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맘 편히 집에 오게 해줬으면"

[한총련 합법화요구 현장④] 경북대 김기훈씨 어머니 조화숙씨

등록 2003.06.02 23:59수정 2003.06.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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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월 20일 경북대 민주광장에서 '한총련 합법화·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게릴라 콘서트' 가 진행됐다.

5월 20일 경북대 민주광장에서 '한총련 합법화·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게릴라 콘서트' 가 진행됐다. ⓒ 위정은

지난달 20일, 한총련 합법화와 정치수배 해제를 위해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게릴라 콘서트에는 열흘 가까이의 단식으로 핼쓱해진 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의 편지 낭독에 눈물을 그칠 줄 몰랐던 김기훈(경북대 총학생회 부학생회장)씨의 어머니 조화숙(50)씨. 몇 번의 약속이 미뤄지면서 어렵사리 포항에서 만난 어머니는 그간 아들의 수배로 인한 시달림이 적잖았는지 "우리 편이라는 확신 없이 사람들을 잘 못 믿겠어요"라며 아들 걱정에 인터뷰 내내 눈물을 훔쳤다.(어머니의 요청으로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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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총련 합법화 되는 날까지 단식"


"아들의 단식,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다면"

단식 첫째 날, 아들이 단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죽을 싸서 부리나케 대구로 온 어머니는 자신과 아들, 단 둘밖에 없는 곳에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아들을 보며 결국 싸온 죽을 꺼내보지도 못했다. 귀한 자식이 일부러 굶는다는 것을 알고 마음 아파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수배생활 더해도 좋으니까 밥 먹으라고 했어요. 그래도 절대 안 먹는다고 하더라구. 정말 그럴 때 부모 마음은 아무도 모를거예요."

단식을 그만두지 않으면 어머니 자신이 차라리 투쟁에 나서야겠다고 아들을 달래기도 했었다. 게릴라 콘서트를 계속 지켜봤던 어머니는 아들이 밥을 굶어가면서 호소하는데 무심히 지나쳐 가는 학생들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단다.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며 자식을 꾸짖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수배자는 당신 아들 뿐인데도 같이 단식에 동참해준 여러 명의 학생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이제 단식도 끝내고 밥 굶는 일도 없지만 자식 걱정에 어머니 눈에는 연신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수배, 집과의 이별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어머니는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담담해진 거라고, 처음에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며 2001년 아들이 처음으로 수배를 받게 될 당시를 떠올렸다.


"평일인데도 애가 갑자기 집에 내려온 거예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그 여린 것이 나를 앉혀놓고 눈물부터 흘리더라구요. 그러면서 말했어요. 단대 회장을 하게 됐다고, 수배가 될 수도 있다고, 앞으로 집에 못 오게 될꺼라고..."

복받쳐오르는 감정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어머니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차마 그대로 아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포항에서 대구까지 같이 오면서도, 택시 안에서도 내내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는 3년, 아들은 단 한 번도 집에 올 수 없었다. 정식으로 수배가 내려진 것이다. 비록 한 달에 몇 번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갔지만,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수배자의 몸으로 학교 밖을 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배생활 3년 - 가족들의 고통

어느덧 지나간 3년 동안 가족들은 이루 말로 못할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주위에서 그 착실하던 아들이 어디갔냐고, 요즘 안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명절을 전후로 어김없이 방문하고 아들을 데리고 자수시켜 탈퇴서를 쓰게 하라는 경찰의 전화가 더욱 고통스러웠다.

a 경북대 단식단이 게릴라콘서트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고 있다.

경북대 단식단이 게릴라콘서트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고 있다. ⓒ 위정은

한 명이 구속될 때마다 또 한 명이 구속됐다고, 이제 몇 명이 남았다고 꼬박꼬박 전화하는 경찰 때문에 시달려야 했고, 경찰이 아버지 회사로 전화를 하고, 이로 인해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여동생은 눈물이 마를 새 없는 어머니를 보면서 '엄마를 울게 하는 오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대학생이 되고 시위라는 것에 참여하면서 오빠가 무슨 생각을 하며 왜 그렇게 해야 했는 지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단다.

쓸데없는 일인지는 알지만, 예전에는 답답한 마음에 굿도 해봤다. 요즘은 한총련의 '한'자만 나와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얼마 전 방영된 '100인 토론'은 끝까지 마음을 조마조마 하면서 지켜봤다.

한총련 학생들한테 맞아서 식물인간이 됐다는 전경의 아버지가 나올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분명히 학생들 쪽의 피해도 있는데 그런 건 전혀 나오지 않았잖아요.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총련은 다 저렇다고 생각할 거 아니예요.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탈퇴서 쓰라' 요구하지 않은 어머니의 믿음

그렇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자수하러 가자고 아들 손을 이끈 적은 없다. 가족 생각 좀 하라고, 왜 그리 철이 없냐고 호통은 쳤지만, 경찰들이 하자는 대로 경찰서로 가자던가 탈퇴서를 쓰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형사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닌지 어느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자식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기 싫어요. 그 애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나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만약 내가 억지로 손을 잡고 경찰서로 간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 애는 평생 나를 원망하며 살 거예요. 난 내 아들을 믿어요."

항상 나서지 말고 뒤에서 지켜보라고,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 수 없냐던 어머니는 어느새 아들이 의지와 신념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힘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자식이 집에서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최근 한총련 합법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되는가 싶더니 여러 가지 일로 다시 꼬이고 말았다. 어머니 역시 이제는 아들이 맘 편히 집에 올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 바람은 다시 고이 접어둘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이번에는 솔직히 정말로 기대를 걸었었는데..."라며 아쉬워하는 어머니에게 한총련 합법화는 한총련의 정당성 문제라는 거창한 화두 보다 내 자식이 집에 와서 편하게 잠자고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비로소 바닷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거실에 누워서 창 밖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싶다"는 아들의 바람과 3년 째 그대로인 아들의 방이 주인을 되찾을 수 있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경북대 부총학생회장 김기훈씨가 어머니께 띄우는 편지

▲ 김기훈씨가 게릴라콘서트에서 편지를 읽은 후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 은혜'를 부르고 있다.
단식 9일째 되는 오늘, 어머니께는 다행인 소식이겠지만 해단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때 대구 오시지 않아도 된다는 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구에 올라오신 어머니는 벌써 눈이 벌개질 때까지 울고 계셨죠. 너희 단식단이 단식을 그만두든지 어머니 당신이 투쟁에 나서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고 눈물을 보이셨죠.

자식 걱정되기는 하지만 앞서서 하지 않겠다던 어머니가 못난 자식의 못난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신 날, 저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날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수배자 부모님들이 삭발 단식투쟁에 나설 때도 그랬지만,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못난 자식 때문에 부모님에게까지 짐을 지우게 된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수배를 더 받더라도 단식투쟁 같은 것 하지 말라던 어머니 말씀! 집에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단식투쟁이 어머님께 또 다른 고통을 드렸습니다. 또 다른 아픔을 드렸습니다. 또 한번 철없는 아들의 철없는 몸짓이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2001년이 떠오르네요. 어머니 건강 해칠까봐 단대 회장 한다는 것도 수배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었죠. 마지막으로 집에 갔던 날, "어머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마디 해놓곤 울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가슴 졸이며 정든 집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는 맏이를 떠나 보낼 준비를 조용히 하고 계셨죠!

수배 3년. 99년 두 달간 맏이의 옥바라지에, 주위에서 암 걸린 사람 같다라고 할 정도로 여린 분이 꿋꿋하게 이겨내셨습니다. 세상 모두가 저를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저를 믿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믿음 하나가 수배자 가족 3년 세월을 버티게 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 생각 좀 하라고... 왜 그리 철없냐 라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데모냐 라고 호통도 치셨지만 자식에게 지금 자수하러 가자고... 학교밖에 나가자고... 그런 빈 말 한번하지 않으셨던 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수배 3년차지만 내 생각과 의지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지금껏 왔던 것은 부모님... 어머님의 도움 때문입니다. 세상 어느 자식이 일부러 불효하고 싶겠어요. 세상 어느 자식이 그리운 집을 가고 싶지 않겠어요. 어머니 아시죠? 제 마음을...

이 생활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랑 등산도 다니고... 어머니랑 쇼핑도 가고... 정선이랑 술도 한잔하고... 거실에 누워서 창 밖 바다를 바라보며 따사한 오후 여유롭게 맞이해 보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그들이 사람이라면... 170여명의 정치수배자들을 가만히 놔두진 않겠죠. 자식을 옥죄는 국가보안법에 이적규정에... 수배에 이 땅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절규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그냥 두진 않겠죠.

그래도 가슴이 찢어지는 건... 이런 수배학생의 고통, 분노, 부모님들의 눈물을 이용해 젊은 청춘들의 이상을 거세해 보려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되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다시 고통 속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오지랖 넓게 이해해 보려고도 했지만, 수배가족들의... 그리고 어머님의 눈물을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주머니만 채우고 싶고 제 몸, 제 자식만 귀한 줄 아는 삐딱한 모습. 가진 것도 없고 사람사랑과 높은 이상만을 가지고도 유린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사치입니다. 다만 어머님 말씀처럼 쌍욕하고 달려들면 똑같은 사람이 되니 예의를 갖춰 항의해야죠. 투쟁해야죠.

새 봄... 수배 해제된 몸으로 집에 가겠다던 약속은 어느덧 여름되어 본의 아니게 어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단식하면서 얻었던 희망. 오늘 있을 <게릴라 콘서트>가 더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어머니.. 오늘 참석할 친구들의 따스한 눈빛이 바로 희망입니다.

단식중인데 말 많이 하지 마라던 걱정 어린 눈빛에 말을 줄여야 했던 일이 생각나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간만에 어머님께 쓰는 편지라 말이 길었네요...

건강하세요.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2003년 5월 20일
못난 아들이 드립니다. / 김기훈(경북대 35대 행복교감 자주총학 부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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