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을 수놓은 듯한 잠꾸러기 자귀나무의 전설

<만나고 싶은 우리 꽃과 나무 17>부부 금슬 좋게 하는 자귀나무

등록 2003.07.03 15:52수정 2003.07.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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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자귀나무에 대한 두 가지 전설


옛날 중국에‘우고’라는 사람이 조씨 부인과 살았다. 그 부인은 단오가 되면 자귀나무의 꽃을 따서 말린 후 꽃잎을 베개 속에 넣어 두었다가 남편이 우울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말린 꽃잎을 조금씩 꺼내 술에 넣어 마시게 했다. 그 술을 마신 남편은 곧 전과 같이 명랑해졌다고 한다.

a 서오릉에서 찍었습니다. 서오릉 가는 법은 은평구 역촌동에서 고양시 방향으로 조금 가면 있습니다.

서오릉에서 찍었습니다. 서오릉 가는 법은 은평구 역촌동에서 고양시 방향으로 조금 가면 있습니다. ⓒ 김규환

옛날 어느 마을에 부지런하고, 황소같이 힘 센‘장고'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중매를 많이 하였으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고는 언덕을 넘다가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집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 집 뜰 안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을 무렵 부엌문이 살며시 열리며 어여쁜 처녀가 모습을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했고, 장고는 꽃 한 송이를 꺾어서 처녀에게 주며 청혼을 했다. 그 후 결혼을 했고, 몇 년간은 알콩달콩 잘 살았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읍내로 장을 보러 갔던 장고가 그만 술집 여인네에 빠져 집을 돌아오지 않았다. 장고의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리기 위해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백일 째 되던 날 밤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서, ‘언덕 위에 피어있는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 두어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신령의 말대로 언덕에 올라가 꽃을 꺾어다 방안에 꽂아 두었다. 어느 날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은 그 꽃을 보고 옛 추억에 사로 잡혔다. 그 꽃은 자기가 아내를 얻기 위해 꺾어 바쳤던 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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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안마당에 심어 부부 화목을 도모하라


예로부터 자귀나무는 사이 좋은 부부에 비유되곤 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안마당에 심어 놓으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고 하여 많이 심었다. 자귀나무가 부부의 금슬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잎의 독특함 때문이다. 자귀나무의 잎은 버드나무 잎처럼 가늘며 마주 붙어 있는 겹잎이다. 낮에는 그 잎이 활짝 펴져 있다가 밤이 되면 반으로 접힌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잎이 서로 사이좋게 붙어 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합혼수(合婚樹)로도 불리는 자귀나무를 소가 잘 먹는다고 소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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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그리고 잠꾸러기 자귀나무

<나무야 나무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엽서>, <더불어 숲>의 저자이기도 한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이 1960년대 후반 서울 문화동(지금의 신당동의 일부)에서 버스를 타고 은평구 역촌동에 내려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소풍 갔던 고양시 서오릉(西五陵)에 자귀나무가 불꽃 잔치를 하며 피어 있다. 하지만 그 날 쇠귀선생님은 자귀나무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자귀나무가 겨울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련과 매화에 이어 진달래, 철쭉이 지고 난 5월 하순에야 겨우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대추나무, 회화나무 등과 함께 잎을 늦게 피우는 잠꾸러기로 유명하다. 이른봄에 다른 나무들은 잎이 다 돋아났는데도 자귀나무만 잎이 돋지 않아 죽은 나무인 줄 알고 베어 버렸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다. 콩과식물인 자귀나무는 척박한 땅을 일궈주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을 신경쇠약, 불면증에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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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자기자기” 하며 잎이 흔들리고, 가는 명주실을 수없이 펼쳐 놓은 듯한 자태

피고지기를 백일홍(百日紅, 木百日紅)이나 무궁화(無窮花)에 버금가는 자귀나무를 시골 산골에 가면 많이 만날 수 있다. 내 고향에서는 ‘짜구대나무’로도 불렸는데 비오기 전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잎이 마구 춤추듯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대 바람 소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사각사각” 얼마나 귀를 간질이던지 “자기 자기”, “자기야 자기야” 속삭이는 듯 하다.

잎이 모이는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더위를 좋아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밤에는 열을 발산시키는 잎의 표면적을 될 수 있는 한 적게 하려고 잎을 모은다. 둘째, 잎을 모아서 폭풍우 같은 피해에 대비하여 최선의 방어 자세를 갖춘다. 셋째, 잎을 모아서 밤새 날아드는 벌레의 침입을 막는다.

무더위에 지쳐 가는 몸 부부가 손을 잡고 가까운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로 밤 산책을 떠나보자. 잎들의 화려한 자태에 놀라고 마치 수백 개의 명주실이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자귀나무의 꽃은 관상 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향기도 짙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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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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