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훈
방학동안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 생각 인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야, 너네는 방학 때 어떻게 지낼 거냐?”
“뻔하지 모. 나는 공부할 거다.”
“공부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난 시골로 가겠어.”
평소 단짝이던 친구다. 요즘 들어 슬럼프에 빠져서인지 힘들어 보였다. 아예 대천에 있는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너희 시골 해수욕장인데다가 집에 컴퓨터랑 텔레비전 같은 거 다 있다며? 그냥 동네 도서관이나 다니지.”
“아니, 우리 시골 집 옆에 있는 집 빈집이래. 아예 치워달라고 했어. 인제 공부만 할 거야.”
하긴, 나도 가끔은 그런 상황을 동경했다. 인적 드문 산사(山寺)에서 공부에만 정진하는 것도 그럴 듯 해 보이지 않는가.
다른 친구는 학교에 나가서 보충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보충수업이 끝난 후에는 동네에 있는 독서실에 다닌다고.
학교 보충수업을 신청한 아이들도 많다. 담임선생님께서 구두로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할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는데, 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보충수업이 끝난 후에 학교에 남아 '야자(야간자습)'를 한다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과외와 학원수업을 병행한다는 아이들도 반에서 다섯 명을 제외하고 모두였다.
내 경우는 그저 종일 독서실에 있다가 저녁 때 집에 와서 교육방송을 볼 예정이지만.
그건 그렇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만 되면 그리던 동그란 방학생활 계획표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계획이라고 세워 놓고 스스로 지키지 않았던 것이 거의였던 시절이었는데. 대개 내용은 이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먹고 ‘방학생활’하고, 또 일기 쓰고 등등….
밥 먹고 세수하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부라고 써놓은 어이없는 시간표. 그런데 실상은 숙제를 너무 안 해서 개학이 다가올 즈음 고생하던 기억들 뿐.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적어도 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될 여유로 충만한 때였으니까.
이번 방학만은 사정이 다른 만큼 생활계획표대로 살아야만 할 것이다.
방학에 임하는 우리들. 사실, 친구들의 방학계획이 제각각 다를 지라도, 그것이 공부계획이라는 점에서는 같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코 여겨서는 안 되는 계획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모두 같다.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길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이 흘렀다. 어떤 이들은 먼저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치기어린 부러움이 드는 순간,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독서실. 나 혼자다.
혼자인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우리’일 때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목적의식’에 너무 노골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벌써 며칠째 설사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문득,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개학 날 웃으면서 만나자.”
어떤 날은 공부가 잘 되서 한없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아침부터 몸을 가눌 수 없이 마음이 산란해져 공부고 뭐고 영 하기 싫어지는 날도 있다. 이런 기복에 과연 개학날 나는 웃을 수 있는지 하는 걱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