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 '망언'과 보수언론 '받아쓰기'

[언론비평] 노조를 때려 잡아야 자본주의인가?

등록 2003.07.09 15:18수정 2003.07.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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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이 외신, 더 정확히는 미국 언론에 보이는 관심은 종교적 숭배에 가깝다. 한국 사회가 처한 당면 문제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언론이 미국 언론이라면 지역신문 가십란까지 뒤지는 열성과 저력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2003. 7. 8일자 <조선일보>의 사설
2003. 7. 8일자 <조선일보>의 사설조선일보
국외소식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 사회 속에 일어나는 일까지도 외신기사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한국 언론이다. 자신의 모습조차 '주인'의 눈을 통해 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언론의 노예근성은 70, 80년대 "외국인들 '원더풀' 연발" 식의 인식수준에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하다.

미국의 주간지인 <뉴스위크>가 7월 14일자 국제판에 "한국은 사회주의적인가?(Is South Korea Socialist?)"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이 잡지는 자신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표제로 답하고 있다.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이 노조를 강경진압하기 전에는 그렇게 보였다.(It looked that way, until Roh cracked down on the unions)"

50년대 매카시즘 시대의 <뉴스위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수준 이하의 기사에 대해서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은 대서특필로 화답했다. <동아>는 추가로 '분석기사'를 실었고, <조선>은 아예 "한국형 사회주의의 우울한 내일"이라는 사설까지 냈다.

문제의 <뉴스위크> 기사는 파업 당사자들의 목소리 하나 없이 "노조때문에 못살겠다"는 사용자들의 입장만을 늘어놓은 후, "사회주의"라는 국민들의 비판(우리가 그랬던가?)에 움찔한 대통령이 드디어 강경진압정책으로 선회했다고 주장한다.

이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56세의 대통령이 나이에 걸맞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Perhaps, at 56, he’s finally beginning to sound his age.)"

한국의 보수일간지들이야 자신들이 하고 싶던 이야기를 '외신'의 권위를 빌어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보다 신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 외신이 한국 사람에 의해 서울에서 쓰여진 경우라 하더라도 말이다.


문제가 된 <뉴스위크>의 국제판 기사
문제가 된 <뉴스위크>의 국제판 기사Newsweek
<뉴스위크> 특파원 자격으로 이 기사를 쓴 이병종 기자는 "B.J. Lee"라는 이름으로 <뉴스위크> 국제판과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등의 저널에 한국발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타국의 문화와 정치현실에 어두운 외국언론에게 현지인 특파원은 아주 소중한 존재다. 외신이라면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외국언론은 한국 현지 상황에 대해서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보도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을 내보내는 실수를 하거나, <뉴스위크>가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정장차림을 한 여대생들을 보고 일상적으로 사치를 일삼는 "돈의 노예"라고 불렀다가 망신을 당한 일들이 현지상황에 대한 '무지'를 입증한다.

그 때문에 외국언론은 특정 지역의 상황을 잘 아는 현지 특파원들을 고용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지 특파원들의 기사에 대한 데스크의 검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때문에 흔히 특파원의 기사는 특별한 여과과정 없이 언론사의 이름으로 보도되고, 이것은 '외신'의 카리스마를 업고 다시 현지로 역수입된다.

극소수가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특파원의 특성상, 기자의 편향적 시각에 의한 왜곡보도의 가능성도 엄존한다. 이것은 '바깥 소식을 안으로 전하는' 해외특파원들보다 '안 소식을 바깥으로 전하는' 국내특파원들의 경우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시각이 한국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형성하고 그들의 정책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병종 특파원은 한국의 경제, 정치, 문화 등 폭 넓은 분야의 글들을 쓰며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기사에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그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인 대미, 대북, 언론, 경제개혁 문제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보여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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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월 20일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에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쿼터제를 지켜 한국 영화시장을 보호하겠다고 말한데 대해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실 한국은 국산 영화가 전체 시장의 40퍼센트를 상회하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영화감독과 배우들은 물론 영화 투자자들과 제작자들도 최근에 큰 돈을 벌었다.

그처럼 번성하는 산업에까지 지속적인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경제침체가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정부는 영화산업보다 훨씬 열악한 산업부문에 눈을 돌려야 한다."
– 이병종, "영화전쟁," < South China Morning Post > 2003, 6. 20.

"Indeed, South Korea is one of the few countries where domestic productions take up more than 40 per cent of the movie market. Many film investors and filmmakers, as well as directors and actors, have become rich and famous in recent years.

Asking for continued protection for such a prosperous industry seems unreasonable. As the economy slow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hould direct its attention to other industries that are in much worse shape."
- B.J. Lee, "Film Fight," < South China Morning Post > June 20, 2003.


문화산업을 단순히 ‘산업부문’의 하나로만 인식하는 이병종 기자의 편협한 시각은 언론개혁과 대미인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민을 오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언론은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보면, 문제는 언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끄는 행정부에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언론의 말을 들을 때지, 불평할 때가 아니다."
–이병종, "힘든 출발," < South China Morning Post > 2003, 6. 6.

"The media may distort facts or mislead the public in other ways but, for the most part, the press represents what the majority of people think. Mr. Roh's low approval rating points to problems in his administration, not in the media. For Mr Roh, this is a time to listen, not complain."
- B.J. Lee, "Rough Launch," < South China Morning Post > June 6, 2003.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대미인식은 미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임에 틀림 없다. 미국은 수십년 동안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남한의 안보를 지켜왔다. 한국전쟁에서 3만7000명의 미군이 남한의 자유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종전 이후 미국은 남한은 전후복구를 위해 엄청난 양의 원조를 제공했다. 미국의 이런 군사적, 경제적 지원 속에서 남한은 잿더미로부터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동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찬 민주국가를 이룩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배은망덕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 틀림 없기에, 미국 내에서 반한감정이 일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병종, "오만과 편견," < South China Morning Post > 2003, 6. 13.

"All these negative feelings must shock Americans. The US has been defending South Korea against the security threat from the North for decades. During the Korean war, 37,000 US soldiers died to protect the South's freedom. After the war, the US provided hugh amount of aid to revive the war-torn economy.

Through such military and economic support, South Korea rose from the ashes to become the world's 12th largest economy, while building one of the most vibrant democracies in Asia.

It is not surprising that anti-Korean feelings are rising in the US, as many Americans must believe that South Koreans no longer feel grateful."
- B.J. Lee, "Pride and Prejudice," < South China Morning Post > June 13, 2003.


이런 외신기사가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걱정이지만, 이런 기사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언론의 모습은 더욱 한심하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자신의 시각을 타자화하는 식민지시대적 열등감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은 30년대를 휩쓴 경제공황 속에서도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언론도 한때는 그를 지지했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이 언론사 직원들의 노조결성권과 고용보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마련하려 하자, 언론사 간부들은 한 목소리로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입이 험학한 언론사 간부들은 다리가 불편한 대통령을 "병신(cripple)"이라고 조롱하기도 했고, <뉴스위크>와 동일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당신은 사회주의자요?"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와 같이 대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자 친구들은 있소. 당신들은 사회주의의 이상이 복지정책을 통해 미국사회를 풍요롭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가 이 대답에 만족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루즈벨트는 현재까지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를 비난하던 험악한 입들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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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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