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은 특별한 자식사랑

베트남 소녀 돌보는 지체장애인 유영수씨

등록 2003.07.28 09:27수정 2003.07.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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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수씨
유영수씨권윤영
"우리 딸 사진 보실래요? 우리 두 딸이 다 예뻐요. 제가 복이 많은가 봅니다. 허허!"


대전 오정동 신동아아파트 정문 앞,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열쇠와 도장을 깎는 일을 하는 유영수(43)씨는 딸들 생각만 하면 입이 함박만해진다. 가게 한쪽에 코팅까지 해서 붙인 딸들 사진만으로도, 수시로 꺼내들고 읽는 딸의 편지만으로도 그의 특별한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에겐 친딸 수현(9)양 외에도 베트남 소녀 응옌 티 응완(12)이라는 딸이 하나 더 있다. 베트남에서 보내 온 딸의 편지와 그림을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유씨. 그는 3년 전부터 국제 구호 단체인 플랜코리아(www.plankorea.or.kr)를 통해 응완 양과 부녀지간의 인연을 맺고 매달 3만원씩 보내며 후원해주고 있다.

"완에게 크레파스를 보내줬더니 제가 사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 보내 왔어요. 그런 모습 보면 저 또한 즐겁습니다. 물론 돈이나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합니다. 일회성으로 관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요."

지난해에는 딸 응완양이 보고 싶어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고 지난 3월에는 한 단체의 후원을 받아 응완 양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었다.

"완이 4박 5일을 머물다 갔는데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고생하더라고요. 생선을 좋아한다던데 응완이 돌아가고 나서 보니까 생선을 못 사줘서 아직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응완네 가족들을 초청하고 싶어요."


베트남 소녀 응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 소녀 응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권윤영
사실 그에겐 이 일이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체장애 3급인 그 역시 30여년 전 초등학교 시절 당시 양친회였던 플랜코리아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

"당시 현금으로 4200원을 후원받았어요. 600원이면 밀가루 한 포대를, 10원이면 크림빵 하나를 살 수 있었죠. 특별활동을 할 수 있도록 어린이회관에도 등록됐고요. 그 도움이 정말 컸던 것 같아요. 장애 몸을 가지고 살면서 그걸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난 후 지체장애인이 됐다. 아버지는 그가 10살이던 해에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생선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등록금이 없어 힘겹게 중학교를 졸업한 후 구로공단에 취직한 그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공장을 전전했다. '그 당시 사는 건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유씨에게 구호단체 양친회의 기억은 보이지 않는 끈과 같았다.

그래서일까. 플랜코리아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어느 정도 성장 후 양친회를 찾았지만 옛 단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지금은 플랜코리아로 바뀐 양친회 기사가 실린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바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인 양부 윌리엄 테일러씨에게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응완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3년부터 79년까지 매년 2만 5천명의 어린이가 도움을 받았어요. OECD 가입 후 우리도 후원국이 되었는데 현재 우리나라 후원자 숫자는 3000여명에 불과하답니다. 도움 받은 사람의 10분의 1만이라도 동참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응완은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랍니다. 응완이 성장해서 또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도와주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난 89년 열쇠가게를 차리고 대전에 정착한 유영수씨는 그동안은 삶의 의미가 없었지만 이제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 눈이 많이 오는 날 버스도 안 다니는 길을 30여분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근데 차들이 그냥 지나쳐 가버리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기동력이 생기면 나 같은 사람에게 차량봉사를 해야지'라고요."

응완에게 받은 편지와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유영수씨.
응완에게 받은 편지와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유영수씨.권윤영
유영수씨는 중증 장애인을 위한 차량이동 봉사 단체인 '되살미 사랑나눔 봉사대'의 회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기동력이 생기면 차량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의 평소 결심처럼 97년 차를 구입하자마자 실천으로 행하고 있는 것.

"쇼핑하면서 넉넉히 사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 먹고 살 정도는 되니까 만족합니다. 약간의 여유가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어서 그것 또한 좋고요."

넉넉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유영수씨. 그가 던진 말들이 어떤 미사여구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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