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 "저는 조국에 죄인"...법무장관에 탄원서

"할머니 묘소 늦게라도 뵙고 싶다" 심경 밝혀

등록 2003.06.05 19:34수정 2003.06.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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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승준
가수 유승준오마이뉴스 이종호
“저의 개인적인 욕심이겠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말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수많은 분들께 제가 받았던 사랑 그 이상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용서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님의 묘소, 늦게라도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미국시민권을 획득, 고의적인 병역기피 의혹을 받아 국내입국이 불허된 가수 유승준이 강금실 법무부장관 앞으로 보낸 탄원서가 처음 공개됐다.

<중앙일보>는 5일 인터넷판(www.joins.com)을 통해 지난 5월 19일 튜브 레코드의 이천희 대표가 제출한 진정서에 첨부된 가수 유승준씨의 친필 탄원서 전문을 공개했다. 이 탄원서는 지난 4월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성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유씨는 이 탄원서에서 “조국에 저의 잘못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제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그간의 심정을 토로했다.

유씨는 또 “이젠 가수로서의 정상보다는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싶다”며 “사랑하는 할머님의 묘소에 늦게라도 꼭 찾아뵙고 싶다”는 희망을 밝힌 뒤 법무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다음은 유승준씨의 탄원서 전문.

[가수 유승준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법무부 장관님.

저는 가수 유승준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저의 조국에 대해 전 죄인이기에 먼저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할 지,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분께 편지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중앙일보>는 5일 가수 유승준씨가 법무부장관에 보낸 친필 탄원서를 공개했다.
<중앙일보>는 5일 가수 유승준씨가 법무부장관에 보낸 친필 탄원서를 공개했다.중앙일보
하지만 꼭 드릴 말씀이 있기에 이렇게 누를 무릅쓰고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올립니다. 제가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지도 벌써 일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조금은 힘들고 외로웠지만 저에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저에게는 어머니입니다. 아니 미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민자들의 고향입니다. 처음 13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 생활을 할 때부터 문화적 차이와 언어의 갈등으로 방황할 때마다 조국을 항상 그리워했고,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곤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원인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6년에 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저에게 큰 희망과 용기, 그리고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수많은 팬들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저의 절실한 소원인 가수가 되게 해준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지금은 그 사랑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님, 이곳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이민자들은 그 누구보다 조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월드컵 축구 때 목이 터져라 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힘차게 응원하던 이곳 이민자들의 열띤 성원을 기억합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모두 다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런 조국에 저의 잘못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제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법무부 장관님, 얼마전 저를 유난히 귀여워해주시던 할머님께서 매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대한민국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 4월 11일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저를 보고 싶어 하셨는데, 그 소식을 듣고도 대한민국으로 갈 수 없는 저의 입장이 너무 한스러웠습니다. 다만 조용히 할머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또 저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많은 웨스트 사이드 팬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부족한 저에게 가수로서의 정상의 위치까지 서게 해준 팬들과 국민들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그 사랑에 보답할 길은 없는 걸까요. 이젠 가수로서의 정상보다는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욕심이겠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말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수많은 분들께 제가 받았던 사랑 그 이상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용서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님의 묘소, 늦게라도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한국으로 반성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청년의 마음을 부디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두서없는 글을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3년 4월 1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유승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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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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