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 3천원이 아깝지 않습니다"

'보는 농업'을 일구는 농사꾼, 율봄식물원 최후범씨

등록 2003.06.02 21:52수정 2003.06.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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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도 세 번만 먹어보라. 질려서 새 것을 찾게 된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예외는 있다. 토종 된장국. 토종 된장국은 한국 사람이라면 평생을 먹어도 또 찾는 음식이다. 여기 토종 된장국 같은 사람이 있다. 최후범씨(1963년생). 그는 농사꾼이다. 주로 토종 우리 꽃을 기른다. 그래서 일까? 암만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이다.


a '율봄'을 찾은 손님들

'율봄'을 찾은 손님들 ⓒ 신동헌

이제 갓 40을 넘은 최씨는 희끗희끗한 절반의 머리카락이 건방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턱밑까지 흘러버린 수염은 영화배우(?) 아니면 잘 생긴 모델(?) 꽃을 주제로 예술하는 농사꾼답다. 말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씨익 한번 웃으면 누구나 정감을 느낀다. 자기가 살던 공간에 수백 종에 식물을 심어 자연과 함께 산다. 작은 식물원. 이름은 '율봄농업예술원'이라 지었다. 지난 5월 1일 재개장했다.

농사하면 도시사람들은 벼농사나 채소농사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농사꾼들은 대개 여기서 나온 쌀이나 무, 배추를 팔아 생활한다. 이것이 농사꾼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최씨는 입장료로 수입을 대신한다. 입장료가 어른은 3천원, 어린이는 2천원이다. 단체 손님이라고 예외는 없다. 정찰제다. 할인혜택이 없어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가 장사꾼이 아니고 농사꾼이라 생각하면 속 편하다.

a 보는 농업을 지향하는 '율봄'의 최후범씨

보는 농업을 지향하는 '율봄'의 최후범씨 ⓒ 신동헌

그러나 최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만든 서비스상품 가격은 오히려 그 이상인데 3천원의 입장료는 오히려 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도 개장하기 전에 여러 번 친구들과 '율봄'을 찾았었다. 늘 갈 때마다 즐겁고 만족했는데 한 번은 이천에서 움직이는 미술장르 전업작가 서동화 친구와 동행해 점수를 구했다. 서 작가 역시 A플러스를 주었다. 애지중지하는 흰 진돗개 새끼까지 후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사했다.

이곳을 찾은 옆 마을에 사신다는 한 주부도 "정말 흡족해요. 어쩜 농민이 이렇게 수준 높은 예술원을 꾸며 놨을까요?"라며 최씨에게 기분 좋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최씨는 그 주부가 구경하면서 찜해놨던 붓꽃이랑 몇 가지 야생화 3만원 어치를 사면서 1500원짜리 야생화 2개를 덤으로 달라니까 한마디로 일축한다.

"아주머니, 입장료 3천원이 아까웠어요?"


최씨가 가꾸는 식물원은 어떤 곳일까?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휴식'과 '배움'과 '즐거움'과 '예술'이 자연 속에 살아 있는 농원이다. 아직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까페 하나 없고, 세련된 용모에 안내원 한 명도 없다. 그냥 시골스러울 뿐이다.

a '율봄'은 요즘 붓꽃이 한창이다

'율봄'은 요즘 붓꽃이 한창이다 ⓒ 신동헌

위치는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입구 도마리 삼거리에서 멀지 않다. 산자락을 끼고 위치했는데 면적은 약 1만평 그리 넓은 편은 아니다. 요즘은 맨살을 들어낸 향나무 사이로 보라색 붓꽃이 한창이다. 어쩜 붓꽃이 이렇게 사람을 즐겁고 기분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의아심이 날 정도다.


분재 사이에 돈나물 군락도 황홀경이다. 소박한 노란 꽃이 마음에 위로와 휴식을 제공한다. 이렇게 이른 봄부터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면 늦가을까지 이곳 '율봄'은 끊임없는 용트림을 하며 지형을 창조해나간다. 할미꽃, 제비꽃, 금낭화가 피고지면 붓꽃, 패랭이, 매발톱, 돈나물이 줄을 잇고 여름내내 원추리, 나리꽃이 기승을 부리다가 구절초, 벌개미취, 꽃범의꼬리, 용담이 서리가 내릴 때까지 천국을 창조해낸다.

a 흰 속살을 드러낸 주목분재(좌)와 이름 모를(?) 또 하나의 분재(우)

흰 속살을 드러낸 주목분재(좌)와 이름 모를(?) 또 하나의 분재(우) ⓒ 신동헌

특히 '율봄'의 분재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다. 이구동성. 분재 감상만 잘해도 입장료 3천원은 벌고도 남는다. 입구부터 분재를 진열했는데 200백평 분재실에는 소나무, 소사나무, 주목, 철쭉 등을 소재로 한 분재가 5백점이 넘는다. 특히 바깥 길옆에 놓아진 주목을 소재로 한 분재는 일본 사람이 갖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작품이다. 그 당시 3천만엔을 제시했다. 그러나 돈보다는 본인이 늘 옆에 놓고 '율봄'을 찾는 고객들과 함께 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해서 놓아두었다.

그것이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율봄'을 찾는 이들마다 그 분재 앞에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다. 크지 않은 키에 주목 잎은 건강하고 줄기는 하얀 속살결을 최대로 살렸다. KBS 재직 시절 취재를 다니면서 많은 분재 예술을 보았지만 이 수준의 분재는 아직도 기억에 없다.

a 산책로를 걷고 있는 최씨 내외

산책로를 걷고 있는 최씨 내외 ⓒ 신동헌

'율봄'의 주인 최씨는 경기도 광주 토박이로 광주종고를 졸업했다. 축산과를 졸업했는데, 부인 허금순(1965생)씨는 원예과를 나와서 둘이 결혼을 했다. 부인이 2년 후배이다. 남들처럼 두둑한 돈을 가지고 출발을 못했고 화려한 경력을 가지지도 못했기에 생업의 과정에서 식물원은 선택됐을 뿐이다.

처음 출발할 때 이 부부는 남편의 전공을 살려 축산을 했다. 소를 키워 돈을 벌었다. 돼지와 양계를 수천마리 규모화해서 큰 돈도 만졌지만 이곳 팔당댐 일대가 늘 수도권 상수원 보호 1권역인데다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늘 환경을 받아들이는 농업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인의 전공인 원예를 발전시켜 분재를 준비하고 야생화를 수집하면서 관광농업의 꿈을 키우게 됐다. 그 시작이 1985년이니까 벌써 2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부인 허금순은 야무진 형이다. 풀 뽑고 물을 주고 가꾸고 손님 맞고 집안일까지 모두 그녀의 일이다.

"남편은 참 예술 감각이 탁월해요. 물론 저도 거들지만 야생화 가꾸기 등 뒷일은 모두 제가 하지요."

그래서일까? '율봄'에 가보면 늘 깨끗한 예술을 볼 수 있다.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가꾸니 야생화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큰 시설화는 없다. 하다못해 쉬어 앉을 수 있는 벤치 하나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없다.

하지만 지난해 타계한 코미디계의 황제 이주일이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했듯이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보여준다. 짧은 동선이 오히려 장점으로 소박한 휴식을 맘껏 취할 수 있다.

a 설악산 분경

설악산 분경 ⓒ 신동헌

보는 농업 관광농업. 주된 고객은 도시인들이다. 이들을 감동시키는 작업은 대단히 어렵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관광업을 농업인이 한다는 것은 좀 무리다. 최씨도 시작은 했지만 "관광농업을 토종농민이 하는 것은 너무 벅차다"라고 실토한다. 제일 힘든 것이 돈이라고 한다.

입장료 3천원은 이들에겐 먹고 생활하는 생업과 재투자 비용이다. 그런데 3만원짜리 점심 한 끼는 기분좋게 쓰는데 입장료 3천원을 아깝게 생각하는 손님도 있다.

"뭐 이런 데서도 입장료를 받아!"

이런 식이다. 잠시 입구에 서 있어 보면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씨는 말한다.

"사실 입장료 3천원은 우리 부부가 배추 한 포기나 파 한 단을 파는 것과 같지요. 그걸 팔아야 우린 살아갈 수 있어요. 입장료에 불만이 있을 땐 참 안타깝지요. 깎아드리지 못하는 것도 저희가 투자한 비용을 계산하고 앞으로 좀더 미래경영을 위해서입니다"

농촌에서 보는 관광농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동안 관광농원만이 농촌을 들뜨게 했다. 소위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주도했다. 호화스런 건물과 놀이시설 그리고 숙박시설 등을 만들어서 도시민들이 돈을 쓰도록 유혹했다.

최고식물원경영자과정을 이끄는 박석근 원장은 "과잉투자는 관광농업을 망친다"면서 "시설싸움, 즉 수영장, 방가로, 카페 등에는 돈을 쏟아 부었는데, 정작 식물이나 이벤트에 무신경과 무지"를 꼬집었다. 그 결과 4백여개 관광농원 중에서 3백개 이상이 과잉투자로 죽어갔다는 것이다.

a 5천만원 빚으로 세워진 비닐하우스

5천만원 빚으로 세워진 비닐하우스 ⓒ 신동헌

이곳 '율봄'에도 아픔은 있었다. 2년 전 그러니까 2001년 7월 1일. 그날은 꿈에 부푼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날이었다. 개원식 날이었다. 갖고 있던 전 재산을 다 털고 준비를 해서 지역 어른들을 모시고 개원했는데 그 이튿날 그는 24가지 불법으로 고발을 당했다. 호화별장 정도로 인식했을까? 자연에 훼손이 있었을까?

이런 말이 있다. 성공을 하려면 반발만 앞서라고. 그러나 최씨는 두 발을 앞서 갔다. '입장료를 받는 보는농업'(?)은 '농업이 아님'의 무지였다. 그 이튿날 그는 문을 닫았다. 웅덩이에 예쁜 수생식물이 자라도록 만든 연못은 다시 메워졌고 모든 예술행위는 중지 되었다. 산골짜기 공든 돌탑도 허물어져 내렸다.

최씨는 "저 허물어진 돌 하나에도 10여차례 우리 부부의 손길이 갔었지요"라고 회상하며 원상복구 명령에 집만 말고 모두 쑥대밭이 됐다고 회상했다. "예쁘게 하면 농업이 아니다. 그것은 사치다"라는 인식으로 최씨는 분재의 언덕에는 농사를 짓는 모습으로 하우스를 설치했다. 하우스 설치비용 5천만원 이상은 또 빚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사실 자금이 넉넉해 보이는 식물원도 요즘 문을 닫고 휴식을 한다. 최후범-허금순 부부가 대견스럽고 대단한 것은 빚에 시달리며 어려움이 크지만 희망의 미래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재개장, 산철쭉 1만5천 그루 산주위에 심기, 곧 도그스랜드 개장(애완견을 공기 좋은 야생화 속에 전시), 함언식 초대 국화전이 준비 중이고 그리고 이달 6월 18-24일에 한국농업벤처대학이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 펼치는 <인사동 블루스, 농과 예>전에 그의 농업예술 작품 몇 점이 당당히 서울 시민에게 선보인다.

"생활에 절망하다가도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곤 합니다."

농업예술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최후범-허금순 부부, 그들은 절대 이 작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꼬박꼬박 입장료를 잘 내는 도시 사람들은 결코 이 부부를 만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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