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불이 대가성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유기홍의 엽서 한장 2]

등록 2003.06.27 02:49수정 2003.06.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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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치범 사오기'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의 일이다. 서독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 이후 동독과의 화해협력정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동독에 대한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의 원형이라 할 수 있으며, 지원의 규모도 우리의 대북 지원보다도 엄청나게 큰 규모였다.

그러나 서독 주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적대적이었던 동독에 지원되는 것에 대해 당연히 지불해야 할 통일비용으로 생각했으며, 이에 항의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서독정부는 내독연방성이라는 부처를 통해 동서독 간의 화해협력을 증진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독을 지원했다. 예컨대 동서독 간의 편지 왕래시 연말에 동독정부에 우편요금(서독에서 동독으로 가는 우편물은 물론, 동독에서 서독으로 온 우편물까지)을 지불하였으며,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방문할 때 여행비용까지 지원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독연방성의 공식 예산으로 집행한 것이고, 이외에 아주 특별한 비용이 지불되었다. 주로 종교계를 통해 동독의 정치범들을 '몸값'을 지불하고 서독으로 데려온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냐에 따라 몸값도 천차만별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비용은 '비공식적으로' 처리되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뒷거래였던 셈인데, 나중에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이 '정치범 사오기'를 문제삼았지만 필요성에 대한 설득이 이루어져 더 이상 문제가 확산되지 않았다. 통일이 이루어진 지 십 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누구의 몸값이 얼마였던가는 역사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식-비공식 통일비용의 지속적인 축적이 마침내 독일 통일을 가져왔던 것이다.

또 1982년 미-소 간에 미사일문제로 심각한 대립이 이루어졌을 때 동서독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전후하여 서독정부는 동독에 엄청난 액수의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정상회담의 댓가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정상회담이 동서독 간의 평화를 증진하자는 취지였기에 이 역시 대가성의 시비는 거의 없었다.


소위 1억불문제

어제 특검에서 발표한 소위 1억불의 정상회담 대가성 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정상회담을 돈주고 샀다"느니, "경협자금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느니 비난을 퍼부어대고 있다.


하지만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앞에 독일의 경우에서도 보았듯이 통일비용과 평화비용에서 대가성 여부를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1980년대 전후 동독은 동구권에서는 가장 형편이 나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서독은 엄청난 통일비용을 아낌없이 치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기아와 에너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본인들의 말에 따르면 생존을 위해 핵이라도 개발해야 할 처지인 북한을 평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통일비용으로 지불한 것이 그렇게도 큰 문제란 말인가?

또 설사 대가성이 좀 있었다고 해도 뭐가 그리 큰 대수인가? 나라와 나라의 외교에서도 과연 대가성 없는 관계가 있는가 말이다. 독일의 정치범 사오기에서 보듯, 비공식적인 통로가 필요할 수 있다. 우리보다 훨씬 민주주의의 역사가 긴 독일 국민들이 이를 용납했던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통일의 길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훨씬 더 커다란 것을 얻었다. 남북 간에 화해와 평화의 기반이 더 튼튼해지고 경의선과 동해선, 금강산까지의 육로가 연결되고 있으며 남북한 양쪽에 커다란 경제적 시너지효과를 가져다 줄 개성공단이 추진되고 있다. 개성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심적인 군사도시이다. 북한이 개성을 개방한다는 것보다 더 큰 평화의 메시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경의선이 연결되어 궁극적으로 유럽까지 철의 실크로드가 이어질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과연 어느정도일까만 계산해 보아도 정상회담은 설사 어느정도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치러졌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과정이 더 투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은 남는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남북 간의 관게가 보다 안정적이고 공식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도 맞다. 그러나 서독이 정치범 사오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듯이 반세기 끊어져 있던 남북관계를 다시 잇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과도기적 문제는 불가피했던 것 아닐까?. 장강의 큰 물줄기가 흐르는 속에 약간의 역류가 있더라도 장강은 쉬임없이 흐르는 법이다.

한나라당의 "또 특검"

한나라당이 특검법안을 또 냈다. 단독처리도 불사한단다. 이 문제를 계속 끌고 나가 내년 총선전략에 이용하려는 한나라당의 절박함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나 너무 비겁하다. 이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이간질하려는 노림수도 유치하고,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도 반칙이다.

1994년 미국의 영변 폭격설 등으로 전쟁위기가 고조되었을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장서서 미국 정계를 설득하고 카터의 북한 방문을 주선해 김영삼 정부를 위기에서 구해내지 않았던가? 민족문제란 이런 것이다. 그 무렵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을 지낸 지금 한나라당의 누구 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는가?

노태우씨가 소위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소련을 방문하면서 30억불을 빌려줄 때(물론 뒷거래와 대가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이를 제대로 받아내지도 못했을 때 역시 지금 한나라당의 뿌리인 민자당 의원 누구 하나 나서서 입바른 소리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처지가 바뀌었다고 나서서 "또 특검"을 엄숙하게 외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150억원은 검찰에서 수사하여 처벌하면 된다. 송두환 특검도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이 없었으면 하는 주문과 남북관계가 더 이상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는가?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더 이상 이번 1억불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독일 국민들이 그랬듯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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