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 '빨리 잊어야 할' 사건인가

[취재수첩] 슬픔과 분노는 오직 유가족들의 몫?

등록 2003.05.29 20:51수정 2003.05.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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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대구지하철참사가 있은 지 100일째 되는 날, 대구에서는 몇 개의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대구에 살고 있지만 참사 이후 중앙로역에 내려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직까지 매캐한 연기가 사라지지 않은 그 곳에는 두 명의 경찰이 상시 근무를 하고 있었고, 검은 그을음과 시들어버린 국화꽃, 설명할 수 없는 스산함이 그 곳을 감싸고 있었다.

100일 전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던 9시 53분에 시작되는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대구시민회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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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젖은 유족이 '뉴스거리'일 뿐인가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먼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시민회관 주차장에서 진행된 추모식에는 유가족들과 추모행사 관련자, 그리고 취재진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참사에 깊은 책임을 느껴야 할 대구시 공무원과 시장의 모습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지하철참사는 '빨리 잊어야 할' 사건에 불과하단 말인가.

a 대구시 곳곳에 붙어있는 U대회 홍보 플래카드. U대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대구시 곳곳에 붙어있는 U대회 홍보 플래카드. U대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 위정은

또 한 가지, 뜨거운 취재 경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커다란 촬영 장비를 대동한 수많은 취재진들이 오열을 터트리는 유가족들 앞에서 플래시를 터트릴 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터져나오는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을 터트리는 유가족이 눈에 띄면 우르르 몰리던 취재진이 유족 오진희씨가 희생자 오진영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오씨 앞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슬픔을 흐느낌에 담아 전달하는 동안 오진희씨 주변에서 취재에 열을 올리는 취재진들 때문에 먼발치에서는 오씨의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물론 편지를 읽는 유가족을 촬영하는 것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유가족이 아닌 내 눈에도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드는 그 모습들이 유가족들에게는 또 한번의 상처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유가족들이 밤잠을 설치며, 눈물을 흘리는 동안, 그 수많은 카메라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되살아나는 기억에, 상처에 유족들이 흐느끼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감상적인 '뉴스'일 뿐인가. 참사의 책임자를 밝혀내고 진상을 규명하고 사후 대책을 마련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유가족 앞에서 플래시를 터트리는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구시, 빨리 잊고 'U대회'에 집중하면 그만인가

추모식 중 대책위 관계자는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는 차가운 날씨에 코트 깃을 여미여야 했던 겨울이었다. 그 사이에도 봄은 오고, 이제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유가족들의 눈에 눈물이 말라가고, 떠나보낸 가족들의 얼굴이 희미해지는 것 말고 달라진 것이 있는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참사는 서서히 사람들 기억 너머로 잊혀져가고,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추모공원 조성·안전대책 마련 등 반드시 해결돼야만 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은근슬쩍 '나 몰라라'하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무작정 슬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함께 울어주자는 이야기도, 단순히 이 참사를 기억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뜨거운 화염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생각한다면 너무 쉽게 잊지는 말자는 말이다. 반드시 잘잘못을 따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한다는 말이다.

a U대회 성공기원 음악회를 홍보하는 U대회 홈페이지.

U대회 성공기원 음악회를 홍보하는 U대회 홈페이지. ⓒ 위정은

그런데도 지금 대구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거리 곳곳에는 U대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U대회를 제 2의 월드컵으로 만들자'는 광고 문구도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있다. 또한 대구시에서는 U대회 성공 기원 음악회를 여는 정성까지 보였다. 그 자리에는 인기 연예인의 공연이 벌어졌을 뿐 아니라, 대구시 시장과 대구시 공무원들이 버젓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U대회,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하철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달리게 하고, 참사의 책임을 회피한 채 국제적 행사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행여 지하철 참사 '때문에' U대회에 차질이 생겼다고 속상해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루 빨리 유족들이 지치고, 시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나가떨어지고, 시민들이 잊어가기를 납작 엎드려 기다리고 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사의 기억은 '기억'이 아니다

참사 100일을 맞아 진행되는 행사들이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참사 관련 행사에 참가하면서 나는 참사가 '남의 일인 양' 쉽게 잊고 지냈던 것을 깊이 반성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들이 나 뿐만이 아니라 참사를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 참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참사의 아픔이 유가족만의 상처로 남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유가족만의 일이 아니다. 또한 대구 시민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민이 함께 기억하고 바로잡아가야 하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 은근슬쩍 넘어간다면 '나에게도' 이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온 국민은 참사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로잡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시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참사의 기억은 단지 '기억'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무책임한 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 지 추모 100일을 맞아 다시금 느껴야 할 것이다.

a 5월 28일 진행된 대구지하철참사 100일 위령대제

5월 28일 진행된 대구지하철참사 100일 위령대제 ⓒ 위정은


a 대구지하철참사 위령대제의 한 장면

대구지하철참사 위령대제의 한 장면 ⓒ 위정은


a 뜨거운 햇볕 아래 진행된 위령제에 참여한 사람은 대부분 유족들이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진행된 위령제에 참여한 사람은 대부분 유족들이었다. ⓒ 위정은


a 100일 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플래카드들은 날이 갈수록 빛바래고 있다.

100일 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플래카드들은 날이 갈수록 빛바래고 있다. ⓒ 위정은


a 대구시민회관 2층 소강당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의 모습.

대구시민회관 2층 소강당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의 모습. ⓒ 위정은


a 사진전에는 참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사진전에는 참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 위정은


a 중앙로역에서 진행 중인 시사만화전. 전시된 만화에 헌화를 하는 모습.

중앙로역에서 진행 중인 시사만화전. 전시된 만화에 헌화를 하는 모습. ⓒ 위정은


a 대구시 곳곳에 붙어있는 U대회 홍보 플래카드. U대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대구시 곳곳에 붙어있는 U대회 홍보 플래카드. U대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 위정은



대구지하철참사 100일 추모전 행사
사진전, 시사만화전 15일까지 진행돼

<영상 및 기록 사진전 : 참사 100일의 기억 >

주최 : 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대구YMCA
전시일정 : 2003년 5월 28일(수) ∼ 6월 15일 (일)
전시장소 : 대구시민회관 2층 소강당
문의 : 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정연주(T : 252-1048, 424-0075, 017-507-9592)

<시사만화전 : 나,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주최 :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대구지하철참사 시민사회대책위원회,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주관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전시일정 : 2003년 5월 28일(수) ∼ 6월 15일 (일)
전시장소 : 중앙로역 지하1층 동아백화점 출입구 방향

문의 :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02-334-2030, 016-270-5253),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허미옥 (T : 423-4315, 011-510-3706)

온라인전시 : www.newstoon.net / 위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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