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는 신당 걱정! 한나라는 휴가 걱정!

[取중眞담] 어깨너머 메모로 본 7월 마지막 국회

등록 2003.08.01 10:28수정 2003.08.0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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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마지막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꽤 묵직한 안건 두 가지가 표결에 부쳐졌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한 대북송금 새특검법안 재의이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논란이 돼 왔던 '외국인근로자 고용법안'(외국인 고용허가제)이다.

특검법 재의 표결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무기명 비밀 투표로 진행됐다. 재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다시 가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였다. 결국 재의안은 부결됐으며, 이에 따라 새특검법은 폐기됐다.

전자투표로 진행된 외국인근로자 고용법안은 반대 입장을 가진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 투표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결국 통과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중요한 현안 문제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본회의장 한 편에서는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현 정치권의 속내를 극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여야 의원들은 중요한 안건들이 표결에 부쳐지고 있었지만 이미 마음은 제각각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 곳이 어디일까?

a 31일 본회의장에서 추미애 의원이 한화갑 의원이 보내온 쪽지를 읽고 있다.

31일 본회의장에서 추미애 의원이 한화갑 의원이 보내온 쪽지를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면 하나> 추미애 의원이 받은 '쪽지'

새특검법 재의에 대한 양당의 찬반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쪽지 한 장을 펼쳐들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8월 1일 오후 3시 국민일보 12층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조순형 선배님도 함께요. 한"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가 보낸 쪽지다. 시간과 장소는 한자로 적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한글로 '한'이라고 적은 뒤, 동그라미를 친 서명이 다소 앙증맞아 보인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 전 대표는 최근 "민주당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탁통치를 받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과 신주류를 향해 각을 세웠다. 그는 특히 "'통합신당'이란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인적청산을 하고 가겠다는 '개혁신당'이 안되니 전략적으로 후퇴한 것일 뿐"이라며 "인적청산을 제외하곤 다 하겠다는 것이므로 거기에 참여할 수 없다"고, 신당 불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화합에는 으뜸'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한 전 대표가 '분열없는 통합신당'쪽에 서 있는 추미애 의원에게 보낸 쪽지는 자신의 입장을 추 의원에게 설득하기 위한 '러브 콜'로 보인다. 한 전 대표로서는 강력한 지원군이 필요했던 것이다.

a 지역구 핵폐기장 선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정균환 총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지역구 핵폐기장 선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정균환 총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면 둘> 고민하는 정균환 총무

정균환 민주당 원내총무는 본회의 도중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전북 고창·부안 출신인 정 총무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상임고문 연석회의에서 부안군 위도 핵폐기장 설치 논란과 관련, "정부의 도덕성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거짓말 치고, 사기 치고 있다"고, 집권여당 총무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특히 "(참여정부 탄생에) 1등 공신이 있다고 하고, 역적이 있다고 하지만, 민주당이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면서 "참여정부를 한 사람의 독식물로 착각하면 안된다"고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집권여당 총무로서 핵폐기장 설치 논란에 휩싸여 있는 지역구의 상황이 보통 견디기 어려운 압박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그는 최근 입버릇처럼 "여당 총무로서 마지막으로…"라고 말해왔다. 여당 총무는 한 때이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지역구는 영원하다'는 법칙 앞에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a 오는 4일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밝힌 정대철 대표와 검사출신인 함승희 의원, 이낙연 대표비서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는 4일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밝힌 정대철 대표와 검사출신인 함승희 의원, 이낙연 대표비서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a 정대철 대표와 이상수 사무총장, 김근태 의원이 신당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정대철 대표와 이상수 사무총장, 김근태 의원이 신당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면 셋> 검찰 출두 준비·신당대책...눈코뜰새 없는 정대철 대표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본회의 시작전 '부안 핵폐기장건설반대' 대표들을 면담했지만, 본회의 참석을 이유로 '1절'만 들은 뒤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정 대표는 본회의장에서 분주하게 의원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이날 상정된 안건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윤창렬 굿모닝시티 대표로부터 4억2000만원을 받은 정 대표는 요즘 검사 출신인 함승희 의원을 자주 찾는다. 자신의 검찰 출두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이날 본회의장에서도 함승희 의원과 이낙연 대표비서실장을 자리로 불러 검찰 출두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정 대표는 특히 이날 "8월 4일 당무회의가 끝나는 대로 검찰에 나가 내 문제를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가 검찰출두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힘에 따라 민주당의 신당 논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이상수 사무총장과 김근태 의원과 함께 메모를 해가며 신당추진에 대한 논의를 했다. 정 대표의 메모지에는 "당헌개정안" "통합 리모델링"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 대표는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러분이 걱정해주셨는데 이런 문제를 일으켜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고 또한 감사하다"고 말했다.

a 이규택 의원과 남경필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의원 앞에 있는 메모지에는 "20일 오후 강릉, 낮 Golf 21일 각자 Play 귀향"이라고 적혀있다.

이규택 의원과 남경필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의원 앞에 있는 메모지에는 "20일 오후 강릉, 낮 Golf 21일 각자 Play 귀향"이라고 적혀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면 넷> 이규택-남경필 메모 "이번 여름 휴가는 골프로…"

민주당 의원들이 신당·굿모닝 게이트·핵폐기장 문제 등으로 뒤숭숭한 반면 한나라당은 비교적 여유가 엿보였다. 본회의장에서 이규택 의원과 남경필 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로 휴가계획이 적힌 메모지가 보인다.

"20일 오후 강릉, 낮 Golf 21일 각자 Play 귀향"

여느 해와 달리 8월에도 임시국회가 열리는 탓에 잠시 짬을 내 골프를 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 할 모양이다.

한나라당은 최병렬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정책정당·디지털정당을 표방하며 당 면모를 쇄신하기 위해 부단히 몸무림을 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대북송금 새특검법, 방탄국회 등으로 홍사덕 총무가 소속 의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최 대표 역시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민주당보다 조금 나은 편. 상당수의 의원들이 쉬쉬하며 휴가를 다녀오거나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최 대표도 오는 2일부터 1박2일 코스로 친구들과 제주도에 내려가 회를 즐길 계획이다.

7월 마지막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바라본 정치권의 모습은 정치권 밖의 생활상 만큼이나 다양했다.

방탄국회 논란에도 불구하고 8월에도 국회는 열린다. 정치권은 또 어떤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까. 아니, 그들의 고민 속에 과연 국민들이 끼여들 틈은 있는 것일까.

올 여름에는 조금만 더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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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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