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여행을 시켜 준다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

등록 2003.05.30 10:05수정 2003.05.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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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 <뇌> 등의 베스트 셀러 작가다. 그의 다른 소설들이 꽤 유명세를 탄 반면, 이 책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베르나르 특유의 재치로 글을 전개해 가는 매력이 담뿍 담겨 있다.

이 책은 책 스스로 화자가 되어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라는 인사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좋건 싫건 일상에 익숙해져서 당당히 맞설 엄두가 안 나거든, 나를 다시 덮어도 상관없다. 그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책들은 쌔고쌨다." 라고 말한다.


독자는 이 책의 화자가 이끄는 길을 따라서 그저 여행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독자 자신이다.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자기가 그 속의 주인공이 된 양 착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을 다른 어떤 인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여기면 되는 것이다.

독자가 원한다면 책은 "어떤 대단한 것, 언제 어디에서든 그대의 생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그대를 홀로 있게 하지 않고 늘 그대 곁에 머물면서 위급할 때는 비상구를 마련해 줄 존재, 한 마디로 말해, 종이로 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책이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책이 장롱을 괴기 위한 받침 조각일 수도 있고, 서가를 장식하는 장식물의 한 종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을 이용하고, 남용하여, 독자가 이로움을 얻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여행을 제안한다.

그 여행의 과정은 공기의 세계로부터 시작해, 흙의 세계, 불의 세계, 물의 세계에서 끝이 난다. 여행의 과정을 통해 독자는 깨끗하고 상쾌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공기의 세계에서 화자는 독자로 하여금 새가 되었다는 상상을 하도록 유도한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날면서 화자가 이끄는 곳을 따라 가다 보면, 일상적인 일들에 몰두하는 사람들과 세상의 온갖 싸움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말한다. "내가 다른 안내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가를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그대가 시간을 조금 내주고, 주의만 기울여 주면 된다."고. 또한 "나는 그대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상상력만으로 어떤 사물의 좋은 측면을 즐길 수 있는데,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이 책의 화자는 상상력을 동원한 여행을 통해 독자가 무언가 얻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주인공도 아닌 독자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독자여, 그대는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대 자신이라는 것을."

흙의 세계에서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집을 짓도록 한다. 이 <자기 집>의 특별한 점은 바로 독자의 상상력과 재능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안식처를 지을 수 있다.


그리고는 독자에게 그 집에서 안식과 평안을 취하고, 삶의 온갖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명상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한다. 명상을 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깊은 의미의 문장을 적어 보도록 한다. 그 문장을 되새기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

"그대는 시각을 편협하게 만드는 선입견에서 벗어난다. 직관, 그대의 직관은 섬광처럼 번득이게 된다. 그대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직관의 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된다. 의식,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매순간 그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철한 의식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이처럼 자기 암시를 통해 자아를 발전시키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한다.

"사람이 늘 승리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라. 불운은 어떤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라. 불운을 적으로 여기기보다는, 맑은 날씨를 더욱 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라."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단순한 명제가 머리 속을 가득 메운다. 책이 이끄는 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여행을 따라 가보자. 그러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시각이 정립될 것이다.

메트로폴리스 - 아방가르드 예술과 건축에 관한 13가지주제

김원갑 지음,
열린책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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