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현장에서 어린이들의 생활을 보면서 너무 허약한 아이들의 모습에 한탄을 할 때가 많다. 무엇하나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조금만 불편이 있거나 심지어는 친구들과 장난을 하다가 한 대 맞은 것을 가지고 울보처럼 울면서 집에 전화를 하는 어린이도 보았다. 금새 친구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설 아이지만 그 순간을 참지 못하여 부모님이 일터에서 마음놓고 일을 할 수 없게 전화를 해대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심각하게 어려운 이이며, 부모님이 오셔서 해결을 해야 할만한 큰 일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다. 우선 자기 기분이 나쁘면 잠시를 참지 못하고 바로 그 순간에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정채봉님의 시 콩나물을 자주 인용하고 싶어진다.
[온실 속에 심은 콩은 콩나물이 되고, 밭에 뿌린 콩 씨앗은 콩 나무가 된다.]는 시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그렇게 허약하고 참을성이 없을 때 이를 콩 나무가 되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 힘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감싸고 귀여워만 한다면 그 아이는 영영 콩나물이 되어서 이 사회라는 풍파 속에서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어느 냉동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냉동실의 청소를 하러 들어가다가 그만 습관적으로 냉동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냉동실은 문이 안에서는 열리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잘 못 갇히면 영화 수 십도의 강한 냉동 온도에 못 견디고 그대로 동사를 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더구나 완전한 냉방을 위해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벽은 아무리 두들기거나 소리를 전달하려고 해도 밖으로 전달이 되지 않게 되어있는 곳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안 보이는 그 친구를 찾던 동료들에 의해서 그 사람은 냉동창고 안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런데 이미 숨을 거둔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버린 다음이었다.
그렇지만 이 냉동 창고는 고장이 나서 잠시 멈춰 두고서 청소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실제로 냉동창고 안의 온도는 불과 영상 4도 밖에 안 되는 곳이었다. 겨울에 약간 쌀쌀한 날씨 정도의 온도에서 불과 한 시간 안에 사람이 얼어죽는 일이란 별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은 창고 안의 벽에는 [몸이 점점 차가와 진다. 지금 나는 죽어 가고 있다.]라고 손가락으로 쓴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 사람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만 차리고 있었으면 전혀 얼어죽을 온도도 아닌 속에서 스스로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에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더 차가운 곳에서 더 험한 속에서도 참고 견디어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콘크리트 더미 속에 묻힌 사람들 중에서 무려 1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텨내고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이 살아난 사람이 있었지 않은가?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고, 거의 날마다 새로운 구조 소식이 국민들에게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작업을 시작한지 100시간이 넘어서도 아직 구조되지도 시신도 못 찾은 가족들은 오직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는 일뿐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러는 속에서도 112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구조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 돌더미 속에서 작은 공간을 이용하여 숨을 쉬고 불을 끄기 위해 쏟아 부은 물이 흘러드는 것으로 입술을 적셔 가면서 끈질기게 기다린 보람이었다. 이런 일은 자신의 평생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그 만큼 침착하고 끈질긴 정신력을 가졌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신력은 힘이나 어떤 것으로도 설명 할 수 없는 기적을 낳기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 어린 자녀들에게 이런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 준다는 것, 그것은 어쩜 귀여운 내 자녀를 위험에서 구할 수도 있고, 장차 어른이 되어서 갖은 고난을 다 겪어야할 삶의 길잡이를 쥐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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