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의 공간'에 찬양기념관을?

[현장] 충북도, '청남대'에 역대 대통령 기념관 추진 논란

등록 2003.07.06 09:58수정 2003.07.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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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건물 현관 양 쪽으로 역대 대통령의 대형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건물 현관 양 쪽으로 역대 대통령의 대형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 심규상

"(청남대는)주민들의 원성 속에 조성됐기 때문에 인정받는 시설이 아니라 '원성의 표적'이 돼버렸다..."

건립된지 20년 만에 청남대가 대통령 전용 휴식공간에서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진 날 노무현 대통령은 반환식 행사에 참석해 그동안의 청남대를 '원성의 표적'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행사에 동석했던 이원종 충북지사는 이어 "이렇게 멋진 청남대를 여러분께 되돌려 준 노 대통령의 멋진 결단에 감사를 드린다"며 "이 역사적 현장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역사적 명소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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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민족문제연구소 회원 1백여명 청남대 항의시위

하지만 반환식이 치러진 지 두 달여 만에 이원종 지사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역사적 명소로 만들겠다'고 한 다짐이 의심받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원성 가장 크다"
청남대 만들고 주민 생존권 무시해

청남대가 들어선 때는 20년전인 1983년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1980년 착공해 3년여만에 완공됐다. 총면적은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일대 184만㎡(55만8천여평). 이중 54만3천㎡(16만4천여평)는 행정구역상 대전에 속한다.

청남대가 들어서면서 이 일대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대청호 어업구역도 크게 축소됐으며 1982년부터 운행되던 문의-장계리간 유람선 운항도 3개월만에 중단됐다. 충북도가 문의면 일대를 국내 최대 국민관광휴양지로 조성키로 한 계획도 백지화 됐다.

문의 주민들을 더욱 실의에 빠지게 한 것은 지나치리만큼 삼엄한 경호로 청남대 주변인 문의면 일대 관광객들이 대거 발길을 돌리게 된 것.

신성국 신부(안중근 학교장)는 "문의면 주민들이 청남대를 원성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1년에 단 며칠 간의 휴가를 위해 주변 주민들의 생존권을 철저히 무시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신부는 이어 "그중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남대를 만든 장본인인데다 가장 주변 통제를 심하게 해 원성을 가장 크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 심규상 기자
충북도가 청남대에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 기념물 전시를 통해 '역대대통령 기념관' 형식으로 가꾸려고 시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는 최근 청남대 내 경비대 숙소 1층 6실에 역대 대통령 전시실을 조성했다.

이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청원군 문의면 신성국(안중근학교) 신부와 조성학(문의성당) 신부, 정진동(청주 도시산업선교회) 목사, 김창규(나눔교회) 목사 등 성직자 등이 지난 3일 오전부터 역대 대통령 기념물 전시장 추진 백지화를 요구하며 청남대 1문 진입로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4일 오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학살자인 전두환과 민족파탄의 주범들이 역사적 평가 없이 청남대에서 부활하고 있다"며 "민권회복의 상징 등 국민 관광명소로 조성해야 할 청남대를 파행적인 역대 대통령 전시관으로 조성하려 한 이원종 충북지사의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파문이 일자 안중기 청남대 관리사업소장은 4일 오후 농성장을 찾아 "기념품이 본관 지하에 먼지를 안고 쌓여 있어 사무실로 잠시 옮겨 놓은 것"이라며 "전시실 마련은 오는 7일 관리사무소 개청식에 맞춰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박한 마음으로 급히 꾸며 놓았다"고 해명했다.


a 각 6개실에 마련된 역대 대통령들의 사용 물품들

각 6개실에 마련된 역대 대통령들의 사용 물품들 ⓒ 심규상

안 소장 "먼지 쌓여 잠시 옮겨 놓은 것"

안 소장은 이어 "전직 대통령 기념관은 생각해 본적도 없다"며 "기념물 전시실도 반발이 있는 만큼 곧바로 폐쇄조치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 소장의 폐쇄조치 약속에도 불구하고 농성단원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농성단원들은 특히 역대 대통령 기념관 조성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안 소장의 해명에 "사실과 다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는 청남대 내 급히 꾸며 놓았다는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건물에 들어서자 대청호반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현관 로비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서부터 역대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각 실에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하던 각종 물품이 빼곡히 정돈돼 있었다.

물품은 김영삼 대통령이 휴가 중 휴대한 책, 김영삼 대통령 생가 전경 및 항공사진, 전두환 대통령 등이 신던 운동화, 골프채, 골프공, 자전거를 비롯 화장품, 야구 글러브 등 수백 여 품목에 이르고 있었다. '4월 18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분께서 타시던 자전거'라는 설명문도 눈에 들어 왔다.

a 화장품 세트 등

화장품 세트 등 ⓒ 심규상

특히 1실 전체에는 (주)한국도자기측의 지원을 받아 각 대통령별로 청와대 등에서 사용하던 식기 수 백여점을 전시해 놓기도 했다.

정진동 목사는 "특정 도자기 회사에 의뢰해 청와대 등에서 사용하던 식기류를 만들어 전시하고 전직 대통령 생가 전경까지 전시해 놓은 것이 단순히 먼지를 피하기 위한 것이였다고 발뺌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혀를 찼다.

"전직 대통령 기념관 건립위한 사전 정지작업"

정 목사는 "충북도가 청남대 활용방안으로 전직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계획하고 사전 정지작업을 벌이려 꾀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현재 '청남대 명소화 중단기발전계획' 용역을 발주하고 있는 단계로 용역을 끝낸다 해도 공청회 등을 열어 최종안이 만들어 질때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며 "전직 대통령 기념관은 일부 주민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적극 부인 했다.

하지만 충북도의 부인과는 달리 '대통령 기념관 구상'은 상당히 구체적인 검토를 거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a 김영삼 대통령이 휴가 중 휴대한 책이 전시되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휴가 중 휴대한 책이 전시되어 있다. ⓒ 심규상

청남대 인수팀이 발족되기 전인 지난 3월 26일 (사)대청호살리기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청남대 활용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충북도 우건도 관광과장(전 청남대 인수팀 팀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대통령 기념공원화'를 주 활용방안으로 제시했다. 우 과장은 구체적으로 역대 대통령 동상 건립과 기념물 전시, 역대 대통령이 즐겨하던 음식 개발보급(청와대, 궁중음식), 왕실마차 운행 등을 예시했다.

충북도가 일찌감치 '대통령 기념관' 개념의 관광명소로 육성키로 가닥을 잡고 있었던 셈이다. 우 과장은 또 발전잠재력을 분석하면서도 '대통령 전용별장'을 강점으로 구분하면서도 '금강수계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을 약점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충북대 사회학과 허석렬 교수는 이날 "청남대를 만든 전두환 대통령은 민주화를 가장 심하게 탄압한 인물"이라며 "대통령 기념관이 아닌 민주화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남대 반환 일정별 추진상황]

2003

4. 3 / 청남대 인수팀발족(팀장: 충북도 관광과장)
4. 18 / 청남대 개방행사
4. 22 / 청남대 일반인 공개 시작
4. 30 / 경비대 해체 및 철수
5. 2 / 관리사업소 설치 근거조례 공포
5. 3 / 관리사업소 직원인사 발령(17명)
5. 15 / 청남대 인수팀 철수
5. 17 / 관리사업소사무실 완료
6. 4 / 관람인원 3만명 돌파(30,400명)
6. 5 / 역대 대통령 사용 식기 등 정리, 전시
6. 19/ 청원 문의주민, 청남대 대통령 기념관 조성반대 충북도 항의방문
6. 26/ 청주시내 10개 시민단체, 청남대내 대통령기념관 설치반대 성명
6. 30/ 충주 환경운동연합 반대성명
7. 3 / 역대 대통령 기념물 전시 반발, 청남대 1정문 앞 농성
7. 4 / 관리소장, 농성장 방문 '폐쇄조치' 약속
7. 15까지 1단계 58,400명 관람예약
그러나 충북도는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기정 사실화 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도는 지난 6월 초부터 각 충북지역 언론에 "대통령 기념관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기 시작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한 식기 기념물 전시에 나선 때도 이 즈음이다.

이후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 청주시내 10개 시민단체와 충주 환경련 등의 반대 성명을 쏟아냈지만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반대 성명이 농성으로 이어졌지만 충북도는 "아직 기념관 건립 계획은 없다"면서도 "기념관 조성은 법적 하자가 없고 역대 대통령 기념물 전시실을 마련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를 보여 왔다.

도는 농성 이후 곳곳으로 반대 여론이 확산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서야 뒤늦게 "폐쇄조치"로 방침을 급선회 했다.

역사교육, 자연생태 가치 입각해야...

신성국 신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청남대 조성으로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는데 이곳에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조성하려는 것은 주민들의 아픔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박정희 기념관 건립 등의 나쁜 선례를 답습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전시실을 마련한 이원종 도지사의 사과가 있기 전엔 농성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a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식기가 도자기업체의 지원을 받아 전시돼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식기가 도자기업체의 지원을 받아 전시돼 있다. ⓒ 심규상

청주지역 시민단체들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적 상징물로써 갖는 역사 교육의 측면과 인접 대청댐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자연 생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결론을 내든 투명한 공론의 장에서 지역 여론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충북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전시관 철회 국민운동대책위'를 구성하고 오는 7일 오후 1시 농성장 앞에서 기념관 개관 저지 집회와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 화형식 등을 벌이기로 하는 등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남대가 전두환이 사용한 밥그릇 전시관이라니..."
[인터뷰] 항의시위 나선 정진동 목사

▲ 정진동 목사
- 청남대를 역대 대통령 전시관으로 활용하는 것에 왜 반대하나?
"청남대는 문의주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돼 왔다. 1년에 고작 몇 일을 사용하기 위해 수 천여 주민들의 생존권을 철저히 무시하고 침해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은 청남대를 만들고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가장 주민 생존권을 심하게 침해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원종 충북지사가 청남대 안에 전두환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의 전시관을 조성하는 것은 주민 정서를 무시하고 충북도민에게 모욕감을 주는 처사다. 나아가 학살자인 전두환씨를 비롯 민족파탄의 주범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속에서 전시관 조성은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을 부를 것이다."

- 청남대가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나?
"노 대통령이 청남대 반환식에서 '국민의 원성으로 출발했지만 민권회복의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언급처럼 온 국민의 올바른 역사와 민족혼을 배울 수 있는 국민관광명소로 계획되고 조성되어야 한다. 현재 이 지사의 청남대 명소화사업은 문화적,역사적,관광적 가치와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 조금 아까 관리소장의 전시관 폐쇄 약속이 있지 않았나?
"그동안 충북도는 기념관 조성은 법적 하자가 없고 역대 대통령 기념물 전시실을 마련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를 보여왔다. 즉 전시관 조성은 기념관 조성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인 셈이다. 따라서 청남대 개방의 목적과 원칙을 무시하고 피행적인 일처리를 해온 이원종 지사의 공식 사과와 약속이 있어야만 한다."

- 농성을 계속 하겠다는 얘긴가?
"그렇다. 도지사가 사죄하고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도민의 의사와 반하는 결정을 내렸는지 밝힐 때까지 농성을 풀지 않겠다. 뜻을 같이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충북도지사에게 전 재산이 29만7천원뿐인 전두환씨를 위해 '밥그릇 전시관'까지 만드느라 수고 많다고 격려(?) 전화를 해 줬으면 한다." / 심규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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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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