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의 즐거움과 묘미(2)

아빠, 호박이 숨바꼭질을 했네.

등록 2003.07.11 08:02수정 2003.07.1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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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지리하게 내리더니만 오늘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눅눅해 졌던 이불을 빨랫줄에 걸고 거실에 널어놓았던 옷들도 겁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빨래들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막내와 텃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름을 알려줍니다.

a 옥수수

옥수수 ⓒ 김민수


옥수수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용휘야, 이게 옥수수야. 지난번에 아빠하고 씨앗을 심었는데 이만큼 자랐네."
"아빠, 옥수수는 뭐 먹고 커?"
"응, 물하고 햇볕하고 바람하고 별하고 달하고 하고하고…."
"별로 맛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보다 많이 컷네 한 살도 안된게."
"용휘도 엄마아빠가 차려주는 것 잘 먹으면 금방 클꺼야."
"근데 아빠, 애는 염색했어?"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옥수수수염이라고 해야 하나요? 붉게 올라온 것을 보고 이런저런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막내는 나와 통하는 것이 많습니다.

a 호박

호박 ⓒ 김민수


호박꽃과 덩굴은 지천으로 널렸고, 새벽마다 붓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수정도 해 주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호박을 하나도 따먹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전에 아내에게 호박을 따먹지 못할 것 같으니 호박잎이나 따먹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연한 순을 잘라서 삶아 된장에 찍어 쌈을 싸먹는 맛도 좋습니다. 그렇게 호박을 따기를 기대하면서도 조금 실망을 했었죠. 그런데 호박덩굴을 이리저리 살피던 막내가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아빠, 이게 호박아니?(아니야?)"
"어디?"


세상에 그렇게도 언제 열리나 고대하던 호박이 언제 열려서 저만해 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 그 동안 저게 왜 그리 안보였을까?"
"아빠는 그것도 모르멘?(몰라?), 숨바꼭질 한거.(한거야)"


어떻게 할까 망설여집니다.
늙혀서 범벅을 해먹을까 지금이라도 따서 무쳐 먹을까하다가 첫 열매를 따줘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무쳐먹기로 했습니다.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커도 그렇게 억세지 않아서 우리 식구들의 몸에 잘 모셨답니다.

a 버섯

버섯 ⓒ 김민수


작은 텃밭을 돌아보고 하도철새도래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둑길에 버섯이 하나 둘 보입니다. 어린 시절 비가 오고 나면 산야로 버섯을 하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당시 땃던 버섯의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소고기보다 맛있다는 꾀꼬리버섯, 싸리나무 아래서 자란다는 싸리버섯, 그리고 손바닥보다도 더 컸던 청버섯 등등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독버섯과 식용버섯을 잘도 구분을 했었습니다.

어린 시절 산야에서 땃던 그 버섯이었습니다. 얼마나 될까해서 눈요기나 하며 지나쳤는데 계속 보입니다.

"용휘야, 버섯따자. 이거 우리 저녁에 반찬 해 먹자."
"아빠, 이런데서 자란것도 먹는거?(먹는거야?)"
"그럼, 가게에서 산 것보다 훨씬 좋은 거야."

시골로 이사 온지 일년 6개월, 막내는 사투리를 가장 많이 씁니다.
제주의 독특한 억양,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막내의 사투리는 촌놈이 되었는데 아직 먹는 것에 있어서는 서울촌놈입니다.

a 알락하늘소

알락하늘소 ⓒ 김민수


버섯을 따서 돌아오는 길, 하늘소가 나뭇가지에 앉아 한가로이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손으로 건드니 나뭇가지를 툭 놓아버리고 수풀 속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도망가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자기가 잡고 있던 것을 놓음으로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이 모든 것들이 시골생활이 주는 즐거움과 묘미랍니다. 물론 그 안에 들어 있는 아픔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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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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