 대위 등 한국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서해교전은 1999년 6월 연평해전 이후 3년 만에 재발된 양측 해군간 무력충돌로 당시 한국 군 당국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북한 군의 악의적인 선제 기습’으로 공식 발표했으나 교전 발생 원인 등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지난 4월 말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으로 내정된 서동만씨가 국회 청문회에서 “서해교전은 우발 충돌”이라고 발언, 정치권의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북의 우발적 공격에 대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햇볕정책으로 대북경계태세가 이완돼 있던 탓에 패전했을 것'이라는 야당 등의 공세를 우려한 청와대의 판단과 패전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작전지휘라인간의 이해가 맞물려 사태를 왜곡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교전 후 북한 해군사령부가 8전대에 현지 감찰을 나와 교전을 막지 못한 북한 등산곶경비정 함장 등 지휘관을 줄줄이 문책한 것도 서해교전이 우발적 사태임을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한국> 보도로 인해 초비상에 들어간 분위기. 국방부 공보실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다. 우리도 문건의 존재에 대해 확인중에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한국>은 이후에도 '합참 비밀문건'에 대한 후속보도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다음은 김정호 기자(국방부 출입)가 <한국> 28일자 5면에 보도한 '합참 비밀문건' 해설기사 전문.(* 아래 관련기사는 한국일보측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우발'땐 합참책임... '계획'땐 책임모호
서해교전 뒤바뀐 결론


지난해 7월7일 국방부의 서해교전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 장면.
지난해 7월7일 국방부의 서해교전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 장면.오마이뉴스 권우성
서해교전 원인을 분석한 정보당국의 문건은 우리 정보당국이 각종 첩보자료를 통해 북한 경비정과 북한 해군전대의 움직임을 손 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우발 충돌’이라는 결론은 당시 첩보자료 등을 바탕으로 도출된 것이다.

[최악의 작전 실패] 정보당국은 교전의 결정적 요인이 충돌을 불사하듯 고속으로 북한측에 접근한 우리 해군의 움직임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합참과 국방부는 당시 남북 함정간 최단거리가 약 800야드(731㎙)였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실제 정보당국의 확인 결과 20야드(18㎙)까지 근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우리측 232편대(침몰한 357호와 358호)가 마치 충돌을 감행하려는 듯 고속으로 다가오자 99년 연평해전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북한 등산곶경비정(684호)이 선제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다른 방향에서 NLL을 넘었던 북한의 육도경비정(388호)을 차단한 우리측 253편대(328, 369호)는 북 등산곶호와 우리측 232편대의 최초 교전 직후 근방에 있던 육도경비정에 발포하는 대신 사정권 밖의 등산곶호를 공격하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우리 군 당국이 ‘화염에 휩싸여 침몰 직전까지 갔다’고 밝힌 북한 등산곶호는 50일만에 수리를 완료하고 재배치 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등산곶호의 뒷부분에서 발생한 화염은 우리측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엔진 고속가동에 따른 매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침몰한 우리측 357호를 인양해 확인한 결과 2,600여발 이상을 집중 공격 당한 반면 적 경비정은 별다른 치명타를 입지 않았다”고 밝혔다.

[왜 결론이 뒤바뀌었나] 우발 사고였던 서해교전이 ‘북한의 계획된 도발’로 뒤집힌 데는 패전책임 규명문제와 당시의 여론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발 충돌이었다면 ‘국지 도발’로 간주, 작전 책임을 지고 있는 해군 2함대사령관과 더 나아가 합참의장이 떠안게 된다.

반면 계획도발로 규정하면 ‘전시 상황’으로 간주돼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한미연합사령관이 최종 책임 선상에 오르기 때문에 책임소재 자체가 불분명해 진다. 실제 서해교전 이후 당시 김동신 국방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나 작전 실패의 실질적 책임자인 해군 2함대사령관과 합참의장은 문책당하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또 “햇볕정책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이 급등한 당시 상황에서 우발적 교전에서 패한 것으로 결론 날 경우 ‘햇볕정책이 군의 방어태세마저 무너뜨렸다’는 정치적 공세가 뒤따를 게 뻔했다”며 “이 때문에 국방부와 청와대의 협의아래 사태를 ‘북한의 계획적 도발’로 왜곡하고 이를 은폐해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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