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숨은 나를 찾다

마야 스토르히의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등록 2003.07.28 12:32수정 2003.07.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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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책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푸른숲

이 책은 융의 정신분석학을 기본으로 하여, 현대 여성들이 추구하고 있는 '강한 여자'의 모토 속에 숨어 있는 약한 면모를 밝혀 낸다. 그리고는 그 약한 자아를 또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포용하기를 제안하고 있는 심리학 서적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나 자신을 위하여 썼다. 더불어 이런 분열된 감정에 시달리고 있는 내 친구들과 환자들을 위해 썼다. 또한 강한 여성의 낭만적 딜레마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라는 제목에서 '강한 여자'란 겉으로 보기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현대 여성을 뜻한다. 그들이 겪는 '낭만적 딜레마'란 바로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속으로는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용감하고 멋진 남자가 자신 가까이에 있길 바라는 모순된 모습을 말한다.

이 책에서 밝히는 많은 현대 여성들은 겉으로는 강하지만 내적으로는 약한 여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용감하고 멋진 남자를 찾아 그들에게 기대고 싶어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융의 심리학을 토대로 하여 분석해 나간다.

"융 심리학에는 심층심리학적 인격 모델이 있다. 심층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이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심층 심리학은 의식 이외에도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또 다른 심급이 존재하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로 아주 독특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때문에 심층 심리학은 인간에게는 의식을 제외한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다고 가정한다. 즉 인간에게는 또 하나의 공동 지배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의식적 자아를 통해 그것을 통제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행동은 의지에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심층 심리학의 기본 논리이다. 그래서 프로이드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 집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무의식 속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저자는 "항상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인간이 되라고 배웠던 사람의 그림자 속에는 책임을 망각한 게으름뱅이가, 지극히 도덕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성적인 일탈을 비난하는 사람의 그림자 속에는 거칠 것 없는 바람둥이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림자와 무의식 속에는 한 인간이 성장한 환경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어서 성장 과정에서 억압되었던 인격의 일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여자의 마음 속에는 남성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약한 여성의 모습이 존재한다. 그것을 억압하고 억누르려 해 봤자 혼란과 고통이 따를 뿐이다.

저자는 약한 자아를 그냥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융의 심리학에서는 '그림자의 편입'이라고 하는데, 남성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약한 자아를 자신의 또 다른 성격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된다.


사실 강한 여성에게 약하고 사치스럽고 지나치게 로맨틱한 자아가 당신 속에 숨어 있다고 말하면, 그들 대부분이 펄쩍 뛸 것이다. 저자가 경험한 많은 여성들이 바로 그러한 케이스였다. 저자는 비록 그 과정이 조금은 어렵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약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이처럼 당당하고 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왜 내적으로는 가부장적인 남성에서 이끌려 다니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저자는 많은 여성들의 내면 속에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남성'에 대한 무의식적 선호가 자리잡고 있다고 밝힌다.

융의 심리학에 의하면, 여성 속에는 '아니무스'라고 하는 남성적 가치관이, 남성 속에는 '아니마'라고 하는 여성적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아니무스'나 '아니마'는 주변에 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남성이나 여성을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즉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아니무스'는 주로 아버지나 오빠, 학교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 남자 친구 등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까 세상은 변화하여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 상은 고리타분한 옛날 남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남성에 대해 강한 이끌림을 갖게 된다. 그리고는 그들과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약한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혼란을 겪고 상처를 입는 것이다. 그녀들과 사랑에 빠진 남성들 또한 강한 여자로 인식되었던 상대가 갑자기 약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들의 사랑이 평탄할 수 없다. 저자는 많은 강한 여성들이 이러한 과정을 겪고 상처를 입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서 제안하는 충고는 바로 혼자서 고독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자의식이 강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멋진 남자도 이런 식의 고독에서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에서도 당신의 일부는 늘 혼자였던 것이다. 가슴 절절하게 이런 진실을 깨달은 자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고독하다는 느낌 때문에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 말이다."

이처럼 처절한 고독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독을 구원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남성들에게도 똑같이 필요하다. 즉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이며 그것을 구원해 줄 멋진 누군가를 지나치게 기대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혼자라는 사실을 배우고 난 후에야 우리는 진정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성숙한 여성은 사랑에 빠지자마자 남자에게 모든 것을 다 걸고 매달리지 않으며, 원래의 모습보다 강한 척 애써 위장하지도 않는다."

사실 요즘처럼 각박한 사회에 약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회라는 거대한 공간에 뛰어든 여성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자아를 찾는다면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나 혼자서 고독을 씹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푸른숲,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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