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태안문학> 10집 제작과 두 번의 큰 행사를 치르고

등록 2003.07.07 09:03수정 2003.07.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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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또 한바탕 큰 ‘격전’을 치렀다. 해마다 최소한 두 번은 치르는 일이지만, 이번은 규모가 더욱 컸다. 병행 실시한 일, 후속으로 치른 일도 있어서 격전의 기간도 길었다. 격전을 성공적으로 잘 끝내기는 했지만 아직 뒷정리를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장에서 ‘문학회’를 운영한다. 이름하여 <태안문학회>다. 1998년 6월 29일 창립모임을 갖고 그 해 가을 <태안문학> 창간호를 발간했다. 총 404쪽으로 2000부를 찍었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상·하반기호로 나누어 일년에 두 번씩 <태안문학>을 발간했다. 매번 300쪽 이상으로 1500부씩 찍었다.

고장에서 문학회를 운영하고 문학지를 만든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동참자를 찾고 모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회원들의 작품을 모으는 일, 그 작품들을 일일이 읽고 때로는 지은이와 상의를 해서 고쳐 쓰게 하거나 손을 보는 일, 종합 편집을 하는 일 등은 그야말로 긴장과 고투의 연속이다.

디스켓에 담겨진 원고들을 출판사에 넘기고 나면 즉시 돈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책을 만든다는 것은 돈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300쪽이 넘는 책을 1500부 찍으려면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 고정적인 지원은 일년에 한 번씩 받는 ‘충청남도 문예진흥기금’ 지원금 150만원이 전부다. 20여 명 회원들이 내는 월 1만원의 회비는 모임 비용과 통신비 등 운영비로 쓰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 그러니 책을 만들려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 동안 700명이 넘는 후원회원을 확보했다. 책을 받고 1,2만원씩의 후원회비를 보내주는 분들이다. 절반 정도는 지역에서, 절반 정도는 외지에서 사시는 분들이다. 외지 분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출향인들이고, 절반 정도는 우리 고장과 전혀 관계없는 분들이다.

후원회원들 중에는 책이 나올 때마다 매번 후원회비를 보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개는 거르기도 하고, 어쩌다 한참만에 보내 주기도 하고, 단 한번 보내 주고는 길래 종무소식인 분들도 있다. 700여 명 정도에도 몇 년 사이에 주소를 옮긴 분들이 무척 많고, 타계하신 분들도 있다.


후원회원님들이 보내 주신 후원금은 알뜰히 모아서 현재 적립금이 3천만 원 가까이 된다. 후원회비는 한푼도 쓰지 않고 ‘기금’을 만든다고 공언을 했으면서도 사정이 워낙 어려워 1백수십만원씩 두 번 잘라먹었는데, 그러하지 않았다면 적립금은 3천만 원이 훨씬 넘을 것이다.

아무튼 기금 확보를 위해 후원회비는 최대한 적립을 하고, 별도 방법에 의한 비용 마련으로 책을 만들려니 여간 고생이 아니다. 또 책을 만들면 배포를 해야 하는데, 그 배포 작업도 보통 일이 아니다. 대개 1천여 권을 우편으로 보내는데, 우편 발송을 위한 봉투작업도 가히 격전이다. 대여섯 명이 붙어서 저녁부터 밤 12시까지는 꼬박 작업을 해야 한다.


봉투에 담긴 책들을 우선 내 승합차에 가득 실어놓았다가 다음날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데, 1천여 권의 책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체국의 우편물 운반 수레에 옮겨싣다보면 참 거창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곤 한다. 그리고 수십만 원의 비용을 들여 우체국에 맡기는 일까지 마쳐야 또 한차례 격전을 끝냈다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돌리게 된다.

올해 상반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격전의 양상이 더욱 컸다. 올해는 태안문학회 창립 5돌이 되는 해이고, 창립 5돌을 맞는 때에 태안문학 제10집을 발간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5라는 숫자와 10이라는 숫자를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5라는 숫자는 연륜의 첫 '마디'에 해당한다. 그리고 10이라는 숫자는 연륜 세계의 첫 '둔덕'에 해당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기념하고자 했다. 책을 더욱 격조 있게 만들기 위해 수준 높은 외부 원고들도 모으고, 무척 심혈을 기울였다. 칼라면 15페이지를 포함하여 400쪽으로 만들었다. 지방문학지가 400쪽에 달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책의 등에다가 '창립 5돌, 제10집 발간, 기념 특대호'라는 말을 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일찍부터 금년 6월 29일에 <한국문인협회 태안군지부> 창립총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태안문학회 창립 이후 11명의 회원들이 속속 등단 절차를 밟고, 그 중에서 여러 명이 한국문협(중앙문협)에 가입하여 자격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문협 지부의 간판을 걸고 있는 것이 운영상의 이런저런 유리함을 확보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문협 지부의 창립총회를 태안문학회 5돌 창립일인 6월 29일에 맞춘 것은, 문협 지부 탄생(한국문협 이사회의 인준)과 함께 태안문학회는 자동 해체되고 문협 지부의 '전신'이 될 것이기에 '겹생일'을 의도한 까닭이다.

태안문학 제10집이 만들어진 때에 우리는 또 하나의 경사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회원 김영곤 시인의 제2시집 <새들만 새노래>가 출간된 일이다. 문인이 자기 작품집을 갖는 것처럼 뜻 있고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고 또 어떤 경제적 결실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문학공동체 구성원의 작품집 출간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6월 29일 저녁 고장의 문예회관에서 태안문학회 창립 5돌, 한국문인협회 태안군지부 창립총회, 태안문학 제10집 발간, 회원 김영곤 시인의 제2시집 <새들만 새노래> 출간, 이 네 가지 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큰 행사를 가졌다. 비록 비용도 많이 들고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행사는 반드시 필요하고도 온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대외적인 행사가 좋은 글을 쓰고 알찬 책을 만드는 일 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인들의 대외적인 '행동'은 지역사회에 문예의 기운이나 기풍을 역동적이고 구체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지역사회에서의 문인단체의 위상 확인 작업은 우리 자신에게 문학의 가치와 문인의 사명감 같은 것을 더욱 뜨겁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행사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태안문예회관의 163석 소강당을 거의 메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고, 문석호 국회의원과 출장중인 진태구 군수를 대신하여 김기배 부군수, 조한무 군의회의장과 정우영 문화원장이 축사를 해주셨고, 이익창 교육창과 김순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충남회장이 축시를 낭송해 주셨다. 이웃 동네인 서산의 조규선 시장과 김현구 문화원장도 오셔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 크다.

나는 이 자리에서 최근에 등단한 손명환 문영식 두 회원에게 '등단기념패'를, 제2시집을 출간한 김영곤 시인에게 '발간기념패'를 수여했다. '문인양산'이라는 말과 '출판물홍수시대'라는 말이 회자되는 시절이긴 하지만, 그들이 그런 말이나 현상에 구애받지 말고 더욱 뜨겁게 문학을 사랑하며, 오로지 좋은 작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힘껏 정진 노력해 줄 것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당부했다.

행사를 마친 다음날에는 숨 돌릴 사이 없이 책 우편 발송을 위한 봉투 작업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책을 모두 부치고 나서는 곧바로 다음 행사 준비에 몰두했다.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후원하는 '제13회 중·소도시 순회 문학강연'이 우리 태안문학회 주관으로 7월 3일 저녁 같은 장소인 태안문예회관 소강당에서 열리게 된 까닭이었다.

이날의 행사에는 40여 명의 고장 문인들과 문학애호인들이 참석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한국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이기윤 작가가 '한국문학의 미래와 발전 방향'이라는 연제로, 내가 '지역문학의 미래와 발전 방향'이라는 연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 다음에는 질의와 응답이 있었고, 사이사이에 시낭송과 음악이 곁들여졌다.

강사 이기윤 작가는 우리 지역 행사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청중 규모 면에서는 중간쯤 되지만 분위기 면에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 모든 행사들이 끝나고, 나는 이제 이상한 쓸쓸함을 삼키며 하나하나 뒷정리를 해야 하는 국면이다. 참으로 정신 없이 분주하게 산 시간들이었다. 책을 한번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동분서주하고 또 그 책을 배포하다보면 반년이 뚝 부러지고, 또 한번 그 공사를 치르다보면 어느새 일년이 다 지나가 버리는 허망함 같은 것을 매년 느껴온 처지이긴 하지만, 이번은 묘한 허탈감이 더 큰 것 같다. 그만큼 공사 규모가 크고 진을 더 많이 뺐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만들고(돈을 만들고),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고, 책 배포작업을 하고, 그리고 뒷정리를 할 때마다 늘 감내하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내가 꼭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내가 하는 이런 일들에 도대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직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희생과 헌신의 확실한 양태인 나의 힘든 노고 속에서 마냥 계속되는 의문들이다.

고향에 몸을 놓고, 고장 정신문화의 토양을 가꾸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향토문학에 헌신해 온 세월도 20년이 넘었다. 시간 쓰고 돈 쓰고 노고한 그 세월 동안 내가 오로지 내 글만 쓰고 내 개인 작품활동에만 주력하며 살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하곤 한다.

곁가지 일들이 너무 많아 소설 작업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는 내 처지에 대한 비애도 적지 않다. 곁가지 일들이 무성한 가운데서도 다른 글들은 그럭저럭 쓸 수 있지만 소설은 아예 착수조차 할 수 없는 내 한계를 늘 반추하곤 한다. 소설 작업에 반드시 필요한 진공상태와도 같은 고도의 긴장감, 때로는 몸서리가 나기도 하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집필을 마쳤을 때의 기분 좋은 탈진과 허탈감은 생각하면 눈물이 나도록 그립다.

그 그리움 때문에 어서 하루빨리 짐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홀가분하게 짐을 벗고, 정 안 되면 고향을 탈출이라도 해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어언 오십대 중반인 내 나이를 생각하고, 내 몸이 정상이 아닌 병든 몸이라는 생각을 하면 초조감과 위기의식이 나를 채근하는데, 그것이 정작은 내게 절망감을 안겨 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때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짐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오래 전부터 노력해 왔으니, 내게 변화의 계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태안문학회를 해체하고 한국문인협회 태안군지부를 창립하면서 지부장을 맡아 짐이 좀더 무거워진 형국이지만, 그렇게 고장 문학단체의 규모를 키운 것은 미구에 내 짐을 좀더 쉽게 벗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가 고장에서 향토문학을 위해 해온 일들을 스스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흙 속에 묻혀 있는 많은 문재들을 발굴하여 격려와 지도를 병행하며 향토문학지에 좋은 글들을 쓰게 하고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게 한 일, 문인 양산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을망정 여러 사람에게 등단 절차를 밟게 하여 떳떳하게 문인 명색을 지니게 한 일, 문인의 덕목과 사명감과 작가정신을 모든 동료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애쓴 일들은 내 고생과 희생을 능히 상쇄해 주는 일일 것으로 믿는다.

내가 태안문학회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후원회원들을 모집하고 현재 3천만원 가까이 기금을 모으고 있는 것은, 오로지 기금 조성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은 책의 '가독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가독율을 높이기 위해 후원회비를 받는다면 그만큼 책의 수준이나 가치 쪽으로도 신경을 기울여야 할 터였다.

이번 10집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회원들의 작품 수준에 신경을 쓰는 한편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격조를 높이기 위해 외부 원고도 많이 구했다. 그러다 보니 원고가 넘쳐서 아까운 회원들의 작품과 외부 원고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내 글은 머릿글만을 제외하고 모두 빼야 했다. 그래서 이번 10집에 내 작품은 없다.

지역문학, 향토문학에 헌신하면서 늘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전파매체의 포로가 되어 있고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인터넷에 열중하고 있는 이 시대에 종이 책이 꼭 필요한 것일까? 수많은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숱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서점 진열대에 꽉 차 있는 상황에서 지역에서의 우리들의 이 문학 행위는 대체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사실 쉽지 않다. 어쩌면 해답이란 애초부터 없거나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해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그것과 관련하는 명확한 생각이 있다. 책으로 나타나는 지역문학의 실체가 우리 지역사회에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리라는 것, 우리 고장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향토문학의 실체는 우리의 존재 근거를 계속 폭넓게 유지시켜 주리라는 것, 후원회원들이 책을 읽고 밑진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다시 선뜻 후원회비를 보내줄 수 있게 하는 양질의 작품성을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변함 없이, 아니, 더욱 뜨겁게 발화하는 문학에 대한 애정과 향토문학에 대한 사명감이라는 것…. 또 하나, 우리는 한국 문단의, 더 나아가 한국 정신문화의 변방을 지키는 봉홧불이어야 한다는 것….

나는 정녕코 우리 지역문학 집단이 변방을 지키는 문화의 봉홧불이기를 소망한다. 구성원 모두가 봉홧불이 되어 뜨겁게 타오르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전력투구하는 희생과 헌신의 폭을 줄이고, 마침내는 무거운 짐을 벗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드디어 <태안문학> 제10집을 만들고 두 번의 큰 행사를 치르고 하면서 나는 좀도 가슴 절절한 느낌으로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한 가슴 깊은 소망을 끌어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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