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연구> 창간호, 추사 '예림갑을록’ 다뤄

소치연구회, <소치연구> 창간

등록 2003.07.22 20:45수정 2003.07.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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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소치연구> 창간호 표지 사진

<소치연구> 창간호 표지 사진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8-1893)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조선시대 남종문인화의 대가이며,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추사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한 그림이 없다”고 극찬했던 화가가 소치였다. 이 허련의 작가상과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소치연구회(회장 홍선표)가 최근 창간호 <소치연구>를 학고재에서 펴냈다.


그동안 전통문화의 연구가 각 분야를 나누어 해온데서 폐해가 많았다고 보는 '소치연구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공자와 감상자는 물론 애호가들까지 회원으로 참여시켜 다각도의 연구를 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치연구> 창간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글은 소치연구회 회원이며, 고서연구가인 김영복씨가 쓴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해제와 국역’이다.

헌종 15년(1849) 기유(己酉) 여름에 고람(古籃) 전기(田琦), 소치(小癡) 허련(許鍊) 등 추사의 젊은 제자 14명은 스승과 매우 중요한 의미의 만남을 가졌다. 7차례 모임을 열어 각자의 글씨와 그림을 정성껏 쓰고 그린 뒤, 추사에게 평을 받은 것이다.

중인 예술가들과 당대 대학자가 신분 벽을 헐고, 한 자리에서 아름다운 품평 마당을 벌렸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제자들이 추사의 애정 어린 평가에 고마워 하며, 뒷날 남긴 품평집이 <예림갑을록>이다.

a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표지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표지 ⓒ 소치연구회

이 <예림갑을록>은 조선 말기와 근대 미술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 자료라는 학계의 평가를 받는다. 소치연구회는 최근 이 <예림갑을록>의 원본을 150여년만에 발견하여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원본은 서울에 사는 소치의 후손에게서 입수한 것으로 세로 27cm, 가로 16.5cm의 9장짜리 흘림체 필사본인데 서가는 빠져있고, 화가만 나와 있다. 누가 썼는지 정확치 않으나 김영복씨는 학석(학석) 유재소(劉在韶)의 글씨로 추정한다.

특히 이 원본을 통해서 추사의 품평시기를 1849년으로 확인한다. 그동안 학계의 통설은 추사의 품평 시기가 1839년이라고 보았는데 이런 통설은 추사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1839년 설’을 내놓은 것에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김영복씨는 만약 1839년이라면 당시 모임에 참석한 사람 중 윤광석(尹光錫)은 겨우 여덟 살, 유재소는 열한 살인 것은 물론 소치 허련은 1839년 8월 이후에 처음 추사와 만났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1839년은 간지로 ‘기해(己亥)’이고, 1849년은 ‘기유(己酉)’인데 이것을 초서로 쓴 것이 혼돈을 일으킨 것으로 본다. 김영복씨는 “모임 시기가 1849년일 때만 참석자의 나이와 행적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원본의 정확성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품평 시기를 10년 늦은 1849년으로 고쳐 추사의 연대기와 미술사 연표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a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첫째 쪽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첫째 쪽 ⓒ 소치연구회

이 <소치연구> 창간호는 ‘예림갑을록 해제와 국역’ 외에 2편의 논문과 국역 및 자료소개 3편이 있으며, 부록으로 소치 허련의 가계도, 기년작 목록, 허련 연보가 있다.

논문에는 ‘소치 허련의 <완당초상>에 관한 소견’(황정수), ‘<소치실록(小癡實鹿)>의 구성과 내용’(김상엽) 등이 있으며, 자료소개 및 국역에는 조선 후기 여항시인(閭巷詩人:조선 선조 이후에, 중인, 서얼, 서리, 평민과 같은 여항 출신 시인)인 정지윤(鄭芝潤, 1808~18580)의 시문집인 ‘<대향고(帶香稿)> 해제’, ‘희원 이한철의 <선유도(船遊圖)>와 그 주변’ 그리고 소치가 추사의 또 다른 제자 조희룡 거사와 중국 화가의 유파에 대한 지식을 시로 표현한 ‘<치거재초고(癡居齋艸稿)> 국역’ 등이 있다.

우리는 피카소와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들은 알아도 추사나 겸제의 그림은 잘 모른다. 물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소치 허련이나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그림은 더욱이나 모른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대화가들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우리의 자존심을 살리는 또 한 가지 일일 것이다.

a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마지막 쪽, 추사의 친필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마지막 쪽, 추사의 친필 ⓒ 소치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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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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