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홍 교육부총리님
무엇을 위해 '또 번복' 하셨습니까?

[NEIS 논쟁을 보며] 강에는 물고기가, 학교에는 학생이 있습니다

등록 2003.06.01 13:06수정 2003.06.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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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일요일인 6월1일 고2 이하에 대해서도 사실상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하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연가투쟁 강행 등 정면대응을 선언하고 나섰고, 민변과 민주노총 등도 교육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면 시,도교육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교장단, 정보화담당교사들은 "만족스럽지는 못하나 현실적으로 필요한 선택"이라고 교육부 지침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번복에 번복을 거듭하고 있는 교육부와 윤덕홍 장관의 NEIS 정책을 바라보는 한 현직교사의 글입니다...[편집자 주]



a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지난 29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지난 29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제가 아이들에게 매를 대지 않은 이유

지난 토요일, 저는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음악실로 가고 저는 빈 시간을 교실에 남아 그때까지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그친 뒤 세수하듯 맑아진 하늘을 보면서도 저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각하는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기다릴 만큼 기다려주었으니 따끔한 매로 다스릴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말로 타일러 볼 것인가?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매를 때리되 손바닥 앞에서 멈추는 빈 매를 때리자.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싱겁다고 웃을 지라도 나만은 절대 표정을 풀지 말고 정말 매질을 하듯이 하자.'

올해 담임을 맡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지난 주 토요일에는 반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매를 들지 않고도 학급을 이만큼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점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꾸벅 절까지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학기초에 비해서 지각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든 아이에게도 매를 대지 않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매를 대지 않으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회에서도 잘못한 사람을 때리지 않고 법으로 다스리듯이 저도 잘못한 아이를 때리지 않고 사랑의 법으로 다스리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도 한 번쯤 매를 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저는 손바닥에 닿지 않고 마음에 닿는 빈 매를 힘껏 내려치곤 합니다.

제 얘기를 말씀드려 자랑하는 꼴이 되었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모든 행위는 그 자체가 교육입니다. 빈 매를 때리는 담임 선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저희 반 대다수의 아이들은 적어도 이런 생각을 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분이 아니시구나.'

물론 폭력을 싫어하면서도 거기에 길들여진 아이들 중에는 딴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또한 교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직 어리고 생각이 짧은 아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자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천부적인 인권에 대하여 말해주고, 그것을 챙겨주기 위해 고민하는 교사를 사랑하고 닮아 가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NEIS논쟁에서 소외된 학생들

학교가 작은 교육의 장이라면 사회나 국가는 큰 교육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관련된 기사나 보도를 접하면서 작은 교육의 장인 학교 현장보다도 큰 교육의 장인 이 사회와 국가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 사회의 지도층들에 대한 극심한 회의감에 밥맛을 잃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NEIS 논쟁에서 정작 주인공인 학생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NEIS 논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정보인권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에 명분도 없고 철학도 없는 거의 폭력에 가까운 말들만 잡초처럼 무성하기 때문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어른으로서 수치심마저 느끼게 하는 언어적 표현들을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에 대하여 공적인 직함을 가진 분들이 "별것 아닌데 신경을 너무 쓴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나, 지난 5월 26일 교육부가 최종 발표한 NEIS 관련 내용에 대하여 "교육부가 교총을 그렇게 푸대접할 수 있어?"하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분들이 교육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표현상의 문제만은 아니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 실업계 학교에서 여자 반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학기초에 아이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교무수첩에 적기에도 미안한(취조하는 기분이 들어서) 가슴아픈 사연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이만큼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기까지 합니다.

그 낱낱의 사연들을 해킹의 위험이 있는 인터넷상에 올리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해당학교에만 자료가 보관되지 않고 교육청이나 교육부 서버에 일괄 집적되어 관리되는 NEIS 체제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권위 권고 받아들이겠다고 하더니

저는 NEIS 논쟁이 이 사실 하나에 집중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옳게 길을 잡기로 하면 쉽게 풀리기 마련입니다. 교육부총리께서는 NEIS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려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과 정보분야의 전문가들의 오랜 조사와 숙고 끝에 NEIS 체제가 학생정보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폐기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 후 교육부총리께서 인권위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약속만 제대로 지키셨다면 NEIS 문제는 지금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일단락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진정한 교육과 인권에 대한 고민과 철학도 없이 행정편의주의와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꼴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옳은 길을 제대로 가고 있기만 하다면 귀찮고 어려운 일을 극복해내는 것은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보람있는 일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6월1일자로 또 번복되기는 했지만, 지난주(5월26일)까지만 하더라도 '다행히도' 부총리께서는 늦게나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NEIS 체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의 '교육부 최종방침'을 발표를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NEIS 체제 27개 영역 중 24개 영역은 NEIS 체제로 운영한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하여 교무·학사/보건/입학·진학 등 3개 영역에 대해서는 체제 시행 전면 재검토한다.

올해 대학입시에 차질이 없도록 고3에 한해서는 NEIS 체제를 운영한다.

다만, 고2 이하 3개 영역은 2004년 2월 이전까지 한시적으로 NEIS 이전 체제로 시행한다.

법률전문가, 정보전문가, 현장교사들로 구성된 정보화위원회를 새로이 구성하여 2003년 12월 31일 이전까지 인권 침해, 관련 법률의 보완 등 모든 검토를 끝낸다.


여기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하여'라는 대목은 헌법으로 말하자면 전문과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 하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내용의 핵심은 '학생정보인권'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NEIS 체제가 학생정보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정하여 이를 폐지하도록 권고한 것입니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번복'

그런데 토요일인 5월31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읽고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부는 올해 고교 3년 생에 대해서만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바꿔 2학년 이하에 대해서도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무. 학사, 보건, 진. 입학 등 3개 영역에 대해 NEIS 운영 여부를 결정하도록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일요일날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연합뉴스>가 6월1일의 교육부 발표를 정리한 기사 < NEIS 시행지침 내용과 전망 >이라는 것을 요약해 보면 교육부의 이번 '또 번복'은 "사실상의 NEIS전면시행"이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일 고2 이하에 대해 수기(手記)를 원칙으로 하되 학교실정에 따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도 사용할 수 있다는 방침을 내놨다.

교육부와 전교조 합의안 중 NEIS 27개 영역 중 24개 영역은 NEIS 체제로 운영하고 고3에 한해 교무.학사, 보건, 진.입학 영역도 NEIS로 운영한다는 내용은 시행지침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러나 합의안 중 교육부와 전교조의 해석이 달라 논란이 거듭된 '고2 이하는 NEIS 이전 체제로 시행한다'는 내용은 '정보화위원회가 최종 방침을 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일선 교사가 수기로 한다'는 원칙이 정해졌다.

다만 학교실정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단독컴퓨터(SA),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 NEIS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선택해 사용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NEIS 이전체제 시행'에 대해 '일선 교사들이 수기로 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은 눈가림에 불과하며 '학교실정에 따라 SA, CS, NEIS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은 사실상 합의 파기로 받아 들이고 있다.

현재 전국 1만1천여개 초.중.고교 중 99% 이상이 자료를 NEIS로 이관했고 97% 이상이 시행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사실상 NEIS 전면시행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총리께서는 불과 나흘 전에 국민들 앞에 발표한 사실을 일거에 뒤집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하여'라는 대목의 요체가 과연 무엇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에는 물고기가 있고 학교에는 학생이 있습니다

어제 저녁, 저는 아내와 함께 동천을 거닐었습니다. 동천은 제가 살고 있는 순천의 샛강 이름입니다. 동천에서는 마침 환경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테너 박인수 교수님을 만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박인수 교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아름다운 노래를 순천시민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뜻하지 않게 횡재를 했다고 좋아하면서 행사를 주관하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으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저는 동천의 아름다운 물굽이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의 환경축제의 주인은 저 강물 속의 물고기들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제가 저녁 내내 음악에만 심취되어 있었던 사실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내 몰래 흐르는 강줄기를 향해서, 아니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들을 향해서 목례를 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먹으라고 돈을 들여 환경축제를 준비한 것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강에는 물고기가 있고 학교에는 학생이 있습니다. 학생정보인권에 대한 고민과 모색이 빠져버린 NEIS 논쟁은 이제 그만 거두어야합니다. 우리 나라가 진정한 교육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래의 꿈나무들인 학생들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 달라져야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무시하는 것은 곧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학생을 중심에 두지 않는 교육논쟁은 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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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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