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점심 초대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가 걸어온 전화

등록 2003.07.25 20:30수정 2003.07.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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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삼복더위가 있다. 그때마다 먹는 복날 음식이 있다. 삼계탕과 보신탕의 계절이다. 나는 음식을 계절마다 때 맞춰 먹던 추억이 없다. 삼계탕 맛을 모르고 보신탕 맛은 더더욱 그렇다.


어머니는 당신 입에 안 맞아서 인지 조리를 할 줄 몰라서인지 아니면 고기를 살 수 없는 가난 때문이었는지 단 한번도 닭고기 반찬을 해주신 적이 없으셨다. 나중에 살림이 폈어도 밥상에 오른 고기는 소고기 뿐이었으니 먹을 수 있는 고기란 소고기 이외 다른 고기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리 집 3남매는 모두 닭고기 옆에 앉지 않는다. 하물며 개고기임에야.

전 직장 동료들이 개 한 마리 잡고 물 좋은 데 가서 자리 피겠다고 연락 왔을 때 나는 옹색한 변명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피면 하루 온종일이요, 고기가 바닥이 날 때까지 소주잔이 오고 갈 자리에서 매일 다름없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지난 날 직장 생활에 대한 반추에 지레 질려서이다.

내게는 상긋한 나물 넣은 보리 비빔밥이 진수성찬이다. 입이 놀래는 개고기 반찬 보다 야채 반찬이 내게는 제 격이다. 이런 나에게 복날이 별다른 의미가 있을 턱이 없다.

손전화가 덜덜 거렸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였다. 오 기자가 내게 전화를 거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가서 그를 만나 악수하고는 무슨 대화를 단 1분도 할 수 없다. 그는 늘 PC의 모니터와 키보드로 기사 작성에 골몰하기도하고 직원들과 회의로 바쁘다.

그의 시간은 오마이뉴스를 위한 것이다. 평범한 시민 기자가 어쩌다 사무실에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건네기에는 그는 아주 바쁘다.


공개장소나 언론 매체에서 그의 의견을 보고 듣고 한 것 말고는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고 악수와 안부 인사만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나는 그를 대할 때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으로 느꼈다. 그와 말을 많이 나누지 못한 나의 고정관념일 것이다. 요즘같이 오마이뉴스가 알려진 마당에 내가 오 대표에게 전화를 걸 일이 없다.

오마이뉴스가 커지고 주위에서 오마이뉴스에 대하여 말해도 그랬다.
지난 번 오 기자에게서 전화를 받을 때는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기사에 대하여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전달 받거나 3년 전에 딸아이가 수능 고사를 보는 기사를 올렸을 때 수험장에 가서 사진촬영을 해도 되겠냐하는 배려의 전화였다.


이번 전화에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요즘 오마이뉴스에 별로 글을 올리지 않았으나 좀 긴장을 하였더니 뜻밖에 복날 점심을 함께 하자는 전화였다.

오마이뉴스 대표가 직접 전화를 했다면 10여명이 모일 것이며 생각 다르고 환경 다른 사람들끼리 초면 대화는 건조할 것이며 여운 없는 작별이 보증수표이려니 하는 생각에 잠시 주춤하는 내 마음을 짚어냈는지 오 대표가 "비슷한 연배 몇 분만 모시니 함께 하시지요. 평창동 가서 개고기나 드시지요"하고 말했을 때 나는 바로 대답을 못하고 멈칫하였다.

남들이 맛있게 먹는 고기를 내가 못 먹는다고 해서 혐오식품으로 분류하는 결벽증이 내겐 없다. 대신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 산에 묻고는 산에 오를 때마다 녀석의 무덤에 가서 "나, 왔다. 잘있었냐?"하는 소년 취향의 정서를 가진 나는 남들이 먹는 것을 바라다 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는 개고기 수육과 전골의 살점은 식용견일 수도 있고 가출한 애완견의 비명횡사한 시신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개고기 옆에 기쁘게 뛰어갈 탐식가가 못 된다.

개고기집 앞도 피해가는 나였지만 오 대표의 초대에는 거절하기를 주저했다. 수많은 시민기자 중에서 그가 마음에 담아준 배려가 고마워서. 요즘따라 침묵의 다수보다 살가운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는 더욱 더.

설렁탕 한 그릇 갈비 몇 대 보다 개고기가 값진 고기이니 오 대표는 기자 명단에서 심정적 동질감과 유대감으로 몇몇을 낙점하였을 터. 작은 몸집에도 거인같은 행보를 하는 그에게 사실은 내가 점심 대접을 하고 싶던 차였다.

돌이켜 보면 3년, 신들리듯 나와 주위의 사는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올려왔다. 오마이뉴스 바람에 방송에도 나가고 글 써서 상도 탔고 책도 한 권도 나왔다. 함께 점심이나 합시다, 하는 그의 말은 내게 지나간 시간을 순식간에 생각을 하게 했다.

a 토속 음식점을 배경으로 초대한 이와 초대 받은 이들이 나란이 섰다. 사진을 보고 왼쪽이 황종원·김준희 시민기자, 김재홍 논설주간, 오연호기자, 김영조 시민기자

토속 음식점을 배경으로 초대한 이와 초대 받은 이들이 나란이 섰다. 사진을 보고 왼쪽이 황종원·김준희 시민기자, 김재홍 논설주간, 오연호기자, 김영조 시민기자 ⓒ 황종원

오마이뉴스 창간준비호부터 글을 올렸던 나에게 오마이뉴스가 각별하듯 오 대표에게 받는 점심 초대가 각별하게 느껴지며 평범한 한 사람을 기억하며 호명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내가 비록 개고기를 피하여 맨밥을 먹을지라도 점심 약속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무심한 듯 보여도 유정한 오 기자에게 "가서 뵙지요"하며 나는 큰 일이라도 하듯 말했다. 남들은 개고기를 맛있게 먹는 밥상에서 나는 맨밥에다 오 기자의 따뜻한 배려를 반찬 삼을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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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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