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 생각하면서 농사짓는다"

어머님의 옥상텃밭(1)

등록 2003.07.16 15:37수정 2003.07.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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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벽이면 어머님과 아버님은 옥상에 올라가 옥상을 가꾸신다.
옥상에 있는 종류를 다 열거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가꾸시다 보니 옥상을 구경한 분들은 저렇게 많이 심어도 옥상이 무너지지 않느냐고 염려하실 정도다.


a 토란

토란 ⓒ 김민수

거반 8개월만에 찾은 서울,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제일 먼저 올라간 곳은 옥상이었다. 역시, 우리 어머님이셨다.

옥상에는 갖가지 꽃들과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포도나무까지 심겨져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포도나무 뿐만 아니라 귤나무까지 주렁주렁 열매가 맺혀있다는 사실이었고, 옥상에 심긴 토란이 나의 작은 텃밭에 자라고 있는 것들보다도 더 실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비결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에 있을 것이다. 흙조차 밟기 힘든 도시에서 흙을 그리워하며, 녹색을 그리워하며 그 소중함을 늘 간직하시고자 하시는 그 마음에 옥상에 심기운 모든 것들이 감동했기 때문이리라.

a 참나리

참나리 ⓒ 김민수

한창 피어있는 참나리는 너무도 무성해서 기둥을 세우고 묶어주었다. 옥상에 이렇게 큰 텃밭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사연들이 있는데 아버님이 동네를 다니시며 화단을 만들만한 재료들을 다 모아오셨다. 장롱문짝에 이르기까지 아버님의 눈에는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아까우셨던 것이다.

이런 저런 것들을 모아 옥상시멘트 바닥에 닿지 않도록 화단을 만드셨고 산책을 다녀오실 때나 시골에 다녀오실 때마다 흙을 조금씩 얻어와서는 옥상에 올리셨고, 한 번은 흙을 한 트럭 사다가 주워오신 자전거 바퀴로 도르레를 만들어 옥상에 흙을 올리셨다.


지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동네에 있는 한약방마다 부탁을 해서 한약찌꺼기를 모아 말려서는 화단에 넣어주는 등등 화단을 가꾸기 위한 노력은 엄청났다.

a 포도-아래에는 평상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여름에 피서지로 그만입니다.

포도-아래에는 평상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여름에 피서지로 그만입니다. ⓒ 김민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옥상텃밭, 그리고 가지런히 놓여진 화분에서는 갖가지 채소들과 꽃들이 자라기에 이르렀고 몇 년 전에는 모 신문사에서 취재를 해가기도 했다. 그러니 더욱 신나신 부모님들은 더욱 정성을 기울이셨고, 장담컨데 도심에서 그만한 옥상을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아름다운 옥상텃밭을 만드셨던 것이다.


신기했다. 어떻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옥상화분에 담긴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릴 수 있는지. 어머님은 올 가을에 아이들 서울로 보내서 옥상에서 심은 포도맛을 보여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a 대파

대파 ⓒ 김민수

어머님이 보내주신 파가 아직도 나의 텃밭에서는 자잘한데 보내주시고 남은 것을 심은 옥상텃밭의 파는 너무 커서 이웃들과 나누고 나눠도 너무 잘 자라서 고민을 하실 정도로 무성하게 자랐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는 아들을 보며 한 마디 하신다.

"얘, 거기는 농사짓기가 어떠냐? 우리 보다 잘 졌냐?"
"어디서 농사져도 어머님만큼 아버님만큼 하겠어요? 어림도 없지요."
"너희들 시골 내려간 다음에 더 열심히 농사를 졌단다. 왜 그런지 아니? 이 화단 만들 때 너도 어지간히 도와 주었잖니.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싫다는 소리 하나도 안하고. 너희들 손때가 묻어있는 것이니 나한테는 더 소중해서 느그들 생각하면서 농사짓는다."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신다.
"어머니, 실패해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내려갔어요. 그리고 지금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요."

a 고추-고추좀 따 달라고 했더니 가는 길 짐될까봐 벌써 택배로 부치셨답니다.

고추-고추좀 따 달라고 했더니 가는 길 짐될까봐 벌써 택배로 부치셨답니다. ⓒ 김민수

그랬다. 서울에 있을 때 낚시를 가서 잡아온 붕어며, 어항을 놓아 잡은 중고기, 냇가에서 잡은 올갱이 등등을 수족관을 만들어 키우다 놓고 내려왔는데 그것도 아들이 잡은 것이라고 얼마나 소중하게 키우셨는지 고작 2Cm정도에 불과하던 중고기가 10Cm는 족히 될 만큼 자랐다.

어머님은 아들이 낚시해서 잡아온 고기를 보면서도 자식생각을 하셨던 것이고, 자식의 채취가 남아있는 것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셨던 것이다.

바쁜 일정으로 하룻밤만에 돌아와야 했던 짧은 여정, 이제 나는 어머님의 흔적들을 담기 위해 어머님의 옥상을 하나 둘 사진기에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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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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