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이라도 저를 기억해 줄 수 있다면..."

나무 의사 우종영의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등록 2003.06.27 14:43수정 2003.06.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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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새롭게 부각된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환경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산업화 이후 인간들은 알게 모르게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 갔고, 그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야기되어 왔다. 다행스럽게도 인간과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하는 회의와 의문이 일기 시작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 덕분에 이제는 너도나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 해결점을 찾는 데에 다양한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단순한 구호에만 그칠 경우, 실질적인 해결은 아직도 머나먼 길일 것이다.


요즘 범람하고 있는 환경주의적 관점의 책들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러한 견해를 반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가치 있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피상적인 구호와 문구의 나열에만 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는 그런 면에서 볼 때에 단순한 구호의 나열이 아닌 진정한 나무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평생을 나무 돌보기에 헌신하면서,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나무에게서 배웠다"고 말하는 한 나무 의사가 아픈 나무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쓴 이야기들이다.

전체 내용은 각 장마다 박달나무, 가죽나무, 소나무 등의 다양한 나무들이 직접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관점에서 본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나무 자신들이 전달하는 환경 이야기이다.

나무가 바라보는 인간들은 '지구별의 이상한 생명체'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바쁘다. 찬찬히 인간들을 살펴 본 나무는 인간들이 바쁜 이유가 '자기 것을 갖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얻는다. 나무가 발견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나'와 '너'이고,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내 것'과 '네 것', 그리고 가장 원하는 것은 '내 것'이 '네 것'보다 '많은 것'이다.

가로수로 도심 속에 서 있으면서 온갖 수모를 당하는 소나무는 가슴 아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저를 보면 한번 툭 건드려 보고 싶은가 봅니다. 한여름에 그늘을 찾아 제 몸뚱이에 기대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제 살갗을 뜯어내거나 채 새순이 돋지도 않은 여린 가지를 뚝 끊어갈 땐 너무 아파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뿌리를 뻗고 싶어도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각의 틀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려면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만큼 땅속뿌리도 뻗어가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나 봅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론 그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보이는 모든 것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입니다."


이러한 나무들이 기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각각의 특성에 맞게 가꿀 줄 아는 이해심 깊은 공존 대상으로서의 인간이다. 나무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뜻하는 '녹색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무는 자신과 교감할 줄 아는 인간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그렇게 한없이 바라만 보면서 그들은 나무와 교감을 합니다. 그러면서 나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줘야 잘 자랄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터득합니다. 나무를 돌보기 전에 먼저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지요."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단순한 나무 이야기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무의 목소리를 빌어 인간들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의 시각만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가르침들을 전한다.

"그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당신이 진정으로 찾고 있는 행복은 지금 당신이 무심코 흘려버리는 그 무언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이 보려 하지 않는다고 해야 맞겠지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이해되고 알게 될 것을 당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봐도 제대로 모르고, 진짜 모습이 아닌 허상만 보게 되는 것이지요."

앞 못보는 할아버지의 손길로 인해 다시 살아나게 된 모과 나무는 본다고 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며, 안 보인다고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보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무심한 눈으로 그저 보이는 것만을 좇고 있는 당신.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해 있나요? 당신 눈에 비친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당신은 나무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저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요?"

그리고는 말한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무를 발견하여 그 나무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라고, 당신이 봐야 할 곳은 '지금 당장'이 아닌 '앞으로의 모습'이라고, 이렇게 파괴만 일삼는다면 언젠가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종적을 감추고 말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나무가 전하는 편지는 그래도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신이 마음을 먹는다면 상황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인간 각자가 아주 조그만 일을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아주 큰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지구를 바라보고 행한 작은 일은 결국 세상을 바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인간과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지구 가족이 되어 함께 행복해질 날을 감히 꿈꿔 봅니다."

인간들을 향해 외치는 이 작은 목소리들에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인다면, 인간과 공존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모습은 그리 머나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

우종영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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