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정동영의 개혁신당 '반성문'

[유창선칼럼] 민주당 신주류의 비겁과 무능력

등록 2003.07.31 08:55수정 2003.07.3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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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 지난 5월 16일 민주당 신당추진의원 워크숍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정동영 의원과 정대철 대표.
일장춘몽? 지난 5월 16일 민주당 신당추진의원 워크숍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정동영 의원과 정대철 대표.오마이뉴스 권우성

고작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그 난리를 피웠던 것인가. 민주당이 추진하던 신당은 결국 '도로 민주당'으로 끝날 조짐이다.

민주당 신주류의 좌장격인 김원기 고문은 "다음 총선때 개혁세력이 중심이 되어선 승산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사실상 개혁신당 포기를 선언했다. 더 나아가 민주당 외부의 신당세력에 대해 "신주류 모임에서 그 사람들과 일체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며 신당은 "결국은 새천년민주당 방식"임을 분명히 했다.

개혁신당론의 제창자였던 정동영 의원도 "과거 개혁신당을 주장했던 입장이 바뀌었다"며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론은 이미 철회됐으며, 특정 인물 배제론에 대해서도 이미 사과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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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조선일보>는 '신주류의 굴복'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신주류의 주축 두 사람이 마치 반성문을 발표하는 것 같았다"는 구주류 관계자의 모욕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두 사람의 언급이 신주류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민주당의 신당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이다. 외부인사 영입하고 당 간판 바꾸는거야 선거를 앞두고는 수없이 있어왔던 일이니, 이를 가지고 환골탈태 운운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대선 이전의 민주당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선에서 분출된 국민들의 정치변화 요구를 등에 업고 정치권의 대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가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의 정치변화 요구 결집과 3김정치의 종식이라는 두가지 조건이 결합되면서 찾아온 그 기회는, 민주당 신주류의 눈치보기와 무능력으로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신당의 동력이 상실된 현실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개입여부에 상관없이, 개혁신당이 출현할 경우 그 지지층은 지난해 노풍(盧風)의 지지층과 대동소이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은 사정을 감안한다해도 신주류가 보여준 태도는 비겁함 그 자체였다. 신당 얘기는 자신들이 먼저 꺼내놓고, 정작 한나라당의 '독수리 5형제'가 함께 신당하자고 당을 박차고 나오자 이제와서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 하는 꼴이다.

우유부단함과 주저함으로 계산만 하며 그 좋은 시기를 다 보내놓고, 이제와서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이다. 이들의 모습에서는 과거의 YS나 DJ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정치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던 결단같은 것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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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 경기도 수원에서 전국순회토론회 '국민참여신당 이렇게 합시다'에서 김원기 신당추진모임 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 경기도 수원에서 전국순회토론회 '국민참여신당 이렇게 합시다'에서 김원기 신당추진모임 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나갈 의지를 보이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정치를 바꿀 수 있겠는가.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을 필두로 하는 신주류 중진들의 안전제일주의 신당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실망스러운 것은 신주류 소장파들이 보여주고 있는 침묵이다.

'탈레반'도 '386'도 모두 간 곳이 없다. 민주당을 그대로 껴안고 가자는 목소리가 당내에 득세하는 가운데, 개혁세력의 헤쳐모여를 주창하던 목소리는 간 곳이 없어져 버렸다. 너무도 빠른 현실적응력이다.

그 대가로 신주류는 "구주류에게 백기를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치러야 할 대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민주당을 그대로 껴안고 가자는 통합신당론자들은 내년 총선승리가 당면과제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도로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적어도 민주당 바깥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현재의 정당구도가 유지된다면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을 그대로 껴안고 가야 총선에서 지지층 분열을 막고 승리할 수 있다고?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 소리이다.

국민적 신망을 잃은 지금의 민주당이 전통적인 '고정표'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유시민 의원이 적절히 예측했듯이, 지금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6·13 지방선거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나마 새로운 바람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김근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중도파들은 요즈음 '분열없는 통합신당'이라는 구호를 즐겨쓰고 있다. 그러나 묻게 된다. 나라는 지역에 따라 분열되어 있는데,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다시 지역구도가 부활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 민주당만 분열되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그들의 표현대로 민주당의 역사와 전통이 그렇게까지 '빛나는' 것인지는 알 길 없으나, 이 나라 정치의 앞길을 생각하기보다는 민주당이 보장해주는 기득권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도로 민주당'이 되면 환성을 올릴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호남 고정표' 하나로 금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영남표'의 위력으로 땅짚고 헤엄치기식 선거를 할 수 있는 반대당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도로 민주당'이 우리 정치, 그리고 민주당 전체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민주당에 신주류는 없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주류도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신주류'라는 이름을 내리는 것이 낫다.

그러나 끝내 한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민주당에서는 소신에 따라 금배지를 뗄 각오를 하고 결기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20명만 일단 모이면, 이 나라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고작 '도로 민주당'을 하라고 지난해 수많은 국민들이 대선드라마에 울고 웃으며 자기 일처럼 그토록 흥분했던 것인가. 정대철 대표 등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합의 속에 내일부터 열린다는 소식이 오늘 유난히 거슬리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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