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불의 파괴

불교왕국 아프가니스탄을 가다

등록 2003.07.22 11:22수정 2003.07.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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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9·11 테러에 따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세계 뉴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전에도 또다른 깜짝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a 바미안 석불이 조성되 있는 절벽

바미안 석불이 조성되 있는 절벽 ⓒ 김동훈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지역에는 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면서도 세계 최대의 마애석불인 바미얀 석불이 있었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앙하는 탈레반들은 공개적으로 바미얀 석불을 파괴할 것을 공언했고 국제사회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석불파괴를 실행해 옮겼다.


아프가니스탄에 온 법륜스님(2002년 막사이사이상 평화부문 수상자) 일행과 한국의 해외원조단체 JTS의 자원봉사자들은 유산파괴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한편 구호사업을 위한 지역 답사를 위해 카불 서쪽 200Km 지점의 바미얀을 방문하였다.

중국 당나라의 현장법사(玄裝法師)는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바미얀국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신앙이 두터운 마음은 이웃나라보다 더하다. 위로 삼보(三寶)로부터 아래로 백신(百神)에 이르기까지 진심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으로써 공경하고 있다.[중략] 가람은 수십군데, 승려는 수천명으로 소승의 설출세부(出世部)를 학습하고 있다."

또한 바미안 석불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왕성 동북의 산 귀퉁이에 입불(立佛)의 석상이 높이 140~150척이나 되는 것이 있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며 보식(寶飾)이 빛나고 있다. 동쪽에 가람이 있는데 이 나라의 선왕이 세운 것이다. 가람 동쪽에 유석(鍮石)의 입상이 있는데 높이가 1백여 척이다. 몸체를 부분으로 나누어서 주조하여 맞춘 것이다." - <권덕주 편역 대당서역기 中>


차를 타고 9시간이 걸려 도착한 바미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거대한 석벽에 흔적도 남지 않은 석불과 그 파편들이었다. 잔해들은 유네스코에서 마련한 보호용 천막에 뒤덮여 있고 유네스코의 안내문만이 이곳에 대불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파괴된 석불의 절벽에는 수십개의 동굴이 파여 있었다. 지금은 현지의 주민들이 그 곳에서 생활을 하지만 예전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승방이었다고 한다.

절벽 전체가 하나의 사원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바미안 석불은 1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법사의 증언대로 크기는 조금 작지만 같은 방식으로 절벽을 파서 만든 석불 1기가 동쪽편 절벽에 가까이 조성되어있다. 그러나 그 석불 역시 파괴되었다. 현지인들은 큰 석불은 '살살', 작은 석불은 '보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a 파괴된 바미안 대석불

파괴된 바미안 대석불 ⓒ 김동훈

탈레반 정권이 이 석불들을 훼손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탈레반들이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므로 종교적인 이유로 파괴했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파괴되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속에서 이슬람세력에 의해 파괴된 다른 불교문화재들처럼 바미얀 석불 역시 얼굴 부분이 이미 훼손되어 있어서 다시 손을 댈 필요가 없는데도 탈레반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

탈레반이 석불을 파괴하겠다고 세계에 공표했을 때 이슬람 국가들의 보편적인 반응은 석불파괴 반대였다. 그것은 불교유적이지만 인류공동의 문화재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비평가는 당시에 탈레반 정권을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 정도로 전혀 국제사회의 인정을 못받고 있는 상태였고 완결되지 않은 내전과 계속되는 가뭄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어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무리수가 아니었는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위에 만들어진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판단은 화해나 협력으로 가는 길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현실인식일 것 같다.

파괴된 바미얀 석불에 대한 사후대처는 의견이 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어렵겠지만 파편들을 다시 모아서 복구를 하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괴된 석불 자체가 만행의 증거이기 때문에 교훈으로라도 후손들에게 파괴된 그대로 남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줘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바미얀 석불의 예에만 한정하지 않고 우리 불교계도 우리 불교자산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적자체를 남기는 게 중요한가 유적을 통해서 그 정신과 역사를 남겨주는 게 중요한가.

a 아프가니스탄의 하자르 족 아이들

아프가니스탄의 하자르 족 아이들 ⓒ 김동훈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바미얀 지역은 탈레반 정권 시절에 다른 지역에 비해 탄압이 극심했던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바미얀에는 몽골리안 계통의 하자르족들이 사는데 이들은 징기스칸의 정복로를 따라 이주했던 몽골의 후예들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다른 아프가니스탄의 주요종족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외형상의 차이는 인종차별의 꼬투리가 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파슈툰 족에 근거를 둔 탈레반이 그렇지 않아도 차별의 소지가 많은 몽골리안 계통의 하자르 족에게 결코 잘 대해줄 리가 없었고 탄압이 어찌나 가혹한지 말로 다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미얀 석불 앞에서 만났던 하자르 족 청년 '술탄 빠르띠 와하닫(29)'씨는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탈레반, 그들은 추악한 짐승들이다"

하자르 족들은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오던 아름다웠던 바미얀 석불이 파괴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의 지도자가 공개처형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로켓포와 중화기로 무장한 탈레반의 군대가 빈약한 소총으로 무장한 하자르족 민병대를 괴멸시키고 바미얀 시가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바미얀 석불 앞에는 완전히 무너져 내린 시가지가 남아 있다. 지금은 국제기구들에 의해 재건된 새시가지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탄압이 극심했던 덕분에 지금은 카불 이외에 외국의 구호단체들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이 바미얀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기에도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앞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

a 하자르 족 전사들과 함께한 필자

하자르 족 전사들과 함께한 필자 ⓒ 김동훈

아프가니스탄은 불경을 정리하기 위한 제4차 결집을 했던 카니시카왕의 쿠샨왕조가 흥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던 대승불교가 이 곳을 통해서 북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는 3700여개의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땅속에 묻혀 있는 불교유적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였고 파키스탄이 간다라 미술의 발상지였고 아프가니스탄은 불교의 중흥지이면서 대승불교의 시작점이었다. 동남아시아나 동북아시아에만 불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제 불교가 역사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불교가 생활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 잊혀진 불교에 대한 보존책임은 불교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 책임도 있지 않겠는가. 이 유산들은 불교문화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세계인류의 공동유산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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