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책 베개 삼아 우리는 지금 취침중

[즐거운 고딩일기] 곤히 잠든 친구, 고3의 또 다른 얼굴

등록 2003.07.21 02:53수정 2003.07.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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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수업시간, 선생님은 문득 엎드려 자고 있는 친구들을 보시고는 한 말씀 하신다.

"얘들이 어째 엎드려 자는 분위기냐? 단체로 밤 새워서 공부라도 하는 모양이로구나. 너희들 담임선생님은 좋겠다, 좋은 대학교 갈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네. 여하튼 이때쯤이 되면 애들이 왜 이렇게 불쌍하게 보이냐. 너희 선배 형들도 그랬고. 그래도 어쩌냐,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젊은 것들이 이러면 안 되지. 야, 거기 자는 애들 좀 깨워."

서강훈
요즘 들어 어느 시간이건 잠을 청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께서는 나름대로 한마디씩 하시며,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신다.

"너희들은, 학비에 돈 더 내고 다녀야 돼. 무슨 돈인지 알아? 여관비. 여기가 OO(학교이름)여관이 아니냐? 어서 여관비 더 내라."

우스갯소리로 하시는 말씀에 뼈가 있었다. 선생님들의 부담스럽지만 사랑이 섞인 질책. 그것이 때에 따라서는 가벼운 물리적 제재일 수도 있고, 기상천외한 물총발사가 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닌 경우에는 제일 효과만점의 감정 섞인 말 한마디.


"너희 요즘 정신이 해이해졌어. 학기초에는 그래도 무언가 해내겠다는 듯이 그러더니, 너희들 정말 많이 변했다. 실망이다."

중요한 시기에 처한 제자들을 생각해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공부에 매진하게 하려는 스승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건만, 쏟아지는 잠을 뿌리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들도 할 말은 있다. 이제 약 세 달 앞으로 다가오는 시험을 준비하는 하루하루의 생활, 그리고 그 생활로 인한 노곤함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또한 부담이었던 내신 시험이 바로 얼마 전에 끝나서, 잠시라도 마음을 놓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 그밖에도 해마다 이맘 때면 찾아오는 장마로 인한 나른함까지. 이 세 박자가 우리를 잠으로 이끄는 이유인 것이다.

오늘도 교실 안의 많은 이들이 책상에 엎드려서는 저마다의 잠에 빠져든다. 그러한 그네들의 모습 옆 창가에는 시원스런 장맛비가 그칠 줄도 모르고 쏟아지고 있었다.

잠자는 모습도 가지각색

반마다 학생 수만큼 있는 책걸상, 물론 그 용도가 공부하라는 데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주 가끔 목적과는 다르게 쓰일 때가 있다. 그것은 학생들이 엎드려 잘 때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용도(과연 '엎어져 잔다'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다).

이 자세를 설명하자면, 우선은 의자에 앉아서 허리를 굽히고는 두 팔을 모아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 잠을 자는 것이다. 아무래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이 졸릴 때 손쉽게 잠을 잘 수 있는 자세를 찾다보니 이러한 자세가 매우 보편화 된 것 같다.

그런데 이 자세는 건강상 별로 좋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쑤시고 찌뿌둥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누나는 오랜 기간 엎드려 자는 자세에 익숙해져 있다가 몸을 다쳐서 병원에 간 적도 있다.

서강훈
보편적인 '책상에 엎드려 자는 포즈'가 이렇듯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에, 의자 서너 개를 붙여 놓고는 아예 대(大)자로 누워서 자는 아이들도 있다. 수학책과 세계지리 책 따위를 베개 삼아서는 교실 학우들의 재잘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자세가 가장 편안한 듯하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나타나 심지어는 수업시간에도 찾아오는 잠이다. 매양 그런 편한 자세로만 잘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이 자세는 쉬는 시간이 좀 긴 점심시간이나 야자시간의 중간에 있는 저녁시간에나 가능하다. 그조차 얄궂은 벗들의 방해로 힘들 때가 많지만….

그 밖에도 제일 불편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노곤함이 농밀하게 쌓여감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되는 자세도 있다. 아예 앉은 채로 잠을 자는 것.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을 가고자 하는 어떤 친구는 학교 끝나고 바로 체육학원에 가서 힘을 소진하기 때문에 다분히 힘들어 보인다. 그 친구는 자주 이 자세로 잠든다. 그래도 이 자세가 좋은 이유는, 선생님의 눈을 가장 잘 피할 수 있다는 것.

야자시간, 친구 한 명이 앉은 채로 자다가 약하게 코를 골자, 적막만이 가득하던 교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에 재간둥이 주연이가 과장을 섞어서 이를 흉내내자 웃음소리가 더 커져 그 친구가 잠이 깨었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는 반 아이들이 왜 웃는지 몰라서 의아해 하는 모습이란….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덕택에 모두 신나 한다.

"그러게 좀더 편하게 잤으면 좋았을 걸."

서강훈
곤히 잠든 친구, 우리의 얼굴

자꾸 잠자는 이야기하다 보니까 '쟤네 학교 친구들은 매양 잠만 자나보다'라고 여기시는 분들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생각만큼 그렇게 길지 않다. 길어야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 그야말로 달콤한 단(短)잠인 셈.

나도 가끔 학교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친구들도 잠든 내 모습을 지켜보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가끔 유심히 보는 것처럼 말이다. 표정이 사라져 버린 듯한 친구의 맨 얼굴, 알지 못할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얼굴이다.

내가 보기도 하고, 보여주기도 하는 그 얼굴을 통해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밖으로는 그렇게 긴장을 쏙 빼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잠자고 있는 친구는 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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