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치매에 걸릴까?

책 속의 노년(60) 데이비드 스노든의〈우아한 노년〉

등록 2003.07.01 21:08수정 2007.06.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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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베일을 쓴 수녀님이 먼 발치에서라도 지나가면 엄마는 꼭 그러셨다. "얘, 나이 많은 수녀님이나 비구니들 보면 다 얼굴이 깨끗하고 곱더라.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야, 걱정들이 없으신 거지…" 그리고 이어지는 나지막한 한숨. 삼남매 기르느라 시달리는 엄마 마음은 모르고, 난 고개를 돌려 그 수녀님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곤 했다.

<우아한 노년>의 저자 데이비드 스노든은 역학(疫學) 박사로 교육 수준과 생활 양식이 비슷한 '수녀 연구'를 통해 노화와 치매에 관련된 주목할만한 결과를 얻었는데, 이 책은 그 과정을 소상히 기록해 보여주고 있다. 역학(疫學)이란 의학의 한 분야로, 사전에는 질병을 집단 현상으로 파악해 질병의 원인과 유행의 지역 분포 그리고 식생활 등의 특징에서 법칙성을 찾아내 공통 인자를 이끌어 내려는 학문으로 풀이되어 있다.


스노든은 이전에도 루터교와 안식교 신도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런 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생활 양식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질병이나 건강과 관련된 요인들을 비교하기에 아주 좋은 대상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수녀들 역시 독신이며 하는 일이 비슷하고, 받는 의료 혜택 역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노화와 질병에 개개인의 어떤 요인이 작용을 하는지 밝히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평생 다른 사람들을 돕고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해온 수녀들이, 마지막으로 노년기에 '다른 사람들이 더 오랫 동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동의함으로써 수녀 연구는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놀라운 것은 나이 드신 수녀님들이 수녀 연구에 검사나 면접 등으로 협조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사후에 자신들의 뇌를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부검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이 수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연구에는 교육 수준과 노년기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 사이의 관계, 가족 환경이 미치는 영향, 알츠하이머병(치매에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뇌혈관성 치매 등이 있다)과 뇌의 위축, 뇌졸중과 알츠하이머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한편 수녀원 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수녀들의 기록 사이에는 수녀회에 들어온 후에 기록한 자서전이 남아있었는데, 스노든은 이 자서전 분석을 통해 단음절 사용자와 다음절 사용자 사이의 차이, 단순나열형인 사람과 생생하고 시적인 글을 쓴 사람들 사이의 이후 질병 발생의 차이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스노든과 함께 한 연구자들은 어휘력과 독해력이 알츠하이머병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어휘력과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것을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오랜 시간에 걸친 수녀 연구를 통해서 스노든은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할 것과 뇌졸중의 위험을 줄일 것, 아울러 젊은 시절의 긍정적인 성향이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있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알맞은 운동을 지금 바로 시작하라고 이야기한다.

동시에 스노든은 과학적인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영성이나 공동체의 힘, 기도와 미사 참여 등이 노년기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볼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수녀 연구'를 기록한 것이어서 의학 용어도 조금 많이 나오는 편이지만, 연세 드신 수녀님들 한 분 한 분에 대한 세밀한 기록들은 그 어느 이야기 책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또 수녀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의 절제된 생활과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헌신하는 삶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움직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불완전했지만 인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 수녀님과 '내가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기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수녀님의 노년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치매를 노년기에 가장 피하고 싶은 질병으로 꼽을 것이다. 동시에 인간 수명의 연장과 더불어 치매는 계속해서 우리를 어려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수많은 질병 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참여해 의미있는 결과를 얻도록 도와준 수녀들의 헌신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책에 나오는 리타 슈발베 수녀의 고백은 그래서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 수녀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과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보다 더 힘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래 전 지나가는 수녀님의 얼굴에서 깨끗한 나이듦을 보셨던 엄마의 눈은 역시 밝으셨다. 그러나 그 이유는 무자식이 상팔자여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수녀님 개인의 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뇌의 부검까지도 허락할 수 있는 헌신성이 그 바탕에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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