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을 탐색하는 지적 모험

폴 데이비스의 <제5의 기적 - 생명의 기원>

등록 2003.06.24 06:27수정 2003.06.2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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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신은 첫째 날에 빛, 둘째 날에 하늘, 셋째 날에 땅과 바다 그리고 땅의 식물, 넷째 날에 별, 다섯째 날에 하늘과 바다의 생물, 여섯째 날에 땅의 동물과 인간을 창조하였다.

창조의 순서로 보자면 생명은 5번째이며, 심지어는 별보다도 먼저 창조되었다. 그리고 생명은 3일(셋째 날, 다섯째 날 및 여섯째 날)에 걸쳐 창조되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한 6일 중 절반이 생명의 창조에 쓰여진 것이다.


분명 구약성서 창세기로부터 책의 제목을 따왔음에 틀림없는 폴 데이비스의 <제5의 기적 - 생명의 기원>은 성경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생명의 기원이 지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또한 신이 그토록 공을 들였을 정도로 생명의 탄생이 고도의 복잡성을 요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과학은 기적을 배척한다’라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책의 표제로는 ‘기적’을 내세운 것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생명의 발생이 확률적으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다루는 폴 데이비스의 자세는 물리학자로서의 굳건한 과학적 접근방법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아 놀랍다. 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열역학 제2법칙(물리학)과 다윈의 진화론(생물학)을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전개하는 두 기둥 이론으로 삼고 있다.

생명의 기원과 관련하여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두 가지 문제, 즉 ‘어디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담고 있는 이 책이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한 시험하는 매우 흥미로운 관점들과 새로운 견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과학적 추론을 통해 생물학적 정보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곳이 저 캄캄한 우주의 중력장이라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놀라게 된다. 초극미의 DNA 분자가 저 광대한 우주를 담고 있다는 역설은 ‘겨자씨 한 알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불교의 오랜 가르침을 떠오르게 만든다.

생물학적 정보의 복잡성을 무작위성과 정보 함량의 관점에서 살펴본 대목도 매우 흥미롭다. 여기에서도 역설이 존재한다. 즉 게놈은 핵산 분자의 마구잡이 서열에 의해서만 고도의 복잡한 생물학적 유전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반면 그것이 생물학적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마구잡이가 아닌 매우 특별한 서열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율배반적 모순이 ‘물리학 법칙과 모순이 되지 않지만 물리학 법칙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새로운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리라 믿고 있으며 요즘 한창 연구 중인 복잡성 이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지은이 소개

이 책의 저자 폴 데이비스(Paul Davies)는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이며 20 여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탁월한 과학저술가이기도 하다.

1946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런던 대학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대학에서 강의를 하였고, 뉴캐슬대학에서 이론물리학 교수와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수리물리 및 자연철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기초물리학과 우주과학을 다룬 대중 과학도서를 저술하겨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그는 여러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방송에도 출연해 과학 해설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1995년 과학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로 템플턴 상을 수상하였으며, 최근에는 영국 물리학협회로부터 켈빈 메달을 받았다.

저서로는 <생명의 기원>을 비롯해서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과학혁명의 뉴패러다임>, <타임머신>, <시간에 대하여>, <우주의 청사진>, <다른 세계> 등 다수가 있다.
지구의 남극에서 발견된 화성 운석 ALH84001의 연구 성과와 관련하여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 본 부분은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화성탐사와 더불어 우리에게‘우주에서 우리는 홀로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믿음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의미는 만만치 않으며 그것은 또 다른 책 한 권을 요구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생물학과 물리학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화학, 수학, 지질학, 전산학 등 제반과학의 폭넓은 지식으로 생명의 기원을 탐색해 나가는 저자의 지적 모험을 따라 나서는 것은 어느 정도의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는 소화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다소 매끄럽지 못한 번역과 사소한 편집 실수들도 우리의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또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우리는 인간의 게놈 지도를 해독해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제5의 기적 - 생명의 기원>(폴 데이비스 지음, 고문주 옮김, 도서출판 북스힐 펴냄, 2000년 12월)

생명의 기원 - 제5의 기적

폴 데이비스 지음, 고문주 옮김,
북스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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