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사가 된 기분 아세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 30] 홍대앞 클럽 DJ 추연준씨

등록 2003.07.19 01:04수정 2003.07.1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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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일탈의 에너지와 생동이 꿈틀대는 홍대 앞 피카소 거리. 음악으로 사람들을 뒤흔들어 놓는 주술사가 있다. 심장을 잡아끄는 DJ 추연준(30)씨의 주술에 걸린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성의 지배를 벗어나 온 몸을 휘감는 음악에 자유로이 몸을 맡기는 사람들. 구석구석 숨어있는 온 몸의 감성 촉수들이 해방을 만끽하고, 음악과 하나 된 짜릿함을 통해 무아지경이 되버리는 순간에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잠들어 있던 심장마저 깨어나 팔딱거리고, 가파른 호흡이 멎지 않는 순간이면 '생' 의 환희 마저 느낀다. 추씨의 손길을 따라 웃고, 울며, 춤추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내던져 깊은 카타르시스 속으로 빠져든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디기 위한 일탈의 에너지를 충전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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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좋은 영화를 보면 혼자 알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 공감대를 만들고 싶잖아요. 제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어 사람들이 같이 호응하며 즐거워 할 때 정말 말 할 수 없는 환희와 희열을 느껴요!

제가 들려준 음악에 사람들의 감정이 변하고 춤이 바껴요. 주술사가 되어 사람의 마음과 몸을 제 마음과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거죠! 신나지 않나요?"

자신의 일에 99.9% 만족한다는 추씨의 눈속엔 일에 대한 애정과 설렘이 교차한다. 자동차 딜러일을 하다 5년째 DJ를 하고 있는 그는 "딜러 일을 할 때 보다 감히 비교가 안 될 만큼 현재가 행복하다" 며 자신의 일에 무한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사람이 많은 금, 토요일엔 새벽 1시부터 아침까지 음악을 틀고 평일엔 1시부터 3시까지 음악을 튼다. 한 달에 한번 쉬고 다른 나라의 여러 DJ들과 클럽을 보기 위해 일 년에 두번 정도는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껴 해를 보지 못함에 간혹 우울해 지기도 한다는 추씨는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피곤함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사람이 많을수록 더 흥이 난다는 그는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즐길 줄 아는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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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홍대 앞은 95년 예술인들의 놀이 공간으로 출발했다. 그 후 소문이 꼬리를 물어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든 놀이공간으로 바꼈다. 주류를 차지하는 대중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홍대로 모여들어 90년 중반에 유입된 테크노 음악과 함께 새로운 클럽 문화를 만들어 갔다.

처음엔 국내 DJ이들이 없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주로 영어강사)이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DJ가 전문적인 직업으로 탈바꿈했다.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테크노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자연스레 클럽들이 생겨나 다양한 놀이 문화와 음악을 선보이는 클럽들이 생겨났다.


추씨는 건강한 클럽 문화를 아직도 선입견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이 안타깝노라 말한다. 현재 홍대에 있는 클럽은 유흥업소로 신고가 돼있지 않기에 법적으로 춤을 출 수가 없다. 춤을 추려면 비싼 세금을 내는 여타 일반 유흥업소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거액의 기본 요금을 받는 일반 유흥업소인 나이트 클럽과 달리 클럽은 만원 내외의 저렴한 비용으로 춤과 술을 즐긴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흥업소와 같은 세금을 내는 게 클럽으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홍대에 있는 많은 클럽들은 춤을 춘다는 이유로 '불법' 딱지를 달고 있는 웃지 못 할 사연을 갖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선 이런 클럽 문화가 자연스런 생활 문화로 자리 잡고 있어요. 오히려 일본에선 클럽문화가 발전해 역으로 서구에 클럽 문화를 수출하고 있어요. 그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는 클럽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6000명에서 1만명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외부의 시선 또한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솔직히 십 년 후를 생각하면 조금 막막해요. 과연 클럽 문화가 얼마나 활성화 될 수 있을지. 전문적인 프로 의식을 가진 DJ들이 얼마나 양성될지도 걱정스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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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추씨가 주로 선보이는 음악은 테크노의 한 장르인 하우스이다.

"80년대 중반 파티 문화에서 파생돼 친구들 집이나 창고를 개조해 놀기 시작하면서 '하우스'라는 말이 생겼어요. 음악은 펑키한 디스코 음에 전자음이 섞인 보컬 중심의 음악 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조용필, 김바다(시나위 보컬), 김수철, 신중현씨를 좋아한다는 추씨는 내년, 테크노 음반을 발매 할 계획도 있다. 이에 실제 음악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소리바다, 벅스뮤직 등의 음악 사이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솔직히 말씀드릴께요. 저도 그렇지만 많은 음악인들이 음반을 만드는데 굉장한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어요. 하지만 음반 시장의 불황과 음악 사이트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음반 시장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어요. 아마도 방송이 먼저 변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말초적이어서 중요한 알맹이가 다 빠져 버린 느낌이에요. 가수들이 노래를 잘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른 개인기로 사람들을 웃겨 관심을 끌려하고 참 안타깝죠. 방송이 먼저 변하고 또 거기에 맞는 시스템들이 같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클럽엔 다양한 나이, 직업, 국적 등을 가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가진 이들이지만 단 하나 공통점이 있다.

"수동적으로 그저 남들 따라 노는 것에 염증을 느껴 뭔가 신선한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와요. 일반적인 관례라든가 일상의 구태의연함을 깨트리고 자유롭게 다양성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물론 나이트 같은 곳도 필요해요. 하지만 모두가 나이트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나이트가 있는 것만큼 클럽 문화 또한 인정해 주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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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DJ연준' 은 홍대 클럽을 대표하는 대명사 가운데 하나이다. 홍대 앞거리를 활보 할 때면 팬들에게 인사와 사인 공세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그 어느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와 명예를 누리는 추씨는 '겉으론 DJ가 그저 화려하고 쉽게 보여도 실상은 다른 일 못지 않게 고되고 외로운 일' 이라 말한다.

"화려하고 재미있고 쉬워 보인다는 생각에 젊은 친구들이 그냥 덤벼들었다가 쉽게 포기해 버려요. 목숨을 걸고 할만큼 열정이 필요해요. 처음엔 저도 클럽 티켓 창구에서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무조건 많이 배우고 들어야 되요.

저도 2년 동안 피똥을 쌀만큼 남들보다 배로 연습하고 잠 안자고 먹을 거 못 먹고 무시당하고 그랬어요. 그런 각오가 없으면 정말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폼 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찌되었건 남 앞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라 적절한 쇼맨십도 중요하지요."

추씨는 남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일의 특성상 일이 끝난 후 홀로 있을 땐 너무 공허하고 외로워 한동안 적잖은 방황을 했노라 털어놓았다. 현재 그는 무대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복싱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 라는 삶의 좌우명을 따라 언제나 자만하지 않고 한결 같은 DJ가 되고 싶다는 추씨는 언젠가 광화문 광장에도 클럽 문화를 꽃 피우게 만들고 싶다고 한다.

"우선은 빨리 불법이라는 법 체계부터 달라졌으면 해요. 법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갑자기 클럽 문화 붐이 독립적으로 일지는 않을거에요. 모든 건 다 같이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경제가 힘들고 사회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놀이 문화가 혼자 발전 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경제도 발전하고 사회 전반적인 문화 의식이 더 다양해지고 발전 할 수 있을 때 클럽 문화도 같이 꽃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광화문 광장에서 당당히 클럽 축제를 할 날이 오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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