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과 냉장고는 친구인가?

박철의 <느릿느릿이야기>

등록 2003.07.13 06:47수정 2003.07.1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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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넝쿨이이의 고향이야기. 마터나 문학상위원회. 넝쿨이 이름으로 잘된 작픔을 모아 문집을 만들어 주었다.

넝쿨이이의 고향이야기. 마터나 문학상위원회. 넝쿨이 이름으로 잘된 작픔을 모아 문집을 만들어 주었다. ⓒ 느릿느릿 박철

아내는 과일을 엄청 좋아합니다. 과일은 다 좋아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게 수박입니다. 자기 말로는 처녀 적부터 수박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름에 수박 타령을 곧잘 합니다. 우리 내외가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 할 때는 경제적으로 과일을 사먹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아내는 철이 바뀔 때마다. “야 포도가 잘 익었겠다. 여보 포도가 맛이 들었을까요?” “아, 딸기 생각난다. 서울 가서 엄마보고 딸기 사 달래서 실컷 먹고 올까? 차비가 더 들겠네”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박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아내가 자는 걸 쿡 찌르면서 ‘수박’ 그러면 벌떡 일어날 정도이지요.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 하던 시절, 중고등부 애들을 데리고 여름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산을 넘어 너른 모래사장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것저것 필요한 걸 샀는데 슈퍼마켓 아저씨가 내가 가난한 전도사인줄 알고
“전도사님, 이 수박 좀 오래되어 수박 꼭지가 떨어진 건데 몇 통 드릴게, 갖다 잡숴보실라요. 깨뜨려봐서 못 먹겠으면 버리세요.”

슈퍼 아저씨한테 오래되어 팔 수 없는 큰 수박을 다섯 통을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 놈을 흐르는 개울에 담가 놓았다가, 저녁에 밥 먹고 나서 깨트려 먹었습니다. 꼭지가 떨어졌다 길래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얼마나 잘 익었던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섯 통이 다 잘 익고 맛있었습니다. 그 때 아내가 우리 집 큰아들 아딧줄을 가졌을 때였는데 수박을 열심히 먹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집이 정선에서 화성 남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동네는 수박, 참외 농사를 많이 짓는 동네였습니다. 여름철, 교인들이 수박을 잡숴 보라고 갖고 오니, 아내가 신이 났습니다. 매일 두 세 통은 먹었을 겁니다. 그런데 수박도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어야 시원한데 아내가 시집올 때 갖고 온 냉장고는 크기가 쌀통만한 거여서 수박들을 냉장고에 넣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내가 냉장고를 하나 사자고 졸라댑니다. 그런데 살 돈이 있어야지요.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제약회사에서 문학상 공모가 실린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1등 상금이 백만원이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a 가작 트로피.

가작 트로피. ⓒ 느릿느릿 박철

얼른 넝쿨이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이거다!’ 우리집 넝쿨이는 병원에 가다가 차에서 낳았습니다. 그 얘기를 쓰면 틀림없이 1등할 거다. 아내와 나는 1등 상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이제 아내가 글을 써야 하는데 뜸만 들이고 글을 안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지나다가 보니 마감이 딱 하루가 남았습니다. 또 그 다음날은 우리 식구가 여름휴가를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대신 원고를 썼습니다. 내가 애도 가져본 적 없고 낳아 본 적도 없는데 졸지에 애 엄마가 되어 글을 썼습니다. 후딱 글을 써서 곧바로 우체국에 달려가 부쳤습니다. 그리고 여름휴가를 잘 다녀와서 드디어 큰 냉장고(450리터)를 샀습니다. 아내가 꿍쳐 놓은 돈과 장모님이 얼마를 보태주셔서 샀습니다. 그리고 내심 모제약 회사에서 공모한 주부문학상에서 1등 하면 상금 받아 갚기로 하고….


그로부터 보름 후에 모 제약회사에서 당선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아내가 손을 벌벌 떨며 뜯어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며 “애걔?” 그럽니다. 1등이 아니라 가작이었습니다. 상금은 이십 만원, 그게 어딘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수박 시원하게 먹으려고 냉장고 산 집 있으십니까? 우리집은 넝쿨이 출생하던 해에 산 냉장고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넝쿨이 나이와 똑같고 넝쿨이가 냉장고만큼 키도 자랐습니다. 남양에서 7년 6개월 사는 동안 수박은 참 실컷 먹었는데, 교동 섬에 이사 오고 보니, 수박 구경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아내는 한밤중이라도 저 혼자 수박 한 통을 다 먹습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면서도 수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내가 수박을 너무 좋아한다고 타박하면 “수박 좋아하는 사람치고 인간성 나쁜 사람 못 봤다”고 대꾸합니다. 그럴 것 같으면 수박장사한테 시집갈 것이지 왜 목사한테 시집와서 맨 날 수박타령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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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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